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 한국 여자 쇼트트랙 선수들이 3000m 계주에서 우승하며 값진 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러나 결코 순탄치 않은 레이스였다. 준결승전에 이어 여자 쇼트트랙 선수들은 또 넘어졌다. 그리고 또 이겼다. 게다가 마지막 두 바퀴를 남겨두고 한국은 또 중국을 제쳤다. 소치 때와 너무도 비슷했다.

한국, 중국, 캐나다, 이탈리아가 출전한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는 출전팀의 면면이 말해주듯이 출발부터 치열했다. 심석희부터 출발한 한국 선수들은 초반에는 맨 뒤쪽에서 레이스를 이어갔다. 그러다가 김예진을 시작으로 선수들은 한 계단씩 차근차근 앞질러 갔다. 그렇지만 다른 팀이라고 한국의 추월을 그냥 보고만 있을 리는 없다.

치열한 견제에 한국 선수들은 좀처럼 선두로 나서지 못하는 모습이어서 믿고 보는 여자 쇼트트랙 계주라지만 은근히 불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렇게 차츰 남은 바퀴 수는 한 자리로 줄어들었고 순위는 엎치락뒤치락 없이 이대로 고정되나 싶을 때였다. 바톤 터치를 해야 할 김아랑이 교체 없이 그대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20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에서 한국 대표팀 맏언니 김아랑이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게 두 바퀴를 혼자서 더 타며 가까스로 순위를 앞당길 수 있었고, 김아랑의 추월을 신호로 한국 선수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결승선까지의 거리를 줄여갔다. 그리고 마침내 심석희가 마지막 주자인 최민정을 힘껏 밀어주며 한국 팀은 1위 자리에 처음 설 수 있게 됐다. 괴물소녀 최민정이 추월을 허용할 리 없이 그대로 간발의 차를 유지하며 결승선을 홀로 통과할 수 있었다. 소치에는 심석희의 마지막 분노의 질주가 압도적이었지만 이번에는 선수들 모두가 역전을 위해 혼연일체된 모습이었다.

MBC 안상미 해설위원의 말처럼 팀은 에이스는 한 명이 아니라 다섯 명 모두였다. 그렇지만 적어도 평소와 달리 앞서서 레이스를 끌어가지 못했던 한국팀이 역전으로 갈 수 있었던 계기는 김아랑의 두 바퀴 ‘더’ 돈 순간이었다. 물론 다양한 경우의 수를 대비했던 많은 작전 중의 하나였겠지만, 그 순간을 이끈 선수가 김아랑이어서 어쩐지 더욱 드라마틱한 감동을 줄 수 있었다. 게다가 그런 역주 후 터치 과정에서 넘어지면서 아찔한 순간도 있어서 이번 계주 결승의 드라마는 김아랑이 혼자 다 쓴 것만 같았다.

안상미 위원은 계주 중계를 할 때마다 추월은 3,4번 주자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었다. 그것이 계주의 기본 전략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김아랑은 한국팀의 3번 주자였고, 김예진은 4번이었다. 계주만 출전하는 김예진에게 비축된 힘이 더 있을 수 있었겠지만 맏언니인 김아랑이 책임을 지겠다는 각오를 엿볼 수 있었다. 만일 실패하더라도 비난은 동생보다 언니인 자신이 감당하겠다는 각오가 그 짧은 시간에 스쳐가지 않았을까?

20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에서 우승한 최민정, 심석희, 김아랑, 김예진, 이유빈 등 한국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아랑이 평창에서 보여준 언니의 품격은 충분히 그러리라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김아랑의 판단과 각오는 역전의 계기가 되었고, 여자 쇼트트랙 선수들은 세계 최강자임을 자랑스럽게 증명했다. 아깝게 4위에 머물렀던 개인종목 경기 때에는 남의 일처럼 환하게 웃던 김아랑이 계주를 끝내고는 펑펑 눈물을 쏟는 모습은 그래서 또 많은 이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여자 쇼트트랙 팀은 이로써 출전한 올림픽에서 석연찮은 판정으로 실격당했던 밴쿠버를 제외하고는 모두 금메달을 목에 건 계주에서는 지구 최강임을 입증했다. 여자 쇼트트랙의 에이스 최민정은 경기 후 “다른 선수들 믿고 저의 자리에서 믿고 했던 것밖에 없는 것 같고”라고 소감을 밝혔다. 요즘 시끄러운 팀워크 논란에 어지러운 팬들의 마음을 달래준 말이었다. 실력도 인성도 쇼트트랙 선수들은 모두 금메달이었다. 여자 쇼트트랙 선수들은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를 몸으로 실천해 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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