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벌어진 2010 남아공 월드컵 8강전은 축구의 재미를 만끽하게 해주었습니다. 만년 우승팀 브라질은 자중지란을 일으키며 네덜란드에 발목을 잡혔고, 아프리카의 희망이 된 가나는 마지막 순간 페널티 킥 실축으로 아프리카 팀 사상 최초의 4강 꿈이 무너졌습니다.


공은 둥글고 그래서 축구는 재미있다

1. 자중지란 브라질과 영특했던 네덜란드

철저한 실리 축구를 표방한 둥가 감독의 브라질은 이번 월드컵에서 지지 않는 축구를 선보이며 과거 브라질을 상징하던 화려한 삼바 축구는 사라졌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보여 왔습니다. 강력한 스쿼드를 갖추고 지지 않는 축구를 하는 브라질은 당연하게 우승 후보다운 전력을 뽐내왔습니다.

전반전 역시 브라질은 네덜란드를 압도하며 공격을 주도했습니다. 첫 번째 호비뉴가 다니의 패스를 받아 멋진 골을 넣었지만 오프사이드로 아쉬움을 곱씹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호비뉴에게는 다시 한 번 찬스가 주어졌습니다. 중원에서 멜루가 멋진 침투 패스를 넣어주고 오프사이드까지 고려한 호비뉴의 슛은 멋지게 첫 골이 되었습니다.

첫 골 이후 네덜란드가 카윗의 슛이 한차례 나오기는 했지만 완벽하게 브라질 페이스에 밀리는 경기를 했습니다. 압도적인 실력으로 네덜란드를 몰아붙이던 브라질은 몇몇 결정적인 찬스들을 선보이며 역시 우승 후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죠.

하지만 후반이 시작되며 분위기는 반전을 꾀하기 시작합니다. 어차피 지면 끝인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는 없었죠. 1-0으로 지든 10-0으로 지던지 지면 끝인 상황에서 공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네덜란드는 이른 시간 안에 추가골을 터트렸습니다.

스네이더가 오른쪽 측면에서 올린 볼을 골키퍼와 함께 경쟁하던 멜루가 헤딩으로 자책골을 기록하며 경기의 흐름은 네덜란드로 옮겨가기 시작했습니다. 노련한 경기 운영을 통해 다혈질인 브라질 선수들을 자극하며 파울을 유도하는 전략은 유효했습니다.

오른쪽에서 반칙을 유도해낸 로빈을 거칠게 비난하는 호비뉴의 모습은 오늘 승패를 어느 정도 짐작하게 할 정도로 과격해 보였지요. 조용하게 준비하는 로빈과 분을 참지 못하는 호비뉴의 상반된 모습은 바로 골로 이어졌습니다. 로빈이 올린 낮은 프리킥을 카잇이 중간에서 헤딩으로 뒤로 넘기고 170cm 밖에 안 되는 스네이더가 멋지게 헤딩골로 성공시키며 브라질의 몰락을 불러왔습니다.

마치 축구 게임에서나 볼법한 멋진 골로 연전에 성공한 네덜란드는 다시 한 번 호재를 만나게 되지요. 자책골을 넣었던 멜루가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반칙으로 넘어져있던 로빈을 발로 밟아 퇴장을 당했지요. 수적인 열세는 이미 앞선 네덜란드에게는 다양한 전략들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스네이더의 골을 지킨 네덜란드는 마침내 준결승에 올라섰습니다. 초반 완벽한 브라질 페이스가 후반 들어 네덜란드의 공격에 무너지기 시작하며 스스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브라질은 만년 우승팀이면서 다시 한 번 8강전에서 탈락해야 하는 고배를 마셨습니다.

최강의 팀으로 불리면서도 단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했던 네덜란드로서는 우승 후보 0순위였던 브라질을 잡으면서 우승의 꿈을 키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2. 기안의 눈물, 수아레스의 환호

우루과이와 가나의 경기는 '신의 손' 다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신예 공격수 수아레스와 골키퍼 무슬레라가 막아낸 볼들로 인해 우루과이는 1950년 멕시코 월드컵 우승 이후 40년 만에 다시 4강에 올라서며 과거의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의 자존심인 가나와 남미의 뚝심인 우루과이의 경기는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재미있는 경기였습니다. 전반 내내 서로 공수를 이어가며 비등한 경기를 하던 그들이 한 쪽으로 무게 중심이 쏠리게 된 것은 가나의 문타리 선수가 30여 미터 전방에서 과감하게 한 슛이 골로 연결되면서 부터였습니다. 그리고 전반전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우루과이로서는 초반 포를란 등에게 왔었던 기회를 살리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을 수밖에는 없었지요. 네덜란드와 브라질 전처럼 우루과이는 페르난데스에서 로데이로로 선수 교체를 한 후 공격적인 전술로 기회를 잡았습니다. 후반 10분 아크 서클 부근에서 프리킥 찬스를 잡은 우루과이는 최고의 공격수인 포를란이 직접 프리킥으로 동점골을 뽑아내며 결코 만만한 팀이 아님을 증명해냈습니다.

이후 서로의 공격들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우루과이는 절호의 찬스를 만들었습니다. 왼쪽 측면을 파고들던 포를란이 길게 넘겨주며 골키퍼까지 제치는 결정적인 찬스를 수아레스에게 주었지만 아쉽게 옆 그물을 때리며 찬스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공방이 지속적으로 이어졌지만 가나의 골키퍼 킹슨의 연이은 선방으로 분루를 삼켜야만 했던 그들은 연장전으로 돌입했습니다. 연장 전반은 그들에게 호흡을 가다듬는 시간이었고 연장 후반 결정적인 찬스를 가진 가나는 통한의 눈물을 흘려야만 했습니다.

끝나기 직전 결정적인 찬스를 맞이한 가나는 총공세를 이어갔고 가나의 슛은 골키퍼 뿐 아니라 최종 수비를 하러 들어간 우루과이 선수들마저 모두 골대를 지키는 상황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한두 번의 결정적인 선방이 이어졌지만 아디이아의 슈팅을 수아레스가 핸드볼을 하듯 손으로 막아내며 퇴장을 당하게 됩니다.

퇴장과 함께 페널티 킥이 주어졌고 슈팅을 하면 경기는 종료되어 가나의 승이든 승부차기로 가든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면 되는 상황에서 가나를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기안의 실축은 우루과이에게는 기사회생이었습니다. 결정적인 상황들을 만들며 가나를 8강까지 이끌었던 에이스 기안이 골포스트를 맞추는 페널티 킥은 가나로서는 영원히 기억될 실축이었죠.

그렇게 승부차기에 접어들어 가나의 첫 번째 키커로 방금 전 실축한 기안이 나서고 침착하게 성공시키는 모습을 보며 대단하다는 생각밖에는 안 들었습니다. 심리적인 압박이 엄청 났을 텐데도 불구하고 가장 힘든 첫 번째 키커로 나서서 성공시키는 모습은 그가 왜 가나의 에이스인지를 잘 알려 주었죠.

승부차기는 우루과이의 골키퍼 무슬레라의 두 번에 걸친 선방으로 인해 40년 만에 우승을 노릴 수 있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젊은 에이스 수와레스가 4강전에 출전할 수는 없지만 팀의 패배를 레드카드로 막아낸 그는 우루과이에게는 영웅일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마라도나의 '신의 손'을 능가하는 수와레스의 신의 손 사건은 월드컵에 영원히 기록될 특별한 퇴장이 되었습니다. 가나가 아프리카 사상 최초 4강 문턱에서 떨어지며 가장 서글프게 울었던 이는 기안이었습니다. 부상에도 팀을 위해 8강전에 나서 연장전까지 가장 활기차게 움직였던 그는 페널티 킥 실축 하나로 승패가 갈리는 가장 잔인한 승부의 주인공이 되어버렸습니다.

축구의 무한 변수와 재미를 만끽하게 해준 8강전 두 경기는 이후 벌어지는 경기들에 대한 기대를 극대화해주었습니다. 비록 우승후보 브라질이 통한의 패배로 4강전에서 볼 수는 없게 되었지만 남은 팀들의 열정적인 경기는 월드컵만이 전해줄 수 있는 재미였습니다.

펠레의 저주가 다시 한 번 입증되기 시작한 2010 남아공 월드컵이 과연 펠레의 저주가 실현될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독일을 우승 후보로 꼽은 펠레는 오늘 경기로 인해 브라질이 탈락했고 아르헨티나와 독일의 승자 중 한 팀이 우승을 해야만 저주가 풀릴 텐데 과연 저주를 풀어낼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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