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자살이다. 이번엔 박용하다. 처음 인터넷에서 ‘박용하 사망’이란 기사를 보았을 땐 대체 박용하가 누구지? 싶었다. 설마 내가 아는 탤런트 박용하라곤 생각지 않았다는 애기다. 유명하다는 의미는 ‘그는 나를 몰라도 나는 그를 아는 것’이다. 박용하씨가 유독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내가 좋아하던 드라마 ‘겨울연가’에서 라디오 PD 역할을 맡아 호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서울 흑석동의 원음방송 본사에서 촬영해서 원불교 교도나 원음방송 애청자들에게 더욱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인지라 마치 나와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것 같은 은근한 동료의식도 있었다.

박용하의 작품을 많이 보지는 못했으나 평소 부드럽고 온화한 이미지, 착한 심성이 고스란이 드러나는 투명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가 한류스타로서 부각되고 있는 점이나 노래하고 연기하는 다재다능한 탤런트로서 재능도 빛이 나지만 평소 촬영장에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각별했다 하니 아까운 사람 잃은 슬픔이 더 크다.

▲ 고 박용하씨. ⓒ연합뉴스
문제는 왜 자꾸만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스타는 하늘의 별, 그곳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하늘에서 빛을 내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해야하고 피와 살을 깎는 고통을 감내해야 할지도 추측할 수 있다. 높은 곳에 홀로 떠서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고독한지도 여러 사람의 말이나 (때로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행위를 통해서도 알려졌다. 더 높이 더 빛나기 위해 처절한 사투를 벌여야 한다는 것도 안다. 게다가 개인사가 겹칠 때는 그 고통이 죽음의 유혹을 떨쳐내기 힘든 모양이다. 그렇게 우리가 아는 스타들이 하나 둘 스스로 삶을 마감하며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마음 속에 떠있을 뿐. 그들에겐 정녕 희망이 없었을까? 탤런트의 죽음 앞에서 문득 방송의 책임감이 무겁게 다가온다.

원불교 교리와 마음공부가 컨셉인 <거듭나게 하소서>라는 교화프로그램이 있다. 10여년 전 어느 날 어느 청취자 한분이 당시 PD겸 진행자인 장명주교무님에게 전화를 걸어 “죽으려고 했다가 방송덕분에 마음을 고쳐먹었다”며 감사를 전했다. 사연인즉 개인적으로 괴로운 일이 있어 바다에 빠져 죽으려고 서해로 가는 길에 우연히 그 방송을 듣게 되었던 것이다.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한줄기 희망이 생기고 문득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길로 자동차를 돌렸다는 얘기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그 애청자는 지금 잘 살고 있겠지?

전북원음방송에서 제작해서 전국으로 송출되는 <성지의 아침>은 새벽5시부터 6시까지 방송되는 원불교 좌선 명상 프로그램이다. 간혹 새벽근무에 나서는 타 언론사의 기자 후배들로부터 “방송 들으면서 하루를 잘 설계하고 있다”는 인사말도 전해 받고 있는데 역시 종교에 관계없이 많은 청취자들이 위안을 받고 있다는 모니터를 보내주고 있다. 최근에는 이 프로그램 진행겸 PD인 안혜연교무님을 찾는 전화가 늘고 있다. “시그널 음악이 좋은데 제목이 뭔가요?”에서부터 “오프닝이 좋은데 메일로 보내 줄수 있나요?” “00날 말씀하신 00는 무슨 뜻인가요?” 교리 해석까지 다양하다. 친절한 안혜연교무님은 성심껏 제목도 알려주고 메일로 답장도 하고 전화로 교리도 설명해준다. 급기야 <성지의 아침>을 듣고 입교하고 싶은데 절차가 어떻게 되느냐는 전화가 걸려와 인근 교당으로 안내절차해주고 교화의 보람을 만끽하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현대인들의 공허함을 채워주고 삶의 의미를 북돋워주며 인간으로서 본연의 자아를 찾아주는데 종교방송의 목적이 있는 만큼 청취자 역시 종교방송으로부터 그러한 위안을 찾고자 하는 것도 같다. 나 역시 타 종교방송을 들으면서 교화방송의 구성이나 진행을 모니터하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종교방송이 주는 평화로움을 음미할 때가 많으니 종교방송이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자부해본다.

▲ <성지의 아침> 홈페이지 캡처.
안혜연 교무님의 방송원고는 개인적으로도 좋아한다. 새벽방송에 걸맞게 간결하면서도 사유할 수 있는 내용, 무엇보다 희망과 용기를 전하는 내용이 좋다. 6월28일에 방송된 <성지의 아침> “자신에게 깨어있으라”는 오프닝멘트를 옮겨본다.

우리 자신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갖고 깨어있으신지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진정으로 날 위하는 일인지
지금 내가 나를 바른 길로 잘 인도하고 있는지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방식이 나를 어떻게 만들어 가고 있는지
먼 훗날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
난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나는 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완전하게 믿고 있는지요.
우리 자신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갖고 깨어있으신지요.

“늘 깨어있으라”는 가르침은 종교방송의 의무이다. 자신을 아끼고 살피고 더불어 이웃과 자연과 상생하는 길, 방송에서 그 길을 내 주고 싶다. 외롭고 지친 사람들과 동행하며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고통은 고통을 동반하는 것 같지만 고통의 이면에는 반드시 희망이 있다고, 그 희망을 함께 보자고.

안타깝게 운명을 달리한 박용하씨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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