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자살 이후 가업인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 운영을 맡게 된 캐서린(메릴 스트립 분)은 직함만 발행인일 뿐, 그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거의 없다. 언론사의 사주가 독단적으로 회사의 중요한 안건을 결정할 수 없겠지만, 캐서린 같은 경우에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경영자의 자질까지 의심받는다. 어쨌든 캐서린을 대놓고 무시하는 남성 이사진의 도움으로 워싱턴 포스트를 주식 시장에 상장하는 데 성공을 거둔 캐서린은 뉴욕 타임즈의 ‘펜타곤 페이퍼’ 특종 보도라는 암초를 만나게 된다.

영화 <더 포스트> 스틸 이미지

트루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에 이르는 네 명의 대통령이 30년간 감춰온 베트남 전쟁의 비밀이 뉴욕 타임즈의 특종에 의해 밝혀지자, 닉슨 정부는 관련 보도를 금지시키고 법원에 뉴욕 타임즈를 기소한다. 이때 워싱턴 포스트 편집장인 벤(톰 행크스 분)은 펜타곤 페이퍼 후속 보도에 사활을 걸고 끝내 베트남 전쟁의 진실이 담긴 정부기밀문서 ‘펜타곤 페이퍼’를 입수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뉴욕 타임즈가 당한 것처럼, 워싱턴 포스트에 가해질 정부의 보복이 만만치 않을 터. 벤 편집장과 기자들의 펜타곤 페이퍼 보도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가운데, 워싱턴 포스트 발행인 캐서린은 회사와 자신의 운명을 건 엄청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더 포스트>(The Post, 2017)는 1971년 ‘펜타곤 페이퍼’ 문건 입수 보도 이후 일개 지역 중소지에서 미국 3대 일간지로 급성장한 워싱턴 포스트를 배경으로 한다. 언론의 사명을 다룬 <더 포스트>에서 가장 중심에 선 인물은 워싱턴 포스트의 발행인 캐서린이다.

선친과 남편이 이끌어온 워싱턴 포스트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언론사를 경영하는 데 있어서도 탁월한 안목을 갖추고 있지만, 이러한 캐서린의 능력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종종 폄하 받는다. <더 포스트>의 시대적 배경인 1970년대만 해도 여성의 인권은 지금보다 훨씬 보장되지 못했다. 캐서린 또한 자기는 집안의 가업을 지키고 싶을 뿐이라면서,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평가절하한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남편만 아니었다면, 평생 직업을 가질 일 또한 없었다는 캐서린은 주변 남성들의 도움에 전적으로 의지하고자 한다.

영화 <더 포스트> 스틸 이미지

그랬던 캐서린이 난생 처음 남성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회사와 자신의 운명이 걸린 위험한 선택을 스스로 결정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대통령 일가족의 신변잡기에만 집중한다는 평을 받았던 워싱턴 포스트는 베트남 전쟁과 관련한 정부의 기밀문서를 보도한 이후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사로 승격 되었고, 캐서린의 경영 능력 또한 제대로 평가받는다.

펜타곤 페이퍼 보도를 두고 캐서린, 벤 간의 갈등을 주요하게 다루는 <더 포스트>는 벤으로 대표되는 언론의 자유, 사명 못지않게 ‘펜타곤 페이퍼’ 보도 결정 이후 미국을 대표하는 언론사 사주로 우뚝 선 캐서린의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펜타곤 페이퍼 보도 결정 이전만 해도 남성들의 뒤에 서있는 데 익숙했던 캐서린은 어느 순간 자신이 내린 결정에 반대하는 남성들 앞에서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킨다.

당시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렇게 생각했듯이, 캐서린 또한 정치는 남성의 영역이며 여성이 끼어드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강해 보였다. 그러나 베트남전 파병 반대 시위에 나서는 젊은 여성들이 나날이 늘어나고, 시대 또한 그에 걸맞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보수적인 성역할 관념에 오랫동안 갇혀있던 캐서린은 정부의 부적절한 언론 탄압에 맞서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에게 친 장벽을거두기 시작한다.

영화 <더 포스트> 스틸 이미지

<더 포스트>에서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온 장면은 이러했다. 워싱턴 포스트, 뉴욕 타임즈의 펜타곤 페이퍼 보도에 대한 대법원 심리 이후 대다수 기자들의 시선은 뉴욕 타임즈를 향해 있었다. 뉴욕 타임즈에만 집중된 취재 양상에서 조용히 빗겨난 캐서린과 워싱턴 포스트 기자들은 대신 베트남전 파병을 반대하는 여성들의 암묵적인 응원과 지지를 한 몸에 받는다.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많은 용기가 필요했던 시절, 베트남전 반대를 위해 거리에 나선 여성들은 미국 최초, 유일한 여성 신문 발행인이자 베트남전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캐서린과 연대의식을 갖는다. 캐서린 또한 자신의 결정을 지지하는 여성 독자들 덕분에 언론인으로서 더 큰 책무와 사명감을 느끼게 된다.

페미니즘(여성주의)은 남성 중심적 사회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여성 혹은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연대에서 시작된다. 남성 또한 남성 중심적인 사고방식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바꾸려 노력한다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 어느덧 70대에 접어든 거장 스필버그는 여성 캐릭터를 주축으로, 여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영화 한 편을 뚝딱 완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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