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쇼트트랙 대표 최민정 선수가 1500m에서 놀라운 모습으로 결승선을 통과한 직후 사람들은 먼저 괴물소녀 최민정 선수의 압도적인 경기력에 놀랐고 또 기뻐했다. 그리고 잠시 후 사람들의 눈을 금메달만큼 즐겁게 한 것은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 맏언니 김아랑 선수의 어른스러운 모습이었다.

최민정 선수와 함께 1500m 결승에 올랐지만 김아랑 선수의 최종 성적은 메달에서 한 계단 모자란 4위. 선수 본인으로서는 아쉬운 일이고, 1등에 시선이 쏠리기 마련인 상황에서 김아랑 선수가 시선을 독점한 것은 자신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동생이자 경쟁자인 최민정을 따뜻하게 감싸고 축하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사실 맏언니라고는 하지만 김아랑 선수 자신도 아직은 어린 23살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맏언니인 무게를 감당해내는 모습이라 더욱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을 것이다.

17일 강원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500m 결승전에서 한국의 김아랑이 금메달을 획득한 최민정을 축하하고 있다. 헬멧에 세월호 스티커가 보인다. Ⓒ연합뉴스

이후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에서 발생한 팀워크 논란을 생각한다면 새삼 김아랑 선수가 더 대견하고 믿음직스럽다. 덕분에 언론은 며칠 동안 김아랑 미담을 전하는 데 지면을 아끼지 않았고, 대중도 왕성한 소비를 보였다. 모처럼 뉴스 생산자와 소비자의 호흡이 잘 맞았던 훈훈한 이슈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김아랑 선수가 단지 전라도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말도 되지 않는 비난을 쏟아내는 부류도 있었다. 급기야 김아랑 선수 헬멧 뒤편에 부착한 세월호 리본을 문제 삼아 여론몰이를 하거나 심지어 IOC에 제소하는 일마저 벌어졌다. 여론은 싸늘하게 반응했다. 아니 다른 누구도 아니고 이미 국민적 호감을 얻은 김아랑 선수를 상대로 무모한 음해였다.

올림픽은 어쨌든 국격을 높이는 최고의 선전장이다. 또한 선수들이 평생을 두고 아낌없이 흘린 땀과 눈물의 결과를 확인하는 매우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다. 이런 올림픽과 선수들에 대해서 응원은 못하더라도 최소한 훼방을 놓는다는 것은 정치노선을 떠나 국민의 상식에 반하는 일이다. 평창동계올림픽은 일부 세력의 저주에 가까운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흥행의 성과를 쌓아가고 있다. 몇몇 경기를 연기해야 할 정도로 추운 날씨가 골칫거리였으나 4년 간 오직 평창만을 겨냥해 땀과 눈물을 흘려온 많은 선수들의 시간들은 헛되지 않은 것이다.

2014년 4월 29일 오후 강원 평창군 알펜시아리조트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3차 IOC조정회의에서 참가자들이 본회의에 앞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실종자를 위한 묵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심술궂었던 하늘마저 올림픽의 열기를 꺾지 못했다. 하물며 정치가 스포츠를 이길 수는 없었다. 평창동계올림픽이 개막했을 때까지도 평양올림픽이라며 색깔론을 펼쳤던 일본과 자유한국당의 노력은 별무소용이었다. 그러자 선수들을 공격하기로 한 모양이다.

물론 IOC가 일베 유저의 제소를 심각하게 다룰 가능성은 적다. IOC가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구체적인 논평을 하지는 않았지만 지난 2014년 4월 평창에서 열었던 제3차 조정위원회에서 회의에 앞서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묵념의 시간을 가졌던 사실은 IOC가 세월호 추모를 정치적으로 해석할 이유가 없음을 대신 말해준다.

하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아직 경기를 많이 남긴 자국 선수를 응원은 하지 못할망정 정치적 이유로 제소하는 등의 행위에 대해서 여론은 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이 IOC에 남북단일팀 반대 서한을 보낸 데 이어 또 나라 망신시키는 일이라고 분노하고 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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