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에서, 한국은 아르헨티나에 1:4의 완패를 당했다. 차원이 다른 축구를 구사하는 축구천재 메시의 영리하고 세밀한 볼배급과 해트트릭을 기록한 이과인의 골결정력에, 조직력으로 맞선 태극전사의 다리도, 붉은악마의 열정적인 응원도 막지 못했다,

이미 승패는 갈렸다. 이제 한국은 나이지리아전을 준비하고, 반드시 잡아야 한다. 물론 다득점에서 그리스를 밀어내고 2위를 지키고 있다. 아르헨티니가 그리스에 이기거나 비기고, 대표팀이 나이지리아와 비기거나 이긴다면 16강에 오를 수 있다. 그러나 나이지리아와 비기겠다는 전략 혹은 생각으로 임한다면, 대표팀과 온 국민 바라는 16강의 염원은 멀어질 수 있다.

그래서 아르헨티나전의 복기는 중요하다. 한국대표팀의 문제점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 상대팀 나이지리아를 분석하기보다, 대표팀 내부에 문제를 집어내는 것이 우선이다. 바둑을 좋아하는 허정무감독이, 반드시 곱씹어야 할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 : '내 것을 먼저 돌본 뒤, 상대를 잡으러 가야 한다'는 바둑 격언).

허정무 선수기용의 패착, 오범석-염기훈

그리스전을 2:0으로 승리한 대표팀은, 아르헨티전을 앞두고 자신감이 차 있었다. 그러나 막상 경기장에 들어선 뒤, 선수들은 최소한 비겨야 한다는 부담을 버리지 못했다. 리오넬메시를 비롯, 유럽 빅리그를 호령하는 아르헨티나 선수들과 막상 맞닥뜨리자, 긴장을 떨치지 못했고 플레이는 투박하고 서툴렀다. 선수들이 뭔가 쫓기듯, 급하게 서두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오범석이 그랬다. 차두리를 대신해, 우측 윙백으로 나선 오범석은 위험지역에서 불필요한 반칙을 범했고, 전반전 두골을 헌납하는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했다. 위험지역에선 무리하게 볼을 뺏기보다, 상대선수를 따라 붙는다는 생각이 앞서야 한다. 크로스가 올라가지 않도록 바짝 붙어 주기만 해도 성공한 수비다. 더군다나 개인기로는 테베즈나 디마리아와 같은 선수의 공을 뺏기 쉽지 않다. 무리를 하니 반칙이 잦을 수밖에 없다.

설사 오범석 본인이 뚫리더라도, 뒤를 받치는 김정우, 조용형 등을 믿고 플레이를 해야 했다. 그러나 본인이 해결하려는 욕심이 화를 부른다. 골은 집중력을 잃은 박주영과 수비진에게 나왔지만, 오범석이 상대에게 제공한 프리킥 찬스가 빌미가 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차두리가 선발로 나섰다면 달랐을까? 알 수 없다. 다만 아르헨티나 공격진의 테크닉을 오범석의 테크닉으로 막겠다는 건 오류로 판명났다. 오히려 차두리의 피지컬과 스피드로 커버하는 게 상대를 더 곤란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또한 이영표의 좌측에 비해 오범석의 우측 공격이 전혀 이뤄지지 않아, 역습에 효과적인 차두리의 스피드와 돌파가 간절했다.

그리스전을 통해 경기감각도 살아있을 뿐 아니라, 상승세에 차두리를 뺀 부분이 더욱 아쉬웠던 건, 수비는 조직적인 플레이로 이뤄진다는 데 있다. 중앙수비수 이정수, 조용형에게도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미드필더 김정우, 박지성 등에도 마찬가지다. 오범석을 통해 수비에 안정을 꾀하려 했지만, 오히려 주전 윙백의 교체가 수비전체의 밸런스를 무너뜨렸다.

오범석은 결과론적인 얘기다. 본인이 잘하려는 마음이 앞서다보니, 잦은 실수를 초래했다. 그의 기용이 패착 중에 하나였지만, 결과를 알고 선발하는 감독은 없다. 감독을 무조건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염기훈의 기용은 허정무감독이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유는 이미 그리스전에서 잘못된 기용이 검증된 바 있기 때문이다.

염기훈은 그리스전에서 패스와 슛타임을 잃어, 결정적인 찬스를 여러 번 놓쳤을 뿐 아니라, 그의 무리한 드리블과 패스로 인해, 상대의 역습을 수차례 제공했었다. 그가 돋보인 건, 경기 후, 11Km를 뛰어 가장 왕성한 활동량을 보였던 것에 있다. 그러나 11km가 아니라 11m를 뛰어도 효과적이어야 한다. 많이 뛰어서 이기면 한국이 아르헨티나를 이겼다. 그러나 결과는 다르지 않은가.

염기훈의 문제는 비효율에 있다. 그렇다고 세트피스 상황에서 날카로운 킥을 선보인 것도 아니다. 조커도 아니고, 왜 염기훈을 풀타임으로 중용하는지, 허정무의 머릿속이 궁금하다. 특히 전반전에 경고를 먹었을 때, 그의 교체를 생각했어야 했다. 공격도 안 되는데, 수비까지 움츠려 들기 때문이다. 후반전에 기성용이 아닌 염기훈을 빼야 했다. 기성용을 중앙에 김남일-김정우를 더블볼란치, 박지성을 염기훈의 왼쪽에 놓았으면 어땠을까.

결국 염기훈은 이청용의 완벽한 패스를, 어처구니없게 날려 버린다. 왼발의 달인에 끔찍한 왼발 슛이 2:2를 1:4의 스코어로 만들었다. 그 자리에 박지성, 아니 이승렬, 김보경만 있었어도 라는 생각이 스친다. 강팀과의 대결에서 찬스는 자주 오지 않는다. 찾아온 찬스의 성공여부가 경기 흐름을 좌우한다. 우리 선수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상대방의 기를 살려 준 염기훈의 슛은, 가장 뼈아팠던 대목이다.

허정무감독의 또 다른 문제는, 교체하는 선수도, 타이밍도 좋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리스전에서도 후반 수세에 몰릴 때, 선수교체로 분위기를 바꿔야 했다. 그러나 타이밍은 한박자이상 늦었다. 이번 경기도 마찬가지. 염기훈이 아닌 기성용의 교체도 문제지만, 이동국의 투입도 당황스럽다. 타이밍도 늦었고, 교체도 박주영이 아닌 염기훈에 맞춰야 했다. 박주영을 처진 스트라이커에 놓았다면, 모나코시절 박주영의 움직임을 찾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외로운 원톱을 주고받은 이동국과 박주영의 교체로는, 팀의 변화가 불가했다.

허정무, 패배보다 위험한 발언!

'모든 짐은 감독인 내가 지겠다. 그러나 승리의 몫은 선수들과 스태프에 돌리겠다.' 허정무감독이 월드컵을 앞두고 던진 출사표였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전이 끝나고, 출사표는 잊은 듯, 허정무감독은 위험한 발언을 했다.

염기훈의 슛이 골이 되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이것은 지켜본 누구라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지만, 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오범석의 기용을 놓고, 그리스전 차두리의 플레이가 맘에 들지 않았다는 발언은, 납득하기도 힘들지만, 감독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었다. 차두리에게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벤치를 지킨 선수의 기를 살려줘도 모자랄 판에, 플레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니, 도대체 어느 팀의 감독인가. 더군다나 그리스전 차두리는 국내는 물론, 외신에서조차 후한 평가를 내렸었다. 허정무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다. 오범석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는지, 차두리가 밉보여서였는지. 패배로 인한 팀분위기를 추스리고 선수들을 다독이진 못할망정, 감독이 공개적으로 나서 선수의 사기를 꺾어서야 되겠나.

감독의 마이웨이도 중요하다. 그만큼 흔들어서 안 되고, 선택과 결정을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한목소리로 잘못을 지적하는 데엔, 분명 이유가 있다. 그것을 간과하진 말았으면 한다.

감독과 선수간의 신뢰, 감독-선수-붉은악마의 믿음이, 대한민국 축구의 힘으로 나타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이 나이지리아를 꺾고 당당히 16강에 오를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캡틴 박지성을 믿고, 선수들을 믿는다. 특히 자살골로 자책하고 있을지 모를 박주영, 그가 멋지게 비상할 거라 의심치 않는다. 눈물? 있다면 아끼고, 16강, 8강에 가서 흘려도 늦지 않다. 나이지리아전은 대표팀도, 붉은악마도 즐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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