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의 싱글 여성으로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나는 요즘 심히 불편스럽다. 세금 꼬박꼬박 내고, 도박이나 투기 따위로 불로소득을 탐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횡단보도 정지선 마저 잘 지키려고 하는 나름 성실한 '시민'이지만, 요즘 들어 자주 '나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나 '사회에 별 기여하지 않는 무가치한 인간' 이라는 암시를 받는다. 암시를 주는 것은 각종 캠페인과 공익광고 뒤의 국가와 미디어 등이다. 몇가지 '유감스런' 상황들이다.

▲ 광주YMCA의 '임산부 아름다운 D라인 뽐내기 사진 공모전' 관련 공지사항 캡처

임산부 아름다운 D라인 뽐내기 사진공모전

얼마전 광주에서는 요상한 공모전 홍보기사가 떴다. 이름하야 '임산부 아름다운 D라인 뽐내기 사진공모전'. 광주시와 아이낳기좋은세상 광주본부가 주최하고, 광주 YWCA가 주관하는 이 행사는 임산부의 사진을 찍어 접수하면 심사과정을 거쳐 출산장려상금을 포상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를테면 임신한 여성이 아름답다, 아이를 많이 낳자는 캠페인이다.

살기는 팍팍하고 사교육비는 많이들고, 맞벌이는 해야하고, 일자리는 불안하고...하여, 출산율이 줄어드는 것은 상당히 안타까운 상황이기는 하다. 어떻게든 출산율을 높여보겠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 방식의 촌스러움과 상상력의 빈곤은 차치하고서라도,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으며 심지어 폭력적이기까지 하다는 생각을 했다.

급기야 지역 여성단체들이 사진공모전을 철회하라는 성명을 냈다. 논지는 "여성의 몸을 상품화하고, 여성의 건강권을 우선하지 않은 캠페인"이라는 것.

여성단체들은 "저출산이 지속되는 배경에는 여성의 사회진출이 상승하는데 비해 출산 후 육아에 대한 어려움 및 경제적 부담, 안전하지 못한 사회적 환경, 사교육비에 대한 부담감 등이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광주시가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출산장려정책이 일회성, 이벤트성 사업이 아닌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정책을 세워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임산부 아름다운 D라인 뽐내기’ 사업 추진은 결코 저출산에 대한 대책이 될 수 없다"며 "현재의 낮은 출산율의 근본 원인을 면밀히 검토하고, 아이를 기르기 원활한 보육환경을 개선하는 대책마련과 가족친화적인 정책에 대한 예산 편성이 우선 과제가 되어야 함을 인식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여성단체들은 "아름다움의 기준을 몸매라고 잡고 ‘라인’을 들먹이며 시상을 하는 것은 결국 여성의 외모나 몸매를 기준으로 가치 평가하는 것이어서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며 "임산부는 라인이나 몸매로 평가 받아서는 안되고 임산부의 건강권이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여성의 몸에 대한 평가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서조차 한 가지 빠진 것이 있다. 사진공모전의 문제점은 여성의 몸에 대한 평가보다 출산하지 않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다. 저출산의 원인을 출산하지 않는 여성에 돌리는 책임전가다.
임신한 여성이 아름답다는 구호의 이면에는 임신하지 않은 여성은 아름답지 않다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그러니까 여성단체들은 일정정도 '출산'의 당위성에는 동의한다는 것으로 읽혔다. 나처럼 가임기간을 '허비'하며 출산하지 않는 여성들의 권리에 대해선 무관심했다.

"여성들이 몸매를 걱정해 아이를 낳지 않는 풍토를 개선해보고자" 했다며 저출산의 원인을 '아이낳지 않는 여성'에 전가해버린 주최측이나, "임산부가 건강하게 아이를 낳을 수있도록 출산환경을 개선하라"고 한 여성단체들의 성명서 행간에서나 빠져버린 것은 여성의 출산하지 않을 권리다.

공익광고와 '해피버스데이'

"아이보다는 생활의 안정이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젠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사교육비가 힘들어 동생 없는 외로움을 더해주었습니다. 동생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아이는 당신과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

시시 때때로 내 눈과 귀에 침투해 들어오는 공익광고도 유감스럽다. 이 공익광고는 결혼을 했든 안했든, 두루두루 열받게 만드는 광고다. 여전히 맞벌이 아니면 생계가 어려운 이 땅의 많은 부부들에게는 아이보다는 당장 '생활'이 중요하고, 사교육비가 무섭다. 그런데 가타부타 어떤 극적 계기나 동기도 없이 "이젠 엄마가 되고 싶다"니. 이 무슨 무서운 반전인가.

'엄마'만 결심하면 '저출산'이 해결되니 어서 어서 '결심'들 하시라는 메시지. 그래서 '엄마'로서의 삶을 선택하지 않는 많은 여성들 또한 저출산의 공범이라는 메시지. 어렵고 힘들줄은 알지만 여성의 자기 희생이 나라의 미래를 밝게 하니까 출산들 하시라는 메시지.

낳아만 놓으면 국가가 알아서 키워주고 교육시켜주든지. 개인의 희생에만 기대 이뤄놓은 나라가 대한민국이라지만 열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

▲ KBS 2TV의 '해피버스데이' ⓒ KBS

이런 사회분위기 때문인지, 급기야 출산 장려버라이어티 쇼가 나왔다. KBS2의 '해피버스데이'다. 이젠 예능에서조차 캠페인성 구호를 들어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씁쓸했다. 도대체 사회구조적인 문제인 출산과 예능이 어떻게 결합하는지 궁금해 몇 번 방송을 보았다. 결합은 위험했다.

오직 출산의 기쁨에 대한 예찬. 눈물흘리는 산모, 성스러운 어머니. 감초처럼 끼어드는 '싱글'에 대한 조롱. 정상가족에 대한 강요. 삶의 완성이 결혼과 출산이라는 메시지. 출산하지 않은 여성은 죄스럽다.

여성은 어머니로서만 살아있는 가치가 있는가

이중차별을 받고 있는 여성의 삶에서 '출산'의 문제는 복잡 다단하다. 그럼에도 현재 여성을 둘러싼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너무나 단순하고 폭력적이다.

거기엔 여성이 자신의 몸과 삶을 선택할 권리 문제가 빠져있다. 출산과 낙태에 대한 국가정책의 들쑥날쑥한 얼굴을 보면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출산이나 낙태 등의 문제에 있어 여성은 늘 '관리' 대상이었을 뿐이었다.

'희생하는 어머니' 상을 조장하는 것도 그렇다. 여성은 어머니로서만 가치있는 존재라는 은연중의 주입. 그러나 그 어머니들이 평생 겪어왔던 차별과 착취의 구조는 은폐된다. 그렇게 살아야 모두가 평화롭고 아름다우니까?

그렇다면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되나. 아이를 낳지 않을 권리는 없나? 모성을 전제로 하지 않는 성을 누릴 권리는?

자신의 몸을, 자신의 삶을 어떤 좌표 위에 놓을 것인가의 문제를 선택할 권리. 그것이 존중받는 사회였으면 한다. 저출산 문제는? 국가가 잘하면 해결된다. 일단 4대강 사업말고, 무상교육 무상급식부터!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