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고 싶은 이유가 있어서 달리는 것인지 달리고 있으니 달리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은 달립니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지만 내일도 그들은 달릴 뿐입니다. 젊음과 마라톤. 그 한없는 함수 관계를 <런닝, 구>는 짧은 이야기 속에 담아내려 하고 있습니다.

2010 청춘 보고서, 청춘은 달린다

1. 청춘1

대구와 행주, 지만은 어린 시절부터 단짝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은 대구(백성현)와 지만(유연석)은 행주(박민영)를 차지하기 위해 달리기를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된 대구와 지만은 너무 달라진 서로의 관계 속에서 다시 달리기 위해 라인 앞에 섰습니다.

행주 앞에서 마라톤을 시작한 그들은 누구를 위해 달리는 것일까요? 이미 유명한 마라토너가 되어버린 친구 지만과 시장에서 짐을 나르며 자신의 꿈조차 접고 살아야만 했던 대구는 그렇게 다시 한 번 달리기 시작합니다. 처음부터 자신을 위한 달리기가 아닌 누군가를 위한 달리기를 했던 이 두 남자는 자신을 찾기 위한 달리기를 하는 것일까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그렇게 달리기 시작합니다.

대구가 그렇게 달리기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행주 때문이지요. 삼총사처럼 같이 어울려 다니던 그들은 안타깝게도 행주를 좋아합니다. 누구를 선택하지 못하는 행주를 위해 그들은 항상 달리기로 결정을 합니다.

행주의 생일날 1등 선물을 행주에게 주기위해 '어린이 단축 마라톤'에 출전하고 싶은 대구에게는 혹 같은 존재가 함께 합니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형은 자신에게 항상 그런 존재였습니다. 자신은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살아가며 같이 놀아줘야 하고 보살펴줘야 하는 형이라는 존재가 어린 대구에게는 무척이나 성가신 혹이었습니다.

페이스 조절을 못하고 앞서나가다 넘어져 무릎을 다친 형. 그런 형을 어떻게든 일으켜 세우려하는 대구는 힘에 부칩니다. 대구가 이번 대회에 참석하는 이유도 형을 보살피라는 아버지 때문이었죠.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행주를 위한 달리기는 비극을 몰고 옵니다.

뒤쳐지기만 하는 상황에서 딴 짓만 하는 형을 팽개치고 달리던 대구는 죽을힘을 다해 지만에 앞서 1등을 하게 됩니다. 너무나 행복해 아빠에게 자랑을 하지만 형을 버리고 혼자 온 자신에게 아버지는 칭찬이 아닌 야단을 칠뿐입니다. 홀로 남겨졌던 형은 자신이 좋아하는 기차를 본다며 기찻길로 나서서 길을 잃고 그렇게 하늘나라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살아있을 때는 일반인과 달라 아버지를 독차지하더니 죽어서는 어린 아들을 먼저 보낸 아버지의 자책으로 정신까지 온전히 가져가 버렸습니다. 그렇게 대구는 사랑에 굶주린 채 형을 죽게 만든 죄인으로 자신을 학대하며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런 그를 그나마 지탱할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은 '달리기'였습니다.

달린다는 것. 그 달린다는 행위만으로도 모든 고통과 아픈 기억들을 버릴 수 있다는 것은 그에게는 행복이었습니다. 다시 아픈 기억을 되살리게 되는 그날이 찾아오고 아버지는 다시 한 번 마을 주민들과 싸움을 합니다. 자식을 마음에 묻은 날 이런 행사를 해야 하느냐는 아버지와 이젠 잊으라는 주민들의 싸움은 의외의 일을 만들어내고 맙니다.

2. 청춘2

아버지의 합의금 천만 원을 만들기 위해 그는 불법 페이스 메이킹을 자처하게 됩니다. 막다른 골목에서 다시 타의에 의해 달려야 하는 상황이 그를 힘들게 하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감옥에 가야할 아버지. 자신 때문에 죽은 형을 위해서라도 아버지를 그 곳에 보내서는 안 됩니다.

자신과는 너무 다른 삶을 사는 어린 시절 친구들. 자신과 함께 항상 달리던 지만은 유명한 마라토너가 되어 금의환향을 했습니다. 지역 시청 팀에서 활동을 한다는 그의 등장은 반가움과 자괴감을 동반합니다. 이젠 너무 비교되는 입장이 되어버린 친구는 한 쪽에서는 피하고 싶은 존재일 수밖에는 없지요.

거짓말처럼 서울에서 생활을 하던 목욕탕 집 딸 행주도 고향으로 내려옵니다. 자신의 온 몸을 감싸는 비릿 내를 씻어내기 위해 매일 찾는 목욕탕을 나서며 대구는 행주를 만납니다. 너무 좋아하기에 피하고 싶은 행주. 음악을 전공해 서울 교양 악단에 들어간 그녀와는 너무 다른 자신이 민망하기까지 합니다.

그렇게 다시 세 친구들이 모였습니다. 과거 아무것도 몰라 행복했던 그들은 세월이 만들어 놓은 아픔들만 가득 담은 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대구가 그렇게 부러워하는 친구들도 그가 모르는 아픔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공한 마라토너 지만은 파파보이입니다.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아버지가 만들어낸 존재일 뿐입니다. 어떤 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계획대로 움직이는 그에게 자신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목욕탕 집 딸로 음악을 전공한 행주는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엄마가 그렇게 바라는 교향악단에 떨어지고도 엄마의 실망을 보기 힘들어 거짓된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 했던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만들고 그렇게 행주는 거짓된 삶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고 살아갈 뿐입니다.

재주는 좀 있어 하고 싶은 일 말고는 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 일을 내 마음처럼 할 수 없는 그들. 그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2010년 청춘들입니다.

3. 청춘3

4회로 마무리되는 실험적인 드라마 <러닝, 구>는 무척 매력적인 드라마입니다. 제목은 '달리는 구대구'를 상징적으로 담고 있지만 런닝구의 유사한 발음을 가진 '난닝구'라는 또 다른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런닝 셔츠가 아닌 난닝구는 다른 이미지로 다가오지요. 후줄근 이라는 표현처럼 낡았지만 몸에 너무 잘 맞아 버리기 힘든 자신만의 '머스트 해브' 같은 목록입니다.

그들에게 달린다는 것은 마치 남들이 보면 어떻게 볼지 알 수 없지만 마치 낡은 난닝구처럼 버리기 힘든 특별한 것입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 새롭고 좋은 것이 나와도 버릴 수 없는 것. 청춘 그들의 꿈과도 같은 '난닝구'는 그렇게 민망하게 흐트러져버렸지만 버릴 수 없는 자신의 모든 것입니다.

이 작품은 가수 이적의 동생인 이동윤의 첫 단독 연출작입니다. 그래서인가요? 형이 만들었던 '왼손잡이'의 가사와 무척이나 닮아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오른손잡이들 세상에서 왼손잡이를 이야기하는 형처럼 그는 자신을 잃은 채 살아가는 무력한 청춘들이 깨어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승패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모든 것에는 자연스러운 경쟁은 필연적이니 말이지요. 다만 그 경쟁이 결과에만 집중되지 않고 과정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그 어떤 경쟁이든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경쟁을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도구로 제작진들은 달리기를 선택했습니다. 자신이 가진 몸으로만 승부할 수 있는 달리기를 통해 그들은 잃어버린 청춘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결과에 따른 메달의 색깔은 다르지만 땀의 색깔은 같다'는 기획의도에서 보이듯 그들은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달리는 과정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결과와는 상관없이 최선을 다한 그들은 모두 승자라는 제작진들의 시선이 무척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무한 경쟁으로 승자 아니면 패자로만 나누는 세상에서 승패와 상관없이, 과정에 최선을 다하는 모든 이들이 승자일 수밖에 없다는 <런닝, 구>는 청춘들에게 슬며시 건네는 러브레터입니다.

여섯 살에 영화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 출연했던 백성현은 최근작인 <구르물 버서난 달처럼>에서 매력적인 남자로 거듭났습니다.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일약 스타로 등극했던 박민영은 실패작으로 끝난 <자명고> 이후 처음으로 드라마에 출연했습니다.

과거와는 조금 달라진 듯한 그녀가 자신의 나이 대를 어떻게 표현해낼지도 기대됩니다. 젊은 배우들과 노련한 연기를 선보이는 중견 배우들인 정규수, 전인택, 김미경, 최정우, 이달형 등의 농익은 연기들은 아직 어린 배우들의 연기를 품어내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0부, 50부를 넘나드는 드라마들 속에서 4회 만에 모든 것을 담아내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점들이 많을 것입니다. 다시 부활을 시작한 단막극처럼 MBC에서도 4회 단막극들을 통해 '베스트극장'이 부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목표를 잃고 꿈조차 상실한 채 그저 사회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런닝, 구>는 달리라고 합니다. 자신의 잃어버린 꿈과 자아를 찾기 위해서는 달리라는 이 드라마는 쉽게 만나기 힘든 멋진 작품으로 다가옵니다.

천년고도 경주에서 청춘을 이야기하는 감독은 분명하게 자신의 의지를 밝혔습니다. 가장 오래된 역사 속에서 청춘의 방황과 사랑, 그리고 꿈을 이야기하는 것은 '청춘들의 무덤'처럼 변해가는 대한민국을 상징적으로 비유하고 있었습니다. 나약해지고 자기 방어적인 존재로 변해가는 청춘들에게 즐겁게 '왼손잡이'를 외치게 하는 <런닝, 구>는 무척이나 매혹적이지요.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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