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5일 평창올림픽 폐막식과 동시간대 방영한 <황금빛 내 인생>의 시청률은 29.3%로 저조했다(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3사로 분산되었지만 총 합계 42.9%의 폐막식 중계 탓이 크다(KBS1 18.5 %, MBC 7.0%, SBS 17.4%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그러나 폐막식 때문만이었을까? 지난주 심지어 방송 시간까지 변경되며 변칙 방영되었음에도 충성도를 보이던 시청자들 중 드라마의 내용 때문에 채널을 돌린 이들이 있지 않을까? 애초 계획되었던 50회에서 2회 연장, 52회까지 단 4회를 남긴 <황금빛 내 인생>, 한창 절정으로 치달릴 이 드라마는 오히려 방영 이래 가장 큰 딜레마에 빠져 있다. 그리고 그 '딜레마'는 고스란히 시청자들의 불만으로 이어진다.

KBS2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

<황금빛 내 인생>은 KBS2의 주말 드라마이다. 주말마다 방영되는 KBS2TV의 주말 드라마는 <황금빛 내 인생>처럼 40%를 넘어가는 고공행진은 아닐지라도 30% 정도는 거뜬히 넘는 이른바 '국민 드라마'이다. 이들 국민 드라마는 그 시청률에 걸맞게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가족 이데올로기의 충실한 '프로파간다'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중산층'의 한 가족을 중심으로 이 가족들이 자신보다 나은, 혹은 못한 다른 가족들이나 사람들과 얽히며 엮어가는 갖가지 애환을 다룬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도 결국은 결집된 가족의 힘으로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 '가족의 화합'에 도달한다는 변치 않는 법칙을 실현해 낸다.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이 그랬고 <아버지가 이상해>가 그랬으며, 이제 종반을 달려가는 <황금빛 내 인생>이 그러하고자 한다.

그런데 바로 이런 KBS2 주말 드라마로서의 정체성에 충실하고자 하다 보니, 애초 소현경 작가가 <황금빛 내 인생>을 통해 설파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이 가족드라마로서의 이 지점과 충돌하며 자가당착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명탐정 서태수로 인해 진짜 위기에 빠진 해성

KBS2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

지난 47회에 이어 48회도 아빠 서태수(천호진 분)의 활약은 거의 '셜록'급이었다. 47회 쏟아지는 찌라시 기사의 홍수 속에서 자신의 딸들이 위험에 빠지자 전직 무역맨이었던 서태수는 과거의 경험을 살려 찌라시 기사의 출처를 밝힌다. 이어서 48회 최도경을 돕기 위해 소액 주주들 설득에 나선 서지안이 들고 왔던 소액 주주 명단을 보고 의아해 하던 서태수는 위암 말기의 힘든 몸을 이끌고 가가호호 방문하며, 최도경 측에 위임장을 넘기지 않은 소액 주주들이 사실은 노진희의 위장 주식 매입자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왜 셜록에 가까운 서태수의 활약이 필요했던 것일까? 이것은 <황금빛 내 인생>이 애초에 풀어놓은 갈등의 봉합을 위해서다. 서태수의 아내 양미정(김혜옥 분)의 거짓말로 딸들이 뒤바뀌게 된 해성가, 그로 인해 서태수네 집안은 드라마 내내 '원죄'를 가지게 된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사랑에 빠지게 된 두 집안의 아들 최도경과 딸 서지안. 서지안은 재벌이라는 존재론적 딜레마에, 저 원죄까지 얽혀 계속 최도경과의 사랑을 거부한다. 결국 이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원죄'의 해결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서태수가 해성가 위기에 '해결사'로 등장하며 은인이 된다. 또한 드라마 내내 무능력해서 가장으로서 외면 받고, 그래서 병까지 얻었던 서태수가 '아버지'로서 장렬하게 그 삶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도 결정적 전환점이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47,8회에서 보여준 과거 상사맨의 경험을 살린 명탐정 서태수의 활약이다. 그로 인해 서태수와 그의 딸 서지안은 위기에 빠진 해성가를 살린 '은인'이 되고, 서태수 집안의 '원죄'는 상쇄된다.

KBS2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또 다른 딜레마가 발생한다. 할아버지의 강요에 의한 해성가 후계자가 싫다며 해성가에서 뛰쳐나와 자신의 사업체까지 꾸린 최도경. 그는 할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 집안의 뿌리를 찾아 해성가로 복귀한다. 뿐만 아니라 이모 노진희네 부부가 찌라시 기사 등의 부도덕한 방식으로 할아버지를 대표 이사에서 몰아내고 자신의 어머니 아버지조차 해임시키려하자 분개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해성을 장악하려는 이모네에 대항하여 해성을 복구시키려 한다.

하지만 최도경의 의도가 무색하게, 이런 일련의 해성가의 위기 상황에서 최도경을 비롯한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 노양호의 대처는 무능력했다. 둘 사이의 사랑을 확인시키기 위해 달려든 서지안을 비롯한 셰어하우스 동지들의 소액 주주 설득 과정, 그리고 거기에서도 밝혀지지 않은 노진희 측의 위장주식 매입을 서태수가 밝히는 동안, 최도경을 비롯한 해성가의 식구들은 몇 마디 말만 믿고 주주총회의 상황을 안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서태수와 서지안의 활약은 오히려 최도경을 비롯한 해성가의 존재론적 무능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만다. 오히려 무능력한 최도경 일가, 부도덕한 노진희 일가의 해성이라면 서태수의 도움을 얻은 최도경의 '수성 성공'이 아니라 '해체'되어야 맞는 것이다. 소현경 작가의 큰 그림은 '재벌 해체'일까?

재벌 체제의 비판적 시각, 그 귀추는?

이미 드라마 전개 과정 내내 족벌경영 체제의 문제점을 드러낸 해성가. 그럼에도 혈연에 매달려 최도경에 집착했던 노양호 회장의 전근대적 경영 방식에, 부도덕한 방식이지만 쿠데타를 통해 제거하려 했던 노진희 쪽과 그에 합류한 주주들의 결정은 과연 잘못된 것일까?

KBS2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

드라마는 남자 주인공 최도경과 여자 주인공 서지안이 사랑하는 대상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최도경네 편을 들며, 해성가 주주총회 쿠데타의 논점을 모호하게 한다. 직원들 말대로 시키는 일만 했던 최재성, 자신의 꿈을 찾겠다고 해성을 버리고 뛰쳐나간 최도경과 달리, 지금의 해성이 되도록 애썼던 노진희의 남편 정명수의 야망은 과연 정말 나쁘기만 한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드라마는 '족벌 경영'의 문제점을 줄곧 지적해왔으면서 정작 두 주인공의 사랑을 위해 '족벌 경영'의 편에 서는 '자가당착'에 빠진다.

소현경 작가는 지난 드라마의 여정 동안 노양호라는 입지전적 인물의 자수성가로 이루어진 해성의 족벌경영 체제를 비판적으로 그려왔다. 그런 비판적 묘사의 정점은 바로 해성이라는 조직 속에서 '개'가 되기를 거부했던 최도경의 가출과 자수성가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해성가의 위기 속에서 그런 최도경의 꿈을 찾기 위해 떠난 과정은 해성가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서의 '책임 방기'로 귀결되고 만다. 이렇듯 소현경 작가가 재벌경영 체제를 비판하기 위해 벌려놓은 포석과, 그 정점의 갈등으로 등장한 노진희 부부의 해성가 경영권 장악 쿠데타의 과정은 그저 찌라시 기사로 인한 부도덕한 경영권 장악 획책을 넘어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그럼에도 내 뿌리이고, 나를 사랑했던 할아버지요 해성가를 일군 장본인’이라는 최도경의 말로 이 위기를 무마할 수 있을까? 과연 애초 제기했던 최도경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과연 지금의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풀어갈 것이며, '족벌 경영 프렌들리'가 되어버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지 소현경 작가의 현명한 한 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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