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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먼저 할까요?’- 어른들의 사랑, 애증의 고비를 넘어 용서와 화해 그리고 책임으로[미디어비평] 톺아보기
meditator | 승인 2018.04.25 10:56

우리 사회에서 '어른들의 사랑'이라 하면 어떤 것들이 떠오를까? 이른바 '막장'이란 단어로 축약되는 바람, 불륜, 복수 등등으로 이어지는 '치정' 같은 것들이 아닐까. 그래서 어른들이 주요 시청층인 아침, 주말 드라마에는 이런 요소들이 들어가야 흥행이 이루어진다는 '선입견'이 작용하고, 대부분의 드라마들은 이 공식에 따라 시청률을 견인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어쩌면 우리 사회 '속물 어른'들에 대한 편견을 축적시키는 데 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런 편견 혹은 선입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4월 24일 종영한 <키스 먼저 할까요?>이다. 선정적(?)인 제목과 달리 드라마는 '어른됨'의 '사랑'을 논한다. 그리고 어른이라도, 아니 어른이라서 성숙되고 더 '아름다운' 사랑으로 마무리된다. 그래서일까, 양파의 껍질을 벗기듯, '어른의 멜로’에 천착했던 드라마는 안타깝게도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타방송사에 내어주며 한 자릿수의 약소한 성취로 종영되었다. 하지만 시청률로만 다 평가할 수 없는 사랑의 여운은 <키스 먼저 할까요?>를 이 봄, 오랜 여운이 남는 드라마로 기억되게 할 것이다. 

연민인 줄 알았는데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

물론 <키스 먼저 할까요?>의 시작도 바람인 듯 했다. 빌라의 아래윗집에 사는 손무한(감우성 분)과 안순진(김선아 분). 소개팅의 악연으로 시작하여 고독사 해프닝으로 엮어진 이 남녀. 그런데 에필로그를 통해 이들의 오랜 인연, 그 사연이 풀어진다. 비행기 승무원이었던 안순진과 승객이었던 손무한은 기상악화로 비행 난조 속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공감대로 만나지는 듯했다. 바람난 아내 때문에 가족과 이별하고 돌아오는 손무한과 남편의 바람으로 역시나 상처를 입은 듯한 안순진은, 안순진의 자살 시도로 기억할 수밖에 없는, 그리고 잊고 싶은 '인연의 실타래'로 엮이게 된 듯했다. 

하지만, 여느 막장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이들의 사연은 회를 거듭하며 전혀 다른 각도의 이야기로 펼쳐진다. 그리고 그 다른 각도의 이야기에는 배유미 작가가 언제나 그래왔듯, ‘사회적인 해원’이 가로놓여 있다. 배유미 작가는 그랬다. 2013년 작 <스캔들: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에서도, 2015년 <애인있어요> 등에서도 결국 얽히고설킨 인간관계, 남녀 관계 그 궁극에 부도덕한 구악의 연원을 놓이게 했다. 배유미 작가는 그 '악'을 궁극의 모순으로 자리하게 하지만, 그것에 천착하지 않는다. 그 연원은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그 해결에는 복잡한 인간사가 얽혀져 '인간'의 문제로 '치환'시켜냈다.

가해자와 피해자. 하지만 그들은 살아오는 과정 속에서 그 관계가 모호해지며 그 '연원'의 해법을 복잡하게 하고, '인간적 딜레마'에 빠지도록 만든다. 마치 작가는 인간사를 그리 무 자르듯, 혹은 두부 썰듯 단호하게 분명하게 설명될 수 없는 '복잡계'라고 항변해 왔던 듯하다. 몇 차원의 함수보다도 복잡하고 난해한 이 얽힌 인연의 '업보', 그래서 배유미 작가의 작품은 때론 난해하고 난감하며, 그 실타래를 풀다 시청자들이 머리에 쥐가 날 정도의 딜레마에 빠지도록 만든다. 

<키스 먼저 할까요?> 역시 다르지 않았다. 배우자에 대한 배신에서 살고자 하는 욕구를 잃은 공감대에 대한 '연민'인 줄 알았던 사랑은, 손무한의 무조건적인 호혜와 그런 호혜를 오갈 데 없는 신세의 가장 적절한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안순진의 욕망이 화답하며, 대뜸 키스 먼저 하고 동거의 수순을 밟으며 위태로운 동상이몽의 멜로로 전개되는 듯했다. 

서로를 책임지는 어른들의 사랑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

하지만, 그 멜로는 드라마의 중반부에 들어서며 색채가 변하기 시작한다. 그저 자기처럼 불쌍하고 안됐어서 안순진을 거둔 것인 줄 알았던 손무한의 '베풂'엔 알고 보니 시한부라는 설정이 등장하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안순진으로 하여금 생명을 포기하도록 만들었던, 그녀가 빚을 져서라도 포기할 수 없었던 딸아이의 '의문사'가 있었다. 대기업의 분말로 된 어린이 식품, 이미 외국에서는 판매가 금지된 제품의 유일한 희생자가 안순진의 딸이었으며, 그 대기업의 편에 서서 아이들의 눈을 현혹시킨 광고를 만든 담당자가 바로 손무한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손무한의 사연이 밝혀지는 순간, 무조건적이며 이타적인 듯했던 손무한의 '사랑'은 결국 죽어가는 자의 속죄의식으로 변모된다. 그리고 그 속죄의 내막을 안순진이 알게 되면서, 사랑은 급격하게 '애증'으로 변한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고, 심지어 그 과정에서 지친 남편마저 외면했던 재판에 여전히 매달리는 안순진이, 바로 그 '공범'이었던 사람을 이미 사랑하게 되었다는 이 '딜레마'는 이미 그들의 멜로에 감정이입했던 시청자들조차 당혹스럽게 만든다. 

따지고 보면 손무한이 죄가 될 게 있을까 싶기도 하다. 물건을 만든 당사자도 10여 년을 버티는 시간에, 아무 것도 모른 채 광고를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하지만 작가는 바로 그런 손무한의 좌절을 통해 '도덕'의 범위를 묻는다. 그리고 기업만이 아니라 그들의 공범자로 인해, 10여 년의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안순진'과 같은 사람들은 지울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강변한다.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

그리고 손무한의 속죄로 시작된 사랑은 결국 '책임'을 상징한다. 나 역시도 떳떳하지 않았다는 손무한의 책임의식은, 그 개인이 아니라 오늘날 대한민국의 번영, 그 시대를 살아온 어른들 그 누구에게라도 해당되는 말이라고. 우리 모두가 지금의 사회를 만들어 낸 '공범'이라 작가는 손무한을 통해 말하고자 한다. 결국 동시대적 책임론이다. 

하지만 인간사가 자로 잰듯, 혹은 더하기 빼기로만 이루어지지 않으니, 사랑해서는 안 되고, 속죄만 해야 하는 대상을 손무한은 사랑하게 되었고, 증오해야 하는 대상에 이미 안순진은 너무 의지를 하고 말았다. 이런 얽힌 관계를 드라마는 '젖는다'로 표현한다. 10년 전 딸의 무덤에서 통곡하던 안순진. 다시 6년 전 아무도 없는 동물원에서 하염없이 울다 자신의 손목을 그은 안순진. 그리고 다시 6년의 세월이 흘러서도 여전히 눈물을 흘리는 안순진이 자만심으로 똘똘 뭉친 손무한에 젖어들어 그를 변화시켰다고. 

결국 시작은 포기할 수 없었던 ‘모성’ 안순진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이제 그만하라고, 잊으라고 하는 딸의 죽음을 포기할 수 없었던 안순진은 10여년 세월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을 내어놓아 길거리에 나앉게 생기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사랑은 손무한을 변화시켰고 결국 그녀의 '해원'을 풀 동지를 얻게 했다.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

<키스 먼저 할까요?>가 말하고자 하는 이 시대 어른들의 사랑은 '책임'이다. 어른들은 키스도 하고 포옹도 하고 잠도 자는 어른들의 사랑을 한다. 하지만 육체적인 사랑만이 아니라 그들은 어른이기에 자신들의 삶을, 그리고 자신과 함께하는 이의 삶을 책임지고자 한다. 죽음 앞에 선 손무한이 그랬고, 애증의 고비를 넘은 안순진이 그랬다. 안순진으로부터 변화한 손무한이, 인간적으로 안순진을 '사랑'의 관계로 거두는 것으로 시작하여, 그는 간접적이었더라도 그가 저지른 '사회적 범죄'의 책임을 다하고자 했다.

안순진도 마찬가지다. 증오해야 할 대상을 사랑해 버렸다는 자괴감에 흔들렸던 그녀는 기꺼이 '적과의 동침'을 수용한다. 그리고 지금 그녀 앞에 속죄하는 손무한을 변화시켰듯, 삶의 끈을 놓아버린 그를 자기 밖에 모르는 은둔형 도토리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참사람'으로 거듭나게 한다. 그저 시한부 앞에서 육체의 삶을 연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더 살더라도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만든다.

그렇게 <키스 먼저 할까요?>는 사적인 의도로 시작하여 애증의 고비를 넘어, 용서와 화해 그리고 책임의 용광로가 된 성숙한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에 도달한다. 어른이 어른답지 못해 욕을 먹는 세상에서 에돌아 배유미 작가는 '어른됨'을 설파한다. 32부작, 시끌벅적한 사건 대신 때론 난해했던 두 남녀의 애증과 사랑을, 그 눈빛만으로도 설득이 되는 감우성과 여전히 헌신적인 김선아라는 배우의 연기로 설득해낸다.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만큼이나 운치 있었던 연출과, 그 연출을 한껏 감성적으로 풀어낸 OST가 여운이 남는 어른들의 멜로를 완성한다. 모처럼 '어른스러운'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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