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31일 오전. 휴대폰에 문자메시지 한통이 날아들었습니다. 삼성전자 온양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박지연씨가 결국 숨졌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산업안전공단은 삼성반도체공장과 백혈병 사이의 상관관계가 낮다고 판단했는데 또 한명의 사람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알려진 죽음으로만 벌써 여덟번 째.

그러나 대부분 언론은 무관심 했습니다. 방송 3사 뉴스에는 아예 보도도 안되었습니다. 트위터 타임라인을 살펴보니 <칼라TV>의 한 피디께서 “어떻게 이 사건이 보도조차 안되냐”고 하소연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이래도 되나 싶었습니다.

알고 있었습니다. 무관심한 게 아니라 다들 눈치 보고 있다는 것을. 100% 상관관계를 입증시키지 못하면 자칫 삼성에게 소송당할 수 있고, 광고 압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보도를 자제하고 있다는 것을. <대전MBC>에서는 취재 다 해놓고도 방송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팀장을 설득했습니다. “(연관 관계를) 입증 할 수 있다면 하겠습니다. 허나 그렇게 못하더라도 논란은 논란대로 보도합시다. 분명 의심스럽지 않나요.” 선배는 별 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길로 카메라를 어깨에 들춰 매고 서울 강남 성모병원 장례식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빗방울을 흘뿌리며 대지를 적시던 회색빛 하늘이 우두커니 제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병을 얻어 숨진 고 박지연씨의 유족이 지난 3월 31일 서울시 서초구 강남 성모병원 장례식장 바닥에 주저앉아 흐느끼고 있다. ⓒ허재현
저는 지난 달 삼성 반도체공장 백혈병 논란을 7편의 시리즈 기사를 통해 보도했습니다. (관련기사▷: 삼성 백혈병…‘환경수첩’은 알고 있다)

삼성전자 엔지니어 3명으로부터 ‘삼성 반도체 공장 안에서 유독성 가스 노출이 심했다’는 공통된 진술을 받았고 그간 삼성전자가 숨겨왔던 유해물질 목록을 폭로하기도 했습니다. 베일에 싸여 왔던 삼성 반도체 공장의 비밀을 한 꺼풀 벗겨낸 건데 앞으로 반도체 공장 안전성 논란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삼성과 관련한 취재는 처음이었습니다. 삼성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지 취재는 쉽지 않았습니다. 삼성이 매우 취재에 비협조적이었거든요. 취재 내내 이걸 극복하는 게 과제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취재 첫날부터 절룩걸음이 시작됐습니다.

“우리 아이 누가 죽였어.” 3월 31일. 서울 강남 성모병원 장례식장. 고 박지연씨의 할머니가 손녀의 영정사진 앞에서 바닥에 주저앉은 채 울고 있었습니다. 손녀는 죽었고, 그렇게 건강하던 손녀가 갑자기 백혈병을 얻은 이유를 할머니는 알고 싶어했습니다. 할머니에게 다가갔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기자를 보고도 아무 말씀을 안하셨습니다.

박지연씨 가족 어느 누구와도 인터뷰는 불가능했습니다. 왜 일까요. 억울해서 기자들 붙잡고 하소연 할만도 한데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요.

장례식장 주변에는 삼성 관계자들이 조용히 부모님을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지연씨 부모님은 아무 말이 없었지만 이들이 왜 여기에 와 있는 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장례비 대주는 조건으로 언론과 접촉하지 못하게 했데요.” 누군가 제게 귀띔을 해줬습니다.

취재는 이렇게 삼성과의 눈치 싸움이었습니다. 삼성은 반도체 공장에서 일어난 일들이 외부에 새어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온 듯 보였습니다. 약 2년 전 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10년 가까이 일한 엔지니어가 시민단체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과 접촉했을 때의 일입니다. 다음은 반올림 관계자에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엔지니어 김아무개씨는 어느 날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고 결심합니다. 그는 반올림을 찾아옵니다.

엔지니어의 증언은 문제 해결에 매우 중요합니다. 일반 노동자와 달리 화학적 지식을 상세히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간 일반 노동자들이 ‘반도체 공장의 위험한 환경’을 폭로한 적은 있지만 사실 전문적 지식이 없는 분들의 증언이라 삼성으로서는 반박하기 쉬운 상대들이었습니다.

김씨는 쉬는 날을 이용해 반올림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갑자기 전화를 걸어옵니다. “너 지금 어디야? 당장 들어와.” 김씨는 무시했습니다. 이미 결심이 섰기 때문입니다. 전화기를 꺼버렸습니다. 김씨는 반올림 활동가들에게 수 시간에 걸쳐 모든 진실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러나 김씨가 이날 한 진술은 2년간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김씨는 며칠 뒤 그의 부인과 함께 다시 반올림을 찾아옵니다. “제발 없던 일로 해달라”고 사정합니다. 그의 부인은 눈물까지 흘립니다. 깊은 속사정을 이야기 하지 않아도 이들 부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 지 속사정은 뻔한 것이겠지요. 반올림은 당분간 그의 진술을 묻어두기로 약속하고 그들을 돌려 보냈습니다. 그 뒤 김씨는 엔지니어 일을 그만 두고 삼성전자 인사팀으로 승진 발령이 났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김씨가 반올림을 찾아와 진술했던 내용들은 고스란히 비디오 테이프에 담겨 보관돼 있었습니다. 저는 이걸 입수해 독자 여러분께 보도해드렸습니다. 그리고 다른 엔지니어 두 명의 공통적인 추가 진술도 받아 보충했습니다.

만약 김씨가 조금 더 용기를 냈더라면,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어났던 일은 이미 2년 전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을 지도 모릅니다. 영업기밀을 보호해야 하는 삼성 입장에서는 당연한 조치였겠지만 진실을 밝혀야 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 삼성전자가 기흥 반도체공장을 언론에 공개한 지난 4월 15일. 삼성전자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던 고 황민웅씨 유족 정애정씨가 삼성 본관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허재현
삼성 취재에는 인내심이 필요하기도 했습니다. 자신들의 아픈 곳을 취재하려는 기자들에게 삼성은 극도로 예민했습니다. 인터뷰를 요청하면 번번이 거절했고 뚜렷한 이유없이 제 전화를 계속 피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삼성은 제가 항의할 때마다 사과를 하긴 했습니다. 그러나 그 뿐이었습니다. 사과 이후에도 취재 협조는 잘 해주지 않았고 ‘항의와 사과’.‘항의와 사과’가 계속 반복될 뿐이었습니다.

사과를 받지만 늘 뒤통수 맞는 느낌이었습니다. 일례로 이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4월23일. 삼성전자는 이례적으로 기자들에게 반도체 공장을 공개했습니다. 하지만 카메라 기자는 들어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민감한 공간이다보니 그럴 수 있다고 이해했습니다. 대신 삼성은 자신들이 찍은 영상을 언론사에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저희는 삼성의 그 말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삼성은 끝내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방송 3사에는 다 제공한 그 영상을 저희 <한겨레>에는 끝끝내 주지 않았습니다. 핑계도 참 황당했습니다. ‘촬영 테잎을 어디다 뒀는 지 못찾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삼성같은 굴지의 대기업에게서 들은 해명치고는 너무 우스워서 담당 피디랑 한참 웃어야 했습니다.

삼성을 취재 하는 기간은 이렇게 그들의 이중적인 모습을 확인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삼성은 최근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 안전하다는 것을 입증하겠다며 재역학조사를 실시하겠다고 언론에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삼성은 동시에 은밀한 걸음을 걷고 있습니다. 아직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현재 삼성은 산재신청을 하거나, 산재 불인정 판정을 받아 법원에 소송을 건 가족들을 은밀히 접촉하고 있습니다. 산재신청을 포기하게 하거나 소송을 취하해줄 것을 요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실제로 최근에 어떤 분은 삼성으로부터 거액의 보상비를 받고 소송을 취하하기도 했습니다. 삼성은 공장의 안전에 확신하다고 하면서 왜 가족들에게 접촉해 산재인정 노력을 포기하도록 종용하는 걸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입니다.

추가 백혈병 환자가 발생하면 삼성은 가족들에게 함구령을 내리기도 합니다. 지난 4월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일하던 한 노동자가 백혈병을 얻어 강북 삼성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런데 이 가족들은 기자들을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어렵게 어렵게 피해자의 어머니를 만나 물어보았는데 그는 제게 하소연했습니다. “딸 아이의 병원비를 회사에서 책임져 주고 있어요.” 삼성 관계자가 이분에게 어떤 말을 했는 지는 충분히 짐작 가능합니다.

이번 삼성 반도체 백혈병 논란을 취재하면서 저는 삼성이란 기업의 속살을 처음으로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눈에 비친 삼성은 참으로 실망스런 기업이었습니다. 어떻게든 기자들의 눈을 가리려 하고, 기자들 몰래 피해자 가족들에게 접근해 산재신청을 포기하도록 회유하고, 제보자들을 찾아다니며 입단속 하는 모습은 제가 알고 있던 ‘또 하나의 가족’ 삼성과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삼성은 공장이 안전하다고 해명하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어딘가 부끄러운 부분을 감추고 있다는 심증만 더 굳혀가게 했습니다.

사람의 죽음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 진실을 감추고, 기자들의 접근을 막는 건 삼성에서 일하다 숨을 거둔 고인들을 두 번 죽이는 것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삼성이 이번 사건에 대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기업답게 윤리적으로 대처해주길 기대하는 것은 정말 무리일까요.

삼성은 우리 사회에 아주 중요한 기업입니다. 우리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이 기업의 경제 행위는 우리 국가 경제 자체가 된 지 오래입니다. 삼성이 어떤 기업이 되는 지에 따라 우리 경제는 큰 영향을 받을 겁니다. 삼성을 제대로 감시하고 견제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이유입니다. 상처가 곪아 썪지 않도록, 고인물에 벌레가 끓지 않도록, 우리 언론이 삼성에 관심의 끈을 놓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산업재해로 병을 얻어 고인이 된 모든 노동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현재 한겨레 방송부문 뉴스팀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다.
영상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함께 들고 현장을 누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앞선 멀티형 기자가 돼려고 노력중이다. 우리 사회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사명을 놓는 그 순간, 기자가 아닌 단순 직장인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 그저 그런 기자가 되느니 문제적 기자가 되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하고 살기도 한다. 한겨레와 한겨레 독자들을 무지지 사랑한다. 개인 블로그 http://blog.hani.co.kr/catalu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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