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지난해 11월 말 연합뉴스 기자가 타 매체 기자를 성폭행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대다수의 성범죄가 그렇듯, 가해자는 남성이었고 피해자는 여성이었습니다. 이 경우 언론사들은 어떤 제목으로 보도를 할까요. ‘여기자가 성폭행 당했다’입니다. ‘남자 기자가 성폭행 했다’가 아닙니다. 당시 기사를 쓴 저도, 다른 언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관련기사▶연합뉴스 기자, 타매체 여기자 성폭행한 것으로 드러나)

해당 사건을 여기자라고 표현한 언론들(미디어스)

처음 기사의 제목은 ‘연합뉴스 기자, 타 매체 기자 성폭행한 것으로 드러나’였습니다. 성폭행 가해자가 남성인 상황이 절대적이긴 하지만, 성별 구분이 없는 제목이었습니다. ‘여기자’라고 하기엔 너무 자극적이었고, ‘남기자’라 하기엔 기존 보도에 나오지 않는 표현이었습니다. ‘남기자’와 ‘여기자’를 모두 적으면 성별이 중복됐습니다.

여러 고민 끝에 미디어스는 기존 보도와 마찬가지로 ‘여기자’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언론 보도의 관성을 그대로 따라갔습니다. 악습이기도 합니다. 타 언론을 분석하고 비평하는 매체로서 적합한 제목이 아니었습니다. 잘못을 인정합니다.

많은 언론사가 여(女)를 남발하고 있습니다. 여고생·여대생·여교사·여검사·여기자 등등… 그간 있었던 수많은 성 폭력 기사에서 ‘여성 피해자’는 성별을 강제 당했습니다. 젠더 문제에 예민한 기자는 조심해서 쓰지만, 대부분의 기자는 별 생각이 없거나 화제성을 노립니다. 가해자인 남성보단 여성을 강조하는 게 독자들에게 더 많은 호기심을 끌 것이란 기대감이 악습을 만들었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김언경 사무총장은 ‘여(女)’라는 명칭은 잘못됐다고 단언했습니다. 김언경 사무총장은 “대부분의 기자들은 그냥 쓴다. 여(女)를 쓰는 게 문제라는 의식도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여(女)가 붙은 제목은 이목이 확실하게 끌린다. 한국사회는 일반적인 폭력 사건보다 여학생, 여대생 같은 단어에 예민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썼든, 흥미를 끌기 위해 썼든 잘못된 관행입니다.

신안군 교사 성폭행 사건에서 여교사라고 보도한 언론사들(미디어스)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도 같은 지적을 했습니다. 윤 소장은 “성에 관련한 보도 자체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며 “그렇기에 기사에선 어딜 만졌고, 피해자가 누구인지 중점적으로 쓰여진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범죄 행각을 초점을 맞춰 기사를 써야 한다. 재발방지 대책·원인·개선 방향을 다뤄야 옳은 기사”라고 전했습니다. 성 폭력 문제를 받아쓰기 급급했던 기자들이 되돌아볼 대목입니다.

이제 근본적인 질문으로 들어가 볼까요. 성폭행·성추행·성희롱 기사 제목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언경 사무총장은 성별을 드러내지 말라고 지적합니다. 김 사무총장은 “인권보도준칙이나 방송위원회 연구결과에선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성별을 특정해선 안 된다는 지침이 있다”며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것을 강조하지 말고 일반 폭력사건처럼 다뤄라”고 말했습니다. 윤정주 소장도 “여성을 꼭 강조해야 할 경우가 아니면 붙이지 않는 게 좋다”고 전했습니다.

다른 의견도 있었습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장미혜 실장은 “젠더 폭력의 중요한 특징은 성별에 따른 폭력성이다”며 “남 검사, 남 기자라면 성 폭력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성이기에 피해를 입는 경향이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그런 측면에서 여성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는 건 나쁜 게 아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엔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장 실장은 “여(女)를 부각시키고 싶으면 기자가 명확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자신의 고민이 기사에 녹아있어야지, 쓸데없이 여(女)를 붙이는 건 옳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여(女)라는 표현을 지양하되, 써야 한다면 문제의식을 가지고 쓰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저희부터 지켜나가겠습니다. 앞으로 ‘여(女)’를 강조한 제목을 지양하겠습니다. 꼭 써야 한다면, 기사에 문제의식을 녹여내겠습니다. 성 폭력 기사를 일회성으로 다루지 않고, 사건의 본질을 밝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미디어스를 포함한 모든 기자들이 습관적으로, 혹은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여(女)를 강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작은 노력이 언론의 신뢰를 가져오고 변화를 만드니까요.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