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을 방문한 대북특사단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왔다. 1박2일의 짧은 일정에 ‘실망스럽지 않은 성과’라고 하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으나, 특사단이 풀어놓은 보따리에는 실망이라는 단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매우 큰 선물이 들어있었다. 남북이 합의한 6개의 합의조항은 하나하나가 모두 매우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 4월말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정상회담 개최
● 군사적 긴장완화와 긴밀한 협의를 위한 정상 간 핫라인 설치
● 북한의 군사적 위협과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보유 이유 없다
● 비핵화 및 북미 정상화 위해 미국과 대화할 용의 있다
● 대화 지속하는 동안 북한은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등 중지
● 남측을 향해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 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확약

대북특사단과 4시간의 만남을 통해 이와 같은 합의를 전달한 김정은은 생각보다 화통해 보였다. “한반도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는 말에는 어쩌면 그만큼 절실한 북한의 입장을 숨기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10년간 닫혀있었던 남북대화가 숨 가쁘게 전개되는 것이 마치 꿈만 같다.

북한을 방문 중인 정의용 수석 대북특사가 지난 5일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만나고 있다. 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있다. 오른쪽은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청와대 제공=연합뉴스]

‘10.4 공동선언’이 한 발짝 더 나아갔다면 이루어졌을 미완의 ‘남북종전선언’의 진전까지 바라본다면 너무 성급할 것일까? 그렇지 않다. 김정은이 말한 “선대의 유훈”에는 분명 ‘10.4 공동선언’이 전제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남북의 평화공존은 통일 이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이다. 물론 이번 남북의 합의사항은 전부 북미대화 및 대북제재의 돌파를 위한 용도라는 측면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곧바로 남북한의 평화를 전제하기에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신뢰의 정도를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의 친서를 본 김정은은 기분 좋은 표정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하기도 했다. 일찍이 타임지가 네고시에이터로 별명을 붙인 이유가 확인되고 있다.

이 같은 남북관계 변화는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 5대 정책 일부를 이룬 것이기도 하다. 또한 남북 평화구축은 곧바로 경제로 이어진다. 문대통령의 북방 구상에는 한러 철도망 연결 프로젝트가 있다. 이는 또한 박근혜 전 대통령 때에도 추진되기도 했던 사업이기도 하다. 남북관계 정상화는 평화만으로도 충분한데 그 이상의 경제효과도 클 것이라는 전망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당시 나온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 (연합뉴스 자료사진)

일부 언론은 이와 같은 대북성과에도 아직은 트럼프를 움직여야 하는 난제(?)가 있기 때문에 성공이라고 할 수 없다는 인색한 평가를 내놓기도 하지만, 언론의 평가절하가 효과를 보기도 전에 트럼프의 변화가 감지되었다.

북한 김정은이 통 크게 나서자 트럼프도 지금까지의 강경 일변도의 태도를 조금은 바꾼 것으로 보였다. 트럼프도 “북한은 멋졌다(North Korea was terrific)”말로 이번 남북의 노력에 긍정 반응을 내놓은 것이다. 워낙 좌충우돌하는 성격이라지만 이런 정도의 반응이면 곧 미국을 방문할 정의용 특사가 들고 갈 미국을 위한 북한의 별도 메시지에 만족할 것도 기대해볼 만하다.

세월이 너무 흘러 이제는 우리의 소원이 통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한반도에 발을 붙이고 살아야 한다면 평화는 거래할 수 없는 절대적 조건이다. 이번의 남북관계, 북미관계 진전이 10.4 공동선언이 나아가고자 했던 한반도 종전선언으로 꼭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기대와 예상을 뛰어넘은 성과를 가져온 대북특사단의 노고와 북한과 미국 모두로부터 신뢰받는 문재인 대통령의 존재에 감사하게 된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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