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들은 북으로 가라.” “총살시켜라.” “저 빨갱이새끼들 죽여.”

욕설과 폭행, 광기어린 고성이 난무했습니다. 급기야 가스통과 시너까지 등장했습니다. 참여연대가 유엔 안보리에 보낸 천안함 관련 서신 때문이었습니다. 어버이연합, 고엽제전우회 같은 극우단체들은 연일 참여연대 앞에서 과격 시위를 벌였습니다. 미신고 불법집회였지만 경찰은 사실상 이들을 방치했고 급기야 참여연대 간사들 일부가 극우단체 회원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참여연대 앞은 민주주의가 실종된 테러의 현장이었습니다.

▲ 17일 오전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앞에서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회원들이 참여연대가 천안함관련 서한을 UN에 전달한 것을 비난하며 항의시위하고 있다. ⓒ연합뉴스
언론들은 이들의 ‘행패’를 보도했습니다. 대부분 언론은 이 광기의 난동에 참여한 단체들을 보수단체라고 표현했습니다. <한겨레> 역시 사실 그동안 이들을 보수단체라고 지칭해왔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사가 나가면 저는 늘 <한겨레> 독자들로부터 ‘왜 언론이 저런 사람들을 보수라고 지칭하느냐’는 항의를 받곤 했습니다. ‘다름을 인정할 줄 모르는 사람들조차 보수라고 지칭하면 진짜 보수들은 어찌하란 말이냐’는 볼멘 소리였습니다. 일리 있는 말입니다.

언론은 늘 대중 전반이 사용하는 보통의 용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문지가 아닌 수십 만명의 대중을 독자층으로 가진 언론으로서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가장 좋게는 중학생도 알아들을만한 용어와 개념을 사용해 기사를 써야 합니다. 이 때문에 사회적으로 합의된 용어가 아니면 기사에 섣불리 반영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막가파식 보수단체들이 한국 사회 보수단체의 대부분인 것이 사실입니다. 대부분 매체가 참여연대를 찾은 ‘난봉꾼’들을 극우단체가 아닌 보수단체라고 표현한 것은 그래서 별 무리없는 선택입니다. 어버이연합 추선희 사무총장은 자신들을 ‘진보하는 보수’라고 불러달라고 하지만 사실 터무니없는 주장입니다. 이들의 행동은 극우단체의 전형입니다.

그런데 17일자 <한겨레>를 보면 참여연대 앞 난봉꾼들을 극우단체라고 지칭한 것이 눈에 띕니다. 아마 최근의 언론보도 중에선 보수와 극우를 구분한 최초의 기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한겨레>는 이명박 정부를 보수. 고엽제 전우회 같은 단체를 극우단체로 구분해 비판했습니다. “보수가 ‘마녀 사냥’ 운을 떼고 극우단체가 사냥에 나섰다”며 참여연대 앞 시위를 맹비난했습니다. 아마도 이들의 시위를 민주주의 사회를 위협할 수 있는 수준으로 파악하고 한층 더 과감하게 비판하려고 둘을 구분한 것 같습니다.

지난 16일 저는 중앙대 사회학과의 신진욱 교수를 만났습니다. 신 교수는 참여연대를 찾은 시위대를 극우단체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왜 보수단체가 아닌 극우단체라고 불러야 하나’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학문적으로 극단주의를 정의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 현대정치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제도나 문화를 받아들이냐의 여부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민주주의적인 룰과 권리들, 법치주의와 헌정주의적인 원리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다원주의 원리들일 것입니다. 이런 것을 인정하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공존해야 한다는 원리를 부정할 때 극단주의라는 명칭을 붙이게 됩니다.”

▲ 17일 오전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앞에서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회원들이 참여연대가 천안함관련 서한을 UN에 전달한 것에 대한 반발성명을 발표하기 위해 집결하던중 차량에 싣고 온 가스통을 압수당하고 있다. ⓒ연합뉴스
‘좌파 척결’을 주장하는 단체들을 언론이 보수단체라고 부르는 게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들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좌파들에 대한 폭력을 저질렀을 때도 단순히 보수단체라고 지칭하고 넘어가선 안되는 이유가 바로 신진욱 교수의 설명에 담겨 있습니다.

이전에 김종일 뉴라이트전국연합 대표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는 “법을 지키는 것은 보수의 원칙이고 그것을 포기해선 안된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어버이연합 등이)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표현 방법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며 한 말이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엄연히 보수와 극우는 이렇게 구분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보수는 좌파를 극복 대상으로 보지만, 극우는 좌파를 척결 대상으로 봅니다. 언론은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이 극우단체들을 어찌해야 할까요. 신진욱 교수는 국가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서구에서는 극우단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고 전했습니다. 극우단체를 강제로 없애려는 연구가 아니라 이들의 특징을 분석하고 사회적으로 잘 컨트롤 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라고 합니다. 극우단체의 폭력행위는 민주주의 사회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서구 사회에서는 이런 연구가 활발하지 않나 싶습니다.

상대적으로 우리 사회는 극우단체에 대한 인식이 걸음마 수준입니다. 대부분 언론은 극우와 보수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정부조차도 극우단체와 보수단체를 잘 구분할 줄 모릅니다. 참여연대 앞 불법 과격 시위는 경찰이 단 한 번도 제대로 해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극우단체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가 좀 더 엄격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상 이들의 폭력 행위가 지금까지는 미미한 수준이어서 방치해 왔다면, 이제는 좀 달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극우단체를 강제로 규제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폭력행위에 대해서 엄격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언론 역시 이들에게 죽비를 들어 매섭게 매질을 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민주주의 체제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참여연대 앞 시위를 바라보며 요 며칠 참 씁쓸했습니다. ‘빨갱이를 죽여버려야 한다’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공포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세계 어느 곳에도 사회주의자들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민주 국가는 없습니다. 참여연대같은 비정부기구를 사회주의 단체로 왜곡하는 민주주의 국가도 없습니다. “(참여연대는) 대체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었던 정운찬 총리의 물음은 “빨갱이를 죽여버려야 한다”고 소리치는 분들에게도 향해야 합니다.

현재 한겨레 방송부문 뉴스팀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다.
영상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함께 들고 현장을 누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앞선 멀티형 기자가 돼려고 노력중이다. 우리 사회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사명을 놓는 그 순간, 기자가 아닌 단순 직장인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 그저 그런 기자가 되느니 문제적 기자가 되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하고 살기도 한다. 한겨레와 한겨레 독자들을 무지지 사랑한다. 개인 블로그 http://blog.hani.co.kr/catalunia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