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경철 위원장 빨리 오시오! 뜨거운 태양아래 힘차게 투쟁하는 동지들 서둘러 모이시라! 공부에 바빴던 당신들, 활동으로 분주했던 그대들도 이 기회에 모두 함께 자리하면 어떻겠나? 술이다. 시원한 술이다. 열심히 일하고 나서라서 좋고, 함께 싸우고 난 후라 더욱 시원하며, 무엇보다 생각 같고 마음 통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자리라 어느 때보다 맛있을 그런 맥주가 있다. 우리들만의 유쾌한 맥주파티다. 원용진의 아이디어다. 공부를 같이 하고 운동도 함께 하는, 그래서 오랫동안 늘 같이 붙어 다니다시피 한 원 선배가 뜬금없이 제안한 거다. 자기도 꽤 목이 말랐었나? 하기야, 요즘 날이 어떤데.

원용진 : “전 선생, 파업하는 KBS 친구들 위해 하루 날 잡고 일일 호프집이라도 해야 할 것 같지 않아요?”
전규찬 : (역시 ‘센스쟁이’라고 생각하며) “좋지요, 근데 일일 호프집이라는 게...”
원용진 : “뭐 비슷한 생각하는 언론학자들이 몇 푼씩 내서 그 사람들 한잔 사주는 거지 뭐”
전규찬 : (귀찮은 일이 좀 있겠다 싶으면서도) “좋습니다. 뭐 해보죠. 그러면 일일 호프 는 그렇고 각자 얼마씩 좀 모아 온 사람들하고 같이 모처럼 술이나 한잔 사주도록 하죠. 강준만 선배한테 먼저 때려주세요!”

▲ ⓒ곽상아

그렇게 해서 후다닥 꾸며지는 일이다. 이름은 아직까지 정해지지 않은, 공부하는 몇몇이 싸움하는 현장의 일꾼을 위해 여는 맥주파티다. 큰 이변 없으면 이번 금요일 저녁에 여의도 KBS 근처 호프집에서 있을 것이다. 좀 재미있고 색 다른 것 같지 않은가? 하기야 이런 일이 그 전에는 없었던 것 같다. 교수들이, 학자들이, 연구자들이 현장의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시간 내고 돈 모아 한 턱 쏘는 경우가 또 있었던가? 서로 잘 모르지만 그래도 인사하고 이야기 나누는 그런 파티의 제안이 있었던가? 개인적으로 이리저리 많은 것을 꾸며봤지만, 이런 술자리는 처음이다. 그래서 은근히 기대된다.

물론 주인에게 특별 부탁할거다. 생각만 해도 ‘캬!’ 시원한 3000CC 호프가 테이블마다 쭉 돌 것이다. 걱정 마시라. 나처럼 폭탄으로 타 드시길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소주도 몇 개씩 놓일 것이다. 얼음처럼 꽁꽁 언 맥주잔에 술을 섞어 채우고, 기분 좋게 돌아가며 ‘원 샷!’하면 어떨까? 서로 목청 높여 건배하고, 요란스레 잔 부딪쳐보자. 시원한 맥주가 우리 목으로 간질간질 내려간다! 그렇게 우리의 갈증을 적셔준다. 적지만 통닭과 골뱅이 안주도 골고루 나누고, 싸구려 마른안주조차 정겹게 찢어 나눠보자. 그렇게 싸지만 정다운 동정의 시간을 갖고, 어물쩍 인간적 통정의 시간을 가져보자.

분투 중인 KBS의 선한 노동자, 바로 당신들을 파티에 초대한다. 독립방송의 미래를 앞당기는 자, 오늘의 공영방송을 책임지고자 하는 멋진 그대들에게 이렇게 급히 초청창을 발송한다. 당연한 대접 아닌가? 다수자 속 소수자로서, 기득권적 기회주의를 과감하게 의식으로 떨쳐낸 멋진 당신들 아닌가? 특별한 ‘KBS맨’이 아닌 보편적 노동자, 전문적 방송인이 아닌 양심적 언론인으로 자기 정체를 밝힌 인간들이잖은가?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부터 엉망진창의 KBS를 민주적, 자율적으로 재구조화하고자 연합한 공영방송, ‘국민의 방송’ KBS의 참된 주인공들 아니신가?

그러하니 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술집에 들러라. 투쟁하는 당신들 모두가 어깨 걸고 근처 호프집을 찾아라. 앉지 못해 서야 하더라도 어떤가? 틈새 없이 꽉꽉 자리를 채워보자. 한 주의 투쟁을 그렇게 진하게 마무리하자. 연출하고 보도하고 촬영하던 일터를 떠난 당신들. 아나운서로서의 자기 직책을 잠시 접고, 그 외의 너무나 소중한 노동의 자리를 잠시 비운 채 투쟁에 나선 동지들. 파티의 탈주, 탈주의 파티가 시작되었다! 즐거운 투쟁이다! 생각하고 고민하고, 그러다가 판단하고 결정해, 마침내 행동으로 나선 당신들. 얼마나 힘들었고 또 힘든가! 잠시 부담과 짐을 내려놓고, 시원한 맥주로 기운 차리자.

▲ KBS본부 조합원들과 청경들 사이에 몸싸움이 일어났다. ⓒ곽상아

잠깐 쉿! 죽이는 음악, 죽이는 음성의 김창남 선배가 나서신다! 저이의 저 감미로운 노래 잠시 들어보자. 바로 저 착한 인간이 그대들 같은 선한 인간들에게 주는 아름다운 선물이다. 이웃한 MBC의 이근행 위원장, 언론노조의 최상재 위원장도 어서 와 함께 노래 들어보도록 하게. 당신들은 빠지지 말고 와야 한다. 이런 자리 미리 갖지 않았다고 섭섭해 하지 말라. ‘공부하는 놈들 이제야 좀 시간이 났구나!’ 그렇게 생각해주시라. ‘그래도 이렇게 찾아주니 기분 좋다’며 반겨주시게나. 식구들 모두 데리고 와 함께 편하게 마셔보세. 새로운 사람들과도 사귀며, 함께 거꾸러져 보는 것도 좋지 않겠나?

술친구라면서도 요즘 좀 뜸했잖은가? 소주 한 잔 꼭 사겠다고 해놓고도 이렇게 차일피일 미뤘지 않은가? 이 위원장은 다시 테이블 위에 올라가 호기 있게 고함질러 보세. 장수의 칼을 휘두르고, 호언의 무기를 날려보세. 최 위원장은 무얼 할 텐가? 그 멋진 목소리로 격려와 감사의 인사말을 날려주는 것은 당연하고. 모두 함께 외치고 박수칠 수 있도록 우리를 멋지게 선동해보세. 힘을 내고 또 힘을 확인할 수 있도록 모두를 힘껏 격려해 줘 보시게. 서둘러 마련한 거라 어떻게 잘 될지 걱정되면서도, 이런 재미를 기대하면서 금요일 저녁을 기다린다.

명동에서 수신료 인상 저지 반대서명 받느라 분주한 네티즌들, KBS앞 문화제에 늘 참석해 온 촛불들도 열렬히 환영한다. 이 뜨거운 여름, 선수들과 함께 하자. 공부하는 게 주특기인 우리도 모처럼 책을 덮고 연필을 놓고는 마시고 놀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리 함께 못하지만 뜻을 같이 한 분에게 감사하다. 당신들을 대신해 재미나고 신나는 파티의 시간을 보내겠다. 아참, 서프라이즈! 그 날 밤에는 칩거 중인 우리의 호프 양 박사도 모처럼 얼굴 내밀게다. 그러니 오시는 모든 분 단단히 준비하시는 게 좋다. 폭탄이 여기저기서 펑펑 터질 거니까. 알코홀릭 카오스의 환상적 체험을 그와 함께 하시게 될 테이니.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