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결국은 정치였다. 정권이 바뀌니 한국의 언론자유지수가 크게 높아졌다. 25일 국경없는기자회가 발표한 ‘2018 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은 지난해보다 20계단 상승한 43위를 기록했다. 국경없는기자회는 “문재인 대통령 당선과 함께 언론자유의 어두웠던 10년이 끝났다”며 “10년의 후퇴 뒤 눈에 띄는 개선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한국의 언론자유지수 추이 (미디어스)

국경없는기자회가 공개한 언론자유지수 평가 항목은 ‘언론·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18개 비정부기구, 150여 명의 언론인·인권운동가’ 등이 작성한 설문을 바탕으로 정해진다. 설문 내용은 △다원주의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자기검열 수준 △제도 장치 △취재 및 보도의 투명성 △뉴스 생산구조 등으로 구성된다. 이 중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은 언론자유지수에 큰 영향을 준다.

실제 언론자유지수는 각 나라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바뀐다. 전년 대비 순위가 하락한 국가들의 경우 정부에 대한 언론 탄압이 심해지고 있는 경향이 있다. ▲터키(157위, 2위 하락) ▲필리핀(133위, 6위 하락) ▲인도(138위, 2위 하락) ▲체코(34위, 11위 하락) ▲슬로바키아(27위, 10위 하락) ▲미국(45위, 2위 하락) 등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경우 기자들을 ‘인민의 적’이라 규정한다.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기자들을 수시로 모욕하고, “암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한다. 체코의 밀로시 제만 대통령은 “기자들을 위해”라고 새겨진 모형 소총을 들고 기자회견장에 나타났고, 슬로바키아 로베르트 피초 전 총리는 기자들에게 “더러운 반슬로바키아 창녀”·“멍청한 하이에나”라고 불렀다. 이에 대해 국경없는기자회는 “정당한 언론 보도를 비난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극도로 위험한 불장난이다”라고 경고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기자를 상대로 원색적인 비난을 한 경우는 거의 없지만 공공연하게 언론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특히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는 언론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극심했다. 공영방송 KBS와 MBC의 사장 선임 과정에서 정권의 손길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정현 의원(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은 세월호 참사 직후 KBS가 해경 등 정부 대처와 구조 활동의 문제점을 주요 뉴스로 다루자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편집에 개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명박 정권 때는 국정원이 ‘MBC 장악 문건’을 만들었다. 당시 문건에는 PD수첩에 대해 “대외적 상징성 때문에 당장 폐지가 어려운 PD수첩의 경우 사전 심의 확행 및 편파 방송 책임자 문책으로 공정성 확보”·“사전 심의절차 및 사후 제재 근거를 명문화, 저질·편파 방송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보완책 마련”·“좌파 세력에 영합하는 편파 보도로 여론을 호도해 국론 분열에 앞장”이란 내용이 담겨 있었다. 결국, MBC는 최승호 PD를 포함한 PD수첩 PD 6명을 인사 조치했다. 절반의 PD를 교체하면서 MBC를 장악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방송 심의도 마찬가지다. 정부·여당 추천 몫으로 들어간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 부위원장은 사무처 직원에게 청부 심의를 지시했다. 위원 이름으로 정치적인 안건이 올라가면 편파성 논란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에 일반인의 명의를 사용해 민원을 올린 것이다. 이들이 청부 지시한 안건 중에는 KBS ‘뿌리깊은 미래’·JTBC 뉴스룸 같이 당시 보수진영에서 문제를 제기한 방송이 포함돼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의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데스크, 일선 프로그램, 심의기관까지 장악하려 했다.

그 결과 언론자유지수도 2002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악의 수준으로 떨어졌다. 2009년 69위로 시작한 언론자유지수 순위는 2010년 42위로 올라갔다가 2016년까지 70위로 추락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언론자유지수 순위가 올라간 적은 없다.

문재인 대통령 기자회견 장면(연합뉴스)

2018년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20계단이 상승한 43위를 기록했다. 아시아에서 대만(42위) 다음으로 높은 수치다. 특히 ‘언론자유 상황이 좋음’이라고 평가받는 18~47위 권에 아시아 국가는 대만과 한국밖에 없다. 이 같은 순위 상승 원인으로 정권 교체와 문재인 정권이 언론을 대하는 태도를 꼽을 수 있다.

국경없는기자회는 한국의 언론자유지수 순위 급상승이 “10년의 후퇴 뒤 눈에 띄는 개선”이라고 평가했다. 국경없는기자회는 “문재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한국의 언론자유 상황은 전환의 계기를 맞았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을 상대로 벌인 투쟁 과정에서 그들의 투지를 보여줬다”고 밝혔다. 이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공영방송국 KBS와 MBC의 갈등이 종식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계점도 지적했다. 국경없는기자회는 “하지만 구조적인 문제가 여전히 존재한다”며 “공영방송국 경영진을 (정권이) 지명하는 제도는 개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언론인의 정당한 보도 활동을 억압할 수 있는 명예훼손죄가 형법 상으로 규정돼있는 것도 개선해야 한다”며 “북한과 관련된 민감한 정보를 퍼뜨리는 것을 극도로 가혹히 처벌하는 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진통을 겪는 방송법, 국가보안법 등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언론자유지수가 또 낮아질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정치권이 공영방송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공영방송 이사회에 대한 정당별 배분을 골자로 하는 방송법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이사회를 통한 정치적 영향력 행사를 유지하겠다는 얘기다. 이에 대한 의견 차이로 국회 파행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언론시민단체들은 정치권을 향해 "공영방송에서 손을 떼라"고 촉구하고 있다.

결국 언론자유지수가 20단계나 높아졌다는 이유로 한국이 ‘언론자유국’에 도달했다고 보긴 어렵다. 문재인 정부가 언론에 친화적인 정부인 것은 맞지만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 보장 등 언론자유와 관련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이번 발표를 보면 언론자유는 정부에 따라 언론자유국의 명예를 얻을 수도, 순위가 떨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언론자유를 높이기 위한 정부의 선택은 아직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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