국내 대회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이상한 경기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벌어졌다. 스웨덴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 중인 한국과 북한 여자탁구팀은 나란히 8강에 올랐고, 공교롭게도 8강 대결을 가질 예정이었다. 두 팀은 그러나 경기 5시간을 앞두고 전격 단일팀 구성에 합의했고, 두 팀 모두 4강에 오르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다.

여자탁구가 남북 단일팀을 이룬 것은 27년 만이었고 너무도 극적이었다. 지구상에 오직 남한과 북한만이 할 수 있는 일. 단일팀의 위력과 감동은 여전했다. 우선 대회 도중 결성된 단일팀이기에 지난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추진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때보다 더욱 민감할 수 있었다. 출전 기회는 물론이고 자칫 잘못하면 메달 획득의 기회마저 잃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웨덴 할름스타드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 여자 단체전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아쉽게 패배한 남북 단일팀 선수들이 한반도기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한탁구협회 제공=연합뉴스]

그러나 국제탁구연맹은 단일팀을 이룬 남과 북의 선수들에게 통 큰 선물을 주기로 결정했다. 대회 도중 성사된 단일팀인 만큼 3, 4위전이 없는 세계선수권대회 4강은 곧 동메달을 의미한다. 남북한 선수 모두에게 동메달을 주기로 한 것이다. 결승에 올라 우승을 했더라도 금메달 역시 모두에게 돌아가도록 참가국 선수단 모두와 합의도 됐다. 이로써 한국은 6년 만에, 북한은 2회 연속 세계선수권대회 메달을 따게 됐다.

비록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0대 3으로 패배해 단일팀의 행보는 짧게 끝날 수밖에 없었지만 그 결과를 실패라고 하지는 않는다. 4일 KBS는 스포츠 채널이 아닌 지상파 채널에서 남북한 단일팀의 한일전을 중계했다. 이기기를 바라며 응원을 했지만 아쉽게도 급조한 단일팀은 전력의 시너지를 발휘하지 못했다.

한국여자탁구는 현정화 이후 쇠락하는 분위기이며, 그에 반해 일본은 훨씬 강해졌다. 단일팀 선수로 출전한 남북한의 전지희, 김송이, 양하은 선수들은 세계가 주목하고, 국민들이 응원하는 단일팀의 성과를 위해 최선 그 이상의 힘을 쏟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남북단일팀에게 거는 기대는 성적이 아니라 의미였다. 여자탁구가 단일팀을 이룬 것만으로도 남북은 충분했다.

1991년 지바에서 열렸던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남북은 여자탁구 단일팀을 구성해 출전했다. 이 대회에 출전한 현정화와 이분희는 중국의 9연패를 저지하며 우승을 차지해 세계를 놀라게 했고, 감동케 했다. ‘하나 된 남북의 힘은 강하다’라는 상징으로 오랫동안 우리들 기억에 남아 있게 됐다. 이때의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이번에도 그 감동을 얻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하루 만에 중계를 성사시킨 KBS의 순발력에도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중계가 없었더라면 이 감동은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탁구 중계를 보는 것이 얼마 만이냐며 새삼 지바의 영광을 떠올렸다. 선수들이 보인 혼신의 플레이에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다.

4일(현지시간) 스웨덴 할름스타드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 여자 단체전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남북 단일팀 선수들이 응원을 하고 있다. [대한탁구협회 제공=연합뉴스]

이번 여자탁구 남북단일팀은 현재 추진 중인 8월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단일팀 논의에 하나의 돌파구를 보여주었다는 의미도 찾을 수 있다. 남북 단일팀이 논의되면서 지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의 경우처럼 희생자 논란이 큰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병역문제가 걸려 있는 남자 종목은 훨씬 더 예민한 상황이다. 과거와 달리 국가적인 대사라고 해서 개인의 희생을 강요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북한 단일팀의 엔트리를 대폭 늘리는 방안이 필요하다. 국제탁구연맹은 남북단일팀을 위해 기꺼이 엔트리를 확대했고, 남북한 선수 모두가 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국제탁구연맹이 보인 통 큰 대처가 여타 종목으로 확산된다면 남북 단일팀의 논의는 좀 더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국제탁구연맹의 경우처럼 세계는 한반도의 평화 모드에 기꺼이 동참할 준비가 된 것으로 보인다. 남은 것은 한국의 스포츠 외교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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