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봉춘 시절의 MBC에는 몇 개의 상징적 프로그램들이 존재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100분 토론>이고 MBC 정상화 이후 가장 오래 휴식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4월 10일 <100분 토론>이 돌아왔다. 돌아온 <100분 토론>이 다룬 것은 개헌이었다. 패널로는 유시민 작가, 박주민 의원, 나경원 의원, 장영수 교수 등이었다.

이날 토론 프로그램을 보면 민주주의란 인내가 필요한 제도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답이 명확한데도 주장이 엇갈리고, 그럼에도 그 상대와 끝까지 함께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점은 적어도 유시민이 존재하는 한 보수 측의 토론은 항상 질 수밖에는 없다고 결론을 내려도 무방할 정도다.

MBC <100분 토론> ‘대통령제 vs 책임총리제, 30년 만의 개헌 가능할까?’ 편

심지어 이제는 정치 일선에서도 물러나고, 나이까지 먹어서 예전과 달리 순해진 유시민 작가임에도 토론으로는 아직도 무적임을 새삼 입증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하긴, 문과 출신은 알아도 모른다는 비트코인에 대해서도 공학박사를 논리로 이겨낸 실력이니 더 할 말이 없는 존재다.

<100분 토론>이 그 화려한 복귀에 유시민 작가를 초대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의도라고 봐야 한다. 반면 보수쪽 패널은 여전히 인물난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비정치인 패널로 출연한 고려대 장영수 교수는 여러 측면에서 시청자들의 빈축을 샀다. 히틀러를 예를 들면서 문재인 정부의 문제점을 거론하는 논리적 비약은 곧바로 유시민 작가의 반발을 샀고, 결정적으로 대통령 개헌안 자료를 엉뚱한 것을 들고 나와 토론 막판에 망신을 겪기도 했다.

유시민 작가가 대통령 개헌안을 사회주의 개헌이라고 주장하는 자유한국당을 향해 ‘무식의 소치’라고 사이다 발언을 한 이후에 벌어진 일이다. 유시민 작가는 대통령 개헌안의 실제 조항을 읽어주기까지 하며 사회주의 헌법이라는 주장을 일축했다. 구체적으로는 개헌안 128조와 133조이다.

그러자 나경원 의원과 장영수 교수 모두가 이 부분에 반발했다. 유시민 작가가 말한 128조의 “법률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한다는 조항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러자 유시민 작가가 다시 갖고 자료를 들어 해당 조항을 읽어주었다. 분명 “필요한 경우에만 법률로써”라는 부분이 존재했다. 그러자 나경원 의원과 장영수 교수는 동시에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들의 자료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MBC <100분 토론> ‘대통령제 vs 책임총리제, 30년 만의 개헌 가능할까?’ 편

서로 다른 자료를 보면서 사회주의 헌법 논쟁을 벌이고 있는 웃지 못할 블랙코미디 상황에 사회자가 나중에 확인해 알려주겠다고 했지만, 나 의원과 장 교수는 곤란한 입장이 되고 말았다. 다음 주 <100분 토론>에서 알려주겠지만 미리 확인해본 바에 따르면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았다는 유시민 작가의 말대로 실제 청와대 헌법 개정안 발의안은 유시민 작가의 말대로였다.

그러나 청와대가 아닌 인터넷상에 돌아다니는 헌법개정안은 청와대 자료와 128조 2항 부분이 달랐다. 심지어 언론 매체에 게재된 자료조차 청와대 본과는 달랐다. 헌법 개정안이 여러 버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당혹스럽지만, 일단 청와대 자료와 국회 의안정보 시스템에서 다운받은 자료는 청와대 것과 같았다.

결국, 나 의원과 장 교수가 정확하지 않은 자료를 가져온 것이었는데, 헌법이라는 매우 중요한 안건을 토론하는 자리에 부정확한 자료를 들고 나오는 것은 기본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잘못된 자료에 기반해서 대통령 개헌안의 문제점을 논한다는 것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이 현상이 비단 <100분 토론>에서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서로 다른 자료를 들고 싸우고 있는 국회의 모습이 그려져 아찔한 심정일 수밖에 없었다. 돌아온 <100분 토론>이 의도치 않게 개헌을 둘러싼 사소하지만 결정적 현실을 풍자한 셈이 됐다.

▶ 청와대 개헌안 주소 https://www1.president.go.kr/Amendment
▶국회 의안정보 시스템 http://likms.assembly.go.kr/bill/billDetail.do?billId=PRC_S1N8H0U3D2M6Y1W4W5I9F4R0K4P8Z5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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