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법 감정’을 다루되 감정적이지 않았던 <판결의 온도> (3월 15일 방송)

MBC <판결의 온도>

사회적 통념, 유전무죄 무전유죄, 국가 경제에 기여했기에 집행유예. 듣기만 해도 ‘공분’이 일어나는 표현들이다. 주로 국민 법 감정과 맞지 않는 판결문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기도 하다.

대개 사법부 판결 관련 프로그램은 특정 사건이 법에 적용됐을 때 얼마나 처벌받느냐 혹은 누구의 잘못이 더 크냐 같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종류가 많았다. 그러나 MBC <판결의 온도>는 논란의 판결을 주제로, 국민 법 감정과 판결 사이의 온도를 맞춰가는 프로그램이다. 그동안 많이 언급됐지만 공론화된 적은 없는 ‘국민 법 감정’이라는 소재를 선택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방송이었다.

김용만과 서장훈이 진행하고, 총 6명의 전문가 패널이 출연했다. 진중권 평론가, 주진우 기자, 이진우 경제 전문가, 판사 출신의 두 패널 그리고 다니엘까지 굉장히 다양한 영역에 걸친 패널들을 섭외했다. 판결문을 다각도에서 분석하려는 의도가 돋보였다.

MBC <판결의 온도>

첫 번째 사건은 2,400원을 횡령한 버스기사가 해고된 사건이었다. 여러 의미가 함축적으로 담긴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버스 기사 노동자의 삶, 2,400원이라는 적은 금액 횡령, 해고라는 무거운 처벌, 유전무죄 무전유죄, 재벌들의 가벼운 처벌과 사면 등 논의할 주제가 굉장히 많았기 때문이다.

주진우 기자와 진중권 평론가가 ‘2,400원’이라는 금액에 초점을 맞춰 해고의 부당성을 주장한 반면, 신중권 변호사는 “문제는 금액이 아니다”라는 입장으로 반박했다. 이진우 전문가가 “2,400억 원을 처벌하기 위해서는 2,400원 횡령부터 처벌해야 된다”고 주장하자, 주진우 기자는 “왜 2,400원부터 처벌하느냐”고 반박했다. 과거 <100분 토론>을 보는 것처럼 굉장히 치열한 토론이었다.

특히 같은 판사 출신인데 관점이 다른 신중권, 이정렬 패널의 공방이 흥미로웠다. 신중권 패널은 법 해석을 우선시하고, 이정렬 패널은 국민 법감정을 좀 더 대변하는 입장이었다. 오프닝에서 신중권 변호사가 “국민들이 감정적으로 판결을 해석하는 건 정보 전달 부족 때문”이라고 말한 반면, 이정렬 패널은 “판결에 대한 국민감정을 무지에 의한 것으로 치부하면 안 된다”면서 ‘해고=생존권 박탈’이라는 관점에서 횡령 사건을 바라봤다.

MBC <판결의 온도>

‘2,400억 원 횡령은 처벌받지 않는데 2,400원 횡령은 처벌이 되느냐’, ‘해고는 너무 과한 것 아니냐’ 등 국민 법감정에 맞지 않는 판결에 대해 다소 감정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지만, 패널들의 태도가 시종일관 감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왜 이런 판결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판결문 내용뿐 아니라 사건을 둘러싼 정황들을 매우 꼼꼼하게 들여다봤다.

버스기사의 고의성이 있었느냐, 버스 회사라는 특수성을 감안했을 때 버스 요금 횡령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가, 횡령과 착복의 차이는 무엇인가, 노사협약에 나온 ‘착복’의 징계 수준은 무엇인가 등 미처 국민들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끄집어내면서 사건을 굉장히 입체적으로 다뤘다.

국민 법감정을 충분히 반영하면서도 감정적으로 흘러가는 방송은 지양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여전히 ‘버스기사 해고 정당’ 판결에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어떤 과정을 통해 이런 판결이 나왔는지는 이해하게 됐다. 결과에 대해서는 승복하지 못하더라도 과정에 대해서는 납득할 수 있는 방송이었다. 그것이 ‘판결의 온도’를 맞춰가는 과정이 아닐까.

이 주의 Worst: 굳이 잘 필요까지 있었을까? <하룻밤만 재워줘> (3월 13일 방송)

KBS2 <하룻밤만 재워줘> 방송을 보는 내내 ‘굳이 왜?’라는 물음표가 떠나질 않았다. 연예인이 직접 현지에 가서 현지 문화 체험을 한다는 기획 의도는 좋다. 그런데 굳이 왜 현지인의 집에서 자야만 하는 것일까. 타지에서 밥 한끼도 아닌 잠자리를 부탁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아무리 ‘도전’이라는 타이틀을 붙인다 해도, 현지인의 문화를 제대로 체험하겠다는 좋은 의도가 있다고 해도 말이다. 어쩌면 현지인들에게 ‘민폐’ 혹은 ‘무례’일 수도 있는 과제가 아닐까.

KBS <하룻밤만 재워줘>

김종민과 이태곤은 스페인에서 ‘하룻밤만 재워줘’ 미션에 도전했다. 지하철에서, 레스토랑에서 처음 만난 현지인에게 다짜고짜 하룻밤만 재워달라고 부탁했다. 지하철에서 김종민에게 이 같은 부탁을 받은 현지인은 완곡하게 거절 의사를 표시했다. 제작진은 현지인 화면 하단에 “다음번엔 꼭 재워줄게요”라는 합의 없는 자막을 띄웠고, ‘종민 자신감 완충’이라고 자화자찬했다.

만약 현지 문화를 체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집에서 하룻밤 머물기’라면 이해할 수 있다. 설령 그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라고 해도 해볼 만한 가치가 있으니.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혀 공감되지 않는 도전이었다.

KBS <하룻밤만 재워줘>

우연히 한 레스토랑에서 스페인 배우 커플을 만난 이태곤과 김종민은 그들과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특히 이태곤은 그들과 배우라는 공통분모에 대해 얘기했다. 이태곤은 자신이 출연했던 사극 영상을 보여줬고, 스페인 배우 커플도 자신들의 활동 영상을 보여줬다. 또한 스페인 배우 커플은 스페인 향토 음식인 칼솟타다 먹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이런 자리, 이런 대화만으로 충분히 현지 문화 체험이 가능하다. 굳이 ‘하룻밤만 재워달라’는 무리한 부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굳이 공간을 공유하지 않아도, 대화만으로도 가능하다.

스페인 배우 커플은 아쉽게도 이태곤과 김종민을 재워줄 여건이 되지 않았다. 대신, 커플 중 한 사람인 마크가 자신의 가장 친한 대학 친구 집을 소개했다. 배우 커플과 주인 부부 그리고 다른 대학 친구들이 모여 파티를 열었다. 다소 인위적인 상황이긴 하지만, 현지 문화를 짧은 시간 내에 체험할 수 있는 기회라고 이해할 수 있다.

KBS <하룻밤만 재워줘>

문제는 그 파티에서 ‘현지 문화’를 느끼고 체험했는가다. 답은, ‘아니오’에 가까웠다. 의도된 만남은 아니었겠지만, 김종민과 이태곤이 만난 톱배우 커플 그리고 그의 친구들은 평범한 현지 문화 체험을 하기엔 너무나 상위계층이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이태곤은 현지 문화가 아닌 톱배우 커플의 공개 연애담에 대해 들었다. 현지 ‘문화’가 아니라 현지 ‘연예계’ 체험에 가까운 초대였다.

오히려 레스토랑에서 커피를 마시며 나눈 대화가 더욱 ‘문화 체험’에 가까웠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운 좋게 배우 커플, 그의 친구들과 함께 파티를 하는 기회를 가졌지만, 제작진이 애초에 의도했던 현지 문화 체험 미션은 성공했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다시 한 번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꼭 하룻밤을 재워달라고 부탁해야만 하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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