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를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정계는 개헌으로 소란스럽다. 대선 때만 해도 개헌을 공격의 소재로 삼던 이들이 막상 개헌하자니 딴소리인 상황에 새삼 실망스러울 것도 없다. 그렇지만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후렴구만 반복하면서 은근히 제왕적 국회의 야욕을 드러내는 것에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대선 당시 후보들은 권력 구조에 대한 생각은 달랐어도 한결같이 개헌 시기는 2018년 지방선거 때 동시 투표에 부친다는 입장이 분명했었다. 이번 지방선거에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하자는 것은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만의 공약 이행은 아니라고 봐야 할 것이다. 도무지 국민에게 신뢰를 보여주지 못하면서 공학으로만 배운 정치만 하려는 야당의 개헌안이 지지와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6월 지방선거-개헌 동시 투표 가능?(PG) (연합뉴스)

16일 자유한국당이 밝힌 개헌의 방향은 이름만 바꾼 내각제인 ‘분권형 대통령제, 책임총리제’였다. 자유한국당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야당도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심지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도 일부는 이들과 같은 뜻을 품은 부류가 있다는 소문이다. 청와대가 개헌안을 곧 발표할 것이라도 어차피 야당이 반대하면 관철은 불가능하다.

청와대는 오는 21일 예정대로 개헌안 발의를 할 것이라는 단호한 입장이지만, 정부·여당이 목표로 하는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 투표안이 국회를 통과하진 못할 것이다. 근본적으로 정부·여당과 야당의 개헌안은 조금의 공통점도 없다. 심지어 수차례의 여론조사에서 국민이 바라는 정부 권력 구조는 4년 연임이든 기존 형태든 대통령제였지만, 국회는 아랑곳하지 않고 ‘분권형 대통령제’ 다시 말해서 국회가 모든 권력을 거머쥐겠다는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국회의원 세비를 최저임금 수준으로 해달라는 청원이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청와대가 답변해야 할 20만 명의 동의를 얻지 못했지만 이 또한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 수준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최저임금도 아까운데 감히 제왕적 국회를 꿈꾸고 있는 국회는 그러거나 말거나일 뿐이다.

13일 오후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열린 여야 3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바른미래당 김동철 원내대표(왼쪽부터),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근혜 정권 9년은 대통령제의 폐해를 그대로 드러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는 사실을 증명해내고 있다. 9년간 무너졌던 국가의 기틀을 다시 굳건하게 세우고 있다. 이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의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대통령 연임제나 기존 대통령제가 국회가 원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압도하는 이유라고 볼 수밖에 없다.

또한 국회가 애써 대통령 발의 개헌안을 외면하고 싶은 이유로는 이 개헌안 초안에 ‘국회의원 소환제’ 때문일 것이다. 부패하고 무능하면 대통령도 파면할 수 있지만, 국회의원만은 어떻게도 해고할 수가 없다. 1인당 연간 7억 원에 가까운 국민 혈세가 소모되는데도 일을 하지 않는 국회는 방탄기능을 장착한 최악의 민폐 덩어리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야당들이 보인 것은 지극히 이기적이고, 당파적인 모습뿐이었다. 입법이라는 기본적인 기능마저도 방기한 상황에서 여론에 쫓기면 부랴부랴 몇 개의 법안을 통과시크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면서 내각제를 하자고 하는 것은 단순한 후안무치를 떠나 국민을 바보 취급하는 것이다. 국가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국회는 매번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각제라니. 부끄러운 줄을 좀 알아야 할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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