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독고중년이라는 신인류 조합 <키스 먼저 할까요?> (2월 20일 방송)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

이혼한 남편의 빚까지 떠안고 공항에서 맨발로 사채업자에게 쫓기다가 치마까지 찢어진 45세 스튜어디스 겸 권고사직 유력 후보자 안순진(김선아). 한때 잘나갔던 카피라이터였지만 지금은 후배들이 끓여준 변기물을 마시는 꼰대가 된 50세 이혼남 손무한(감우성).

스튜어디스와 카피라이터. 뭔가 신비롭고 환상이 있는 직업의 대명사인데, SBS <키스 먼저 할까요?>는 직업에 대한 거추장스러운 포장지를 벗겨냈다. 남녀 주인공 캐릭터의 껍데기도 벗겨냈다. 실장님, 캔디, 신데렐라, 악녀 같은 전형적인 캐릭터를 벗어났다. 두 명의 극사실주의 캐릭터가 만나 첫 회부터 크게 터졌다.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

손무한의 욕실 셀프 감금과 안순진의 한글 교육은 정말이지 코미디 영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희대의 명장면이었다. 실수로 욕실에 갇힌 501호 거주자 손무한은 하수구 뚜껑을 열고 401호 거주자 안순진에게 구조 요청을 하지만, 최근 누수 문제로 501호 거주자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갖고 있었던 안순진은 손무한의 구조 요청을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3박 4일 동안 욕실에 갇혀 그나마 욕조 안에서 따뜻한 물에 의지해 버텼건만, 설상가상으로 단수까지 되었다. 치약으로 욕실 거울에 유서 아닌 유서를 써놓고 욕조 안에서 덜덜 떠는 손무한의 모습은 그간 감우성이 보여주지 못한 허술하고 코믹한 모습이었다.

안순진의 한글 교육은 더더욱 놀랍다. 남편을 뺏어간 여자와 그 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이에게, 안순진은 자신을 전부인님이라 부르고 엄마는 내연녀님이라고 부르게 시켰다. 그것도 모자라 한글교육이랍시고 ‘ㄱ은 가정파괴범, ㄴ은 내연녀, ㄷ은 도둑질’이라고 가르쳤다. 불륜을 재밌게,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게 풀어낸 대목이었다.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

특히 이름은 ‘안순진’인데 ‘백치미’를 연기하는 김선아의 순수한 뇌는 <키스 먼저 할까요?>가 그동안 본 적 없는 드라마가 될 것임을 직감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재직 20주년을 한 달 앞둔 안순진은 “지난 시절을 쫓겨나오고 싶지 않다”라며 세월에 대한 묵직한 생각을 표현했다. 굉장히 진지하고 심오한 캐릭터인가 라고 생각하는 순간, 안순진은 그것이 명백한 착각임을 알려준다. 기러기 아빠를 비둘기 아빠로, 양육비를 사육비로, 우산을 양산으로, 양반을 상놈으로 부르는 안순진의 연기는 너무나도 당당해서 뻔뻔함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였다.

김선아의 코믹 본능은 여전했고, 감우성의 코믹 연기 잠재력은 꽤나 특출 났으며, 독고중년이라는 캐릭터는 참신했다. 전형적이지 않은 드라마에 대한 기대가 남다른 이유다.

이 주의 Worst: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그림! <천만홀릭, 커밍쑨> (2월 23일 방송)

영화만을 주제로 한 토크쇼. 차별화 된 토크쇼인 것 같지만, 껍데기만 그러할 뿐 속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그림들을 조각조각 붙여놓았다. 채널A <천만홀릭, 커밍쑨> 이야기다.

채널A <천만홀릭, 커밍쑨>

첫 회 게스트는 영화 <게이트>의 주인공인 임창정, 정려원, 정상훈이었다. 게스트들의 프로필을 읊는 것은 MBC <무릎팍 도사> 스타일과 유사하고, 영화의 주요 장면을 소개하는 것은 MBC <출발! 비디오 여행>과 다를 바가 없었다. 토크 도중 같은 영화에 출연했던 신인 배우들의 깜짝 등장은 KBS <김승우의 승승장구>의 ‘몰래온 손님’ 코너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했다.

물론 코너 자체가 비슷하다고 해서 비판받을 것은 아니다. 그 코너를 통해 보여주려는 모습이 다르면 되니 말이다. 그러나 신인 배우들을 섭외한 <커밍쑨>은 그들에게 정려원, 임창정, 정상훈의 첫인상을 물었다. 전형적인 연예 정보 프로그램 스타일의 질문이었다. 첫 질문은 그래도 양반이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이 끝나자마자 생뚱맞게 개인기를 요구했다. 결국 두 신인 배우들은 자신이 <게이트>에서 맡은 역할이나 영화적 얘기는 한 마디도 못한 채 GD와 임창정 성대모사를 하다가 퇴장했다.

정려원의 욕 연기, 임창정의 맞는 연기, 임창정과의 세대 차이 등 영화 얘기보다는 부수적인 얘기들이 많았다. 가십 위주의 토크쇼도 아니고 정통적으로 깊이 있는 영화적인 토크쇼도 아닌, 굉장히 애매한 톤의 토크쇼였다.

채널A <천만홀릭, 커밍쑨>

영화 관련 토크가 끝난 후 배우에게 개인적인 질문을 할 때 정려원에게는 아이돌 꼬리표, 정상훈에게는 무명 시절 얘기를 물어봤다. ‘그 배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키워드 질문이었다. 그만큼 다른 방송에서도 많이 해왔던 질문이고 시청자들도 더 이상 궁금해 하지 않을 질문들이다.

<게이트>가 블랙 코미디 영화고 <커밍쑨>이 깊이 있는 영화 토크쇼를 표방한다면, 적어도 현실적인 이야기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는데, 너무 곁다리 짚는 얘기들만 늘어놓았다. 그나마 ‘영화’적인 질문은 이원석 감독의 “기존 하이스트 영화와 차별점이 뭔가”였지만, 그마저도 “그것만큼 재밌어요”라고 얼버무리는 임창정의 대답에 묻혀버렸다.

도대체 ‘깊이 있는’ 영화 이야기는 누구에게 언제 들을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토크쇼를 만들고 싶었던 방송국과 영화 홍보를 길게 하고 싶었던 배우들의 니즈가 맞아떨어져 탄생한 토크쇼는 아닌지. 결국엔 영화 홍보를 위한 멍석 깔아주는 프로그램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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