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그동안 방송사에선 상품권으로 비정규직 직원의 임금을 지급한 사례가 관행처럼 있어왔다. 프로그램에서 협찬 명목으로 들어온 상품권이 임금으로 처리된 것이다. 이 같은 관행은 한겨레21의 ‘상품권 페이’ 보도를 통해 밝혀졌고 각 방송사는 자기반성과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런 상황에서 상품권으로 방송작가의 임금을 지급한 KBS 김 모 PD가 한겨레 보도가 자신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며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한겨레21 1195호 표지(한겨레)

한겨레21 1195호의 표지 기사 <열심히 일한 당신 상품권으로 받아라?>는 프리랜서 스태프에게 상품권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방송사를 고발했다. 해당 보도를 통해 카메라 감독에게 임금 900만 원을 백화점 상품권으로 지급한 SBS, 작가에게 임금으로 문화상품권 115만 원을 지급한 KBS 등 방송계에 널리 퍼져있는 관행이 드러났다. 하지만 상품권으로 작가에게 임금을 지급한 KBS 김 모 PD가 한겨레신문과 해당 기사를 작성한 김 모 기자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KBS 김 모 PD는 관련 소장에서 “기사로 인해 명예가 훼손되고 방송계에서 쌓아왔던 사회적 평가를 잃어버렸다”고 주장했다. 김 모 PD는 “작가가 받을 수 있는 합당한 금액이 있다”며 “그보다 더 많은 돈을 상품권으로 지급했다”고 말했다. 이어 “방송 작가를 배려해주었을 뿐 갑질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임금을 상품권으로 지급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근로기준법 제43조에 따르면 “임금은 통화(通貨)로 직접 근로자에게 그 전액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상품권, 배추 등 방송사에서 임금 대신 지급했던 물품 등은 통화가 아니다.

방송계 ‘상품권 페이’를 최초로 고발했던 한겨레21의 보도는 방송계 안팎에 큰 반향을 불러왔다. SBS는 사과문을 통해 “상품권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사례를 근절하겠다”고 말했다. MBC 최승호 사장은 “앞으로 MBC 안에서 구성원들이 약자들에게 갑질을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면 엄중하게 간주하고 다뤄나갈 것이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PD연합회는 성명을 통해 “상품권 임금의 부조리한 관행은 당장 근절해야 한다”며 “상품권 임금이 잘못된 관행이라는 걸 모르는 PD는 없다”고 강조했다.

KBS 양승동 사장도 취임식에서 “극단적인 저임금과 살인적인 노동시간, 차별적인 처우와 같은 비정규직과 외주제작사에 대한 부당한 관행은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한겨레21의 ‘방송계 갑질’ 연속보도는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이달의 좋은 보도’에 선정되기도 했다.

KBS 사옥 전경(KBS)

최근 KBS는 프로그램 <끝까지간다>를 통해 자사의 뉴스, 프로그램, 제작 관행에 대해 비판을 했다. 과거 자사의 적폐와 관행을 반성하고 새롭게 방송사를 꾸려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런 KBS의 분위기 속에서 김 모 PD의 민사소송이 국민 상식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PD 본인이 억울해서 민사소송을 진행하는 건 그럴 수 있다”며 “그러나 갑질이 아니라는 PD의 관점은 국민·상품권을 받았던 사람이 느꼈던 상실감과 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상품권으로 임금을 주는 건 상식의 선에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KBS는 김 모 PD의 민사소송에 대해 “개인이 진행한 소송이라 관련 내용을 알지 못한다”고 전했다. 김 모 PD와는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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