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월드컵에서 원정 첫 16강의 새 역사를 쓰고 온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29일 귀국해 국민들의 뜨거운 환영받았다. 비록 8강 진출에는 실패했으나, 우루과이전에서 보여 준 태극전사의 지치지 않는 투혼과 경기력은, 비단 우리나라 국민뿐이 아닌, 전세계 축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그들에게 찬사와 격려가 쏟아졌다.

태극전사가 금의환향했던 날, 이웃나라 일본은 남아공에 남아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파라과이를 넘어 8강에 오르겠다는, 사무라이 블루의 꿈이, 현실의 문 앞까지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카다재팬은 발 앞에 놓인 꿈을 골문 밖으로 날려버렸다. 연장전을 포함한 120분간의 혈투 끝에 '11M 룰렛' 승부차기까지 도달했지만, 세 번째 키커로 나선 고마노 유이치가 골대를 맞추면서, 일본의 꿈도 눈물 속에 사라지고 만 것이다.

8강 탈락 일본축구, 왜 비난받을까?

일본 열도의 반응은 16강에 오른 것만으로도 충분히 선전했다며, 대표팀에 대한 격려를 아끼지 않는 상황이다. 그러나 <일본VS파라과이>전을 바라보는 전세계 축구팬들의 반응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못하다. 중계를 맡았던 차범근 해설위원도 여러 차례 지적했듯이, 양팀의 경기력이 기대만큼 따라 주지 못했다. 가장 재미없던 16강전으로 꼽을 정도로, 졸전에 가까웠다.

경기가 끝난 직후, 외신들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특히 일본에 대해, 승리에 대한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며 혹평이 주를 이룬다. 영국언론들은 골대를 맞고 나온 마츠이 다이스케의 슛을 빼면 인상적인 장면이 없는 지루한 경기였다며 타전했고, ESPN 역시 특별한 경기평이 필요 없다는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8강에 탈락하고도 호평을 받았던 한국대표팀과는 대조적이다.

이 같은 외신의 반응은 당연했다. 한일 양국 간에 특수성이 보태져, 경기의 과정보다는 결과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국내 축구팬들의 입장에서 볼 땐, <일본VS파라과이>의 경기는 비록 졸전이었으나 긴장감은 있었다. 그러나 유럽이나 남미 등의 언론이나 축구팬들의 입장은 다르다. 누가 이기든 별 상관이 없다. 결과적으로 과정에서 축구의 재미를 찾기 때문에, <일본VS파라과이>는 박수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지켜보는 게 시간낭비였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일본축구, 한국덕분에 오른 16강?

8강에 탈락하긴 했으나, 일본은 덴마크전 3:1 승리를 포함해, 원정 첫 16강이란 쾌거를 달성했다. 월드컵이 열리기 전까지만 해도, 자국민조차 3전 전패로 조별예선을 탈락할 것이라며 기대를 접었을 정도다. 조편성을 떠나, 워낙 평가전에서부터 졸전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짓말 같은 일본의 16강 진출은 오카다감독을 역적으로 영웅이 바꾸어 놓았고, 열도를 축제분위기로 몰아넣었다.

일본인들은 '오카다매직'이라고 부르지만, 실질적으로 그들이 16강에 오르는 데, 보이지 않는 서포트를 해준 것은 한국대표팀이었다. 바로 월드컵이 열리기 직전, 일본에서 벌어진 '한일전'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 박지성과 박주영으로 릴레이 골로 0:2로 패한 일본대표팀. 안방에서, 그것도 월드컵 출정식을 앞두고 라이벌에게 당한 패배는, '충격과 공포'라면 설명할 수 있을까.

한국에게 패한 오카다감독은, 같은 조의 네덜란드, 카메룬, 덴마크를 염두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격력에선 한국이상으로 강한 팀들이다. 오카다감독은 한일전 이후, 스트라이커를 스타팅에서 배제하고, 중앙미드필더 혼다 게이스케를 최전방에 세우는 전술적 변화를 꾀한다. 대신 중앙을 두텁게 하는 수비축구를 준비했다. 이 전략은 조별예선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안방에서 승리를 장담했던 한일전의 패배가, 오카다감독에게 대표팀의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고질병이라 할 수 있는 결정력이 빈약한 포워드는 배제하고 미드필더를 최전방에 세운 오테나치오. 후반전에 포워드를 내세워 한방을 노리는 전술. 만일 당시 한국에게 패하지 않았다면, 오카다감독이 미드필더 혼다를 최전방에 놓는 극단적인 전술을 썼을까?

분명 일본축구는 남아공월드컵에서 성공을 이루었다. 재밌는 사실은, 한국이 그리스에 승리하자 일본도 카메룬을 꺾었고, 한국이 16강에 오른 뒤에 그들도 뒤를 밟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아쉽게도 나란히 8강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때문에 '일본은 한국의 따라쟁이'라는 농담 섞인 얘기도 네티즌사이에 오고간다.

사실 오카다재팬이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기술보다는 체력에 중점을 두면서, 한국의 압박축구를 쫓았던 건 부인할 수 없다. 문제는 압박축구를 완벽하게 녹여내고 조직력을 끌어올릴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때문에 공격보다는 수비위주의 전술이 불가피했고, 일본이 자랑했던 미드필더간의 패스플레이가 실종되는 결과를 낳았다.

일본축구의 색깔을 빼고 얻은 결과가 16강이었다. 자신의 유니폼에 맞는 축구를 하지 못하고, 이웃나라 한국팀의 유니폼을 입었으니 플레이가 투박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일본 선수들의 기본적인 재능은, 전술 변화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했고, 강팀과 대등하게 맞설 정도로 뛰어났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을 너무 교과서로 삼은 탓일까. 그들의 운도 결국 16강에서 멈추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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