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이 어명을 내린 동이에 대한 승은 상궁은 다양한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지요. 동이에게 가해지는 위협을 벗어나게 만드는 묘약으로 작용하기도 했지만 숙종의 마음을 건네는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승은 상궁은 이후 진행되어질 중요한 사건들의 단초가 되며 <동이>를 재미있게 끌어가고 있습니다.

승은 상궁이 가진 두 가지 힘

1. 숙종과 동이의 사랑

동이를 살리기 위해 숙종이 선택한 것은 승은 상궁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당장 동이를 잡아들여 문초를 하고 싶은 남인 무리들에게 그녀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그것이 전부이기 때문이지요. 왕이라고 하지만 폭군이 아닌 이상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는 없기에 명분 싸움에서 이겨야만 하는 궁중 암투에서 숙종의 선택은 당연했습니다.

여전히 불안한 상황에 놓인 동이를 지켜주고 보살펴 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왕인 숙종이 동이를 궁에서 중전 바로 밑의 자리에 올릴 수 있는 승은 상궁이었죠.

그렇다고 숙종이 단순히 동이의 생명을 구하려는 마음만으로 승은이라는 방법을 택한 것은 아니지요. 마음은 굴뚝같지만 감히 말하지 못했던 숙종의 마음을 에둘러 표현한 방식 또한 승은이었습니다. 승은이란 말 그대로 왕과의 동침으로 상궁의 지위를 얻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서슬 퍼렇게 동이를 잡아들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옥정과 남인들을 피해 동이를 자신 곁에 둘 수 있는 방법은 이것 밖에는 없지만 이는 곧 숙종이 그토록 원하던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방식이 되었습니다. 호탕한 성격과는 달리 무척이나 쑥스러움이 많은 숙종으로서는 자신이 좋아한다는 마음도 쉽게 전달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동이의 마음이 어떤지 물어보지도 못합니다. 마치 잘못 만지면 깨져버리고 마는 유리병처럼 조심스럽기만 하지요. 숙종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듯 동이 역시 언감생심 감히 자신이 왕을 좋아한다고 표현할 수도 없습니다. 분명 수많은 만남을 통해 그에게 특별한 마음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음을 스스로도 느끼고 있지만 자신의 신분에서 왕에게 사랑을 표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서로 사랑하면서도 표현을 하지 못하는 그들에게 승은은 의도적이며 필연적으로 사랑을 표현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검계 수장의 딸이라는 근본적인 한계로 인해 자신은 승은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동이는 궁을 빠져나옵니다.

아버지와 오빠가 죽은 언덕에 올라선 그녀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숙종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하게 되면 밝혀질 수밖에 없는 일이 두렵기만 합니다. 그렇게 자신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하는 동이 옆에 나타난 숙종은 따뜻하게 그녀를 감싸지요.

언제나 자신 곁에서 산처럼 지켜주는 숙종을 본 동이 역시 그동안 가슴속 깊은 곳에 숨기고 있던 감정을 모두 토해내며 가능만 하다면 같이 있고 싶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렇게 멀고 먼 길을 돌아왔던 그들의 사랑은 동이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죽음의 장소에서 사랑을 만들어냈습니다.

숙종과 동이가 사랑을 결실을 맺었다는 것은 천수와 옥정은 사랑에서 멀어졌다는 의미이지요. 평생을 마음에 품고 살아왔던 그들에게 숙종과 동이는 안타까움으로 혹은 지독한 악연으로 남을 수밖에는 없습니다. 재미있게도 이 둘은 동일한 선택을 하지요.

천수는 동이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는 선택을 하고 옥정은 오라버니인 희재를 구하기 위해 숙종의 사랑을 포기합니다. 그렇게 그들이 선택한 사랑이 어떤 결과로 다가올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사랑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더 큰 사랑을 선택한 그들은 어쩌면 가장 슬프고 불쌍한 존재들일지도 모릅니다.

2. 검계 수장의 딸 동이의 과거

동이에게는 절대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검계 수장의 딸이라는 과거는 그녀가 결코 승은 상궁이 될 수 없는 절대적인 결격사유이기 때문이지요. 남인들의 정치적 술수에 동이의 아버지가 말려들어 몰살을 당하게 되었기에 문제의 핵심에 다다르는 순간 남인과 동이, 서종사관은 벼랑 끝 싸움을 해야만 합니다.

서종사관의 아버지를 동이의 아버지가 죽인 것으로 꾸며 검계를 잡고 자신의 앞길을 막던 숙적을 제거했던 남인과의 문제는 필연적으로 동이와도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동이가 승은 상궁의 자리에 올라서면 수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그녀가 남인에게는 최대의 적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동이의 흠을 찾아야만 합니다.

동이나 서종사관이 궁으로 들어선 이유도 바로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의 답을 풀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고 동이는 원하지 않았던 왕의 여자가 되는 상황까지 이르자 미처 풀어내지 못했던 아버지의 억울함이 자신의 발목을 잡게 되는 상황에 몰리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동이가 두려움을 느끼고 왕의 사랑을 거부할 수밖에 없는 것도 당연하지요. 왕의 여자가 되는 순간 자신의 과거는 언젠가는 드러날 수밖에 없기에 억울함도 풀지 못한 그녀로서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구세주로 나선 것은 역시 서종사관이었습니다.

자신 아버지에 대한 억울함도 있지만 동이와 죽은 동이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강했던 그는 자신이 그동안 오랜 시간 조사해왔던 자료들을 토대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렇기에 숙종에게 건넨 옥정의 거래를 받아들이라는 말을 할 수 있었죠.

<동이> 초반 검계는 무척이나 중요한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천민들의 삶을 사람다운 삶으로 바꾸려던 그들의 노력은 많은 이들에게 호평을 받을 수밖에는 없었지요. 하지만 검계 조직이 무너지고 새로운 수장으로 들어선 천수가 동이를 위해 움직이는 동안 검계는 드라마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새로운 검계 조직의 수장이라는 천수의 활약은 거의 보이지 않고 동이의 키다리 아저씨처럼 행동하는 그에게서는 천민을 위한 조직 수장의 모습은 찾을 수 없습니다. 그 역시 동이 아버지 죽음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궁으로 왔지만 용두사미로 끝나버린 느낌입니다.

동이의 승은으로 자연스럽게 검계의 이야기가 수면 위로 올라왔지만 이는 검계가 추구하는 의미를 수행하기 위함이 아닌 모든 사건들을 풀어내기 위한 원죄로 작용합니다. 서종사관과 천수로 인해 검계의 존재감과 억울함이 밝혀지며 동이에게 날개를 달아줄 수밖에는 없겠지만 초반 기세 좋게 나아갔던 검계는 무의미한 존재로 남겨졌습니다.

물론 검계가 꿈꾸었던 사상을 숙종과 동이가 실천해 나간다는 설정이 가능하겠지만 이 역시 모두를 이해시키기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부분이지요.

이제 숙종과 동이는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었고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지난한 과정을 겪어내고 비로소 하나가 되어 새로운 극을 이끌어나가려 합니다. 죽음의 벼랑위에서 아름다운 사랑을 이야기했듯 그들이 어떤 재미를 이야기할지 기대됩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