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부전이 의심된다. 피가 한 번 흐르면 쉽게 멈추지 않는다. 간이 상할 대로 상해버린 강두는 자칫 사망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10년이 넘게 환청과 환영에서 벗어나기 위해 먹었던 약들이 결국 강두의 간을 극도로 손상시켰다. 사고로 간까지 다쳤던 강두는 그렇게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살아남아 슬픈 존재들;
고장 난 보일러와 망가진 강두, 대신 고통을 품고 산 강두에 대해 자책하는 문수

문수는 당황했다. 강두 서랍에서 잊고 싶었던 기억과 마주했다.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했던 그 기억은 차라리 몰랐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기억이 잠겨 있었던 탓에 문수는 버틸 수 있었다. 사고는 있었지만 그 과정을 기억하지 못한 문수는 나름 살아낼 수 있었다.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 강두는 지독한 고통과 맞닥트려야 했다. 마지막 생존자였던 강두는 시체와 함께 있었다. 문수의 첫사랑이자 그녀를 만나기 위해 에스몰에 왔다 사망한 성재. 성재의 분노는 강두가 키운 죄책감이었다. 선하기만 했던 강두는 그를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평생 고생하고 있다.

JTBC 월화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

성재의 휴대폰을 보는 순간 문수는 지독한 고통과 마주해야만 했다. 잠금장치는 순식간에 풀리고 그날의 기억들이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독한 두려움 속에서 그녀를 구해준 것은 강두였다. 그리고 강두는 자신이 먼저 살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문수 먼저 살렸다.

문수는 그렇게 구조되는 과정에서 머리에 상처를 입으며 기억이 봉인되었었다. 하지만 그 봉인이 풀린 후 급속도로 밀려오는 죄책감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자신 때문에 강두가 이렇게 망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다. 첫사랑 오빠의 사망과 마지막 사랑이고 싶은 강두. 그들을 힘들게 했다는 죄책감은 자책으로 이어졌다.

떨쳐내지 못했던 그 기억과 자책에서 벗어나야 했다. 성재 집 앞에 선 문수. 그런 문수와 함께 그 집에 들어선 두 사람은 그동안 하지 못한 말을 성재 어머니에게 전했다. 그날 엄마 전화도 받지 않아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달라던 성재. 성재를 그곳으로 부른 것이 자신이었다고 고백하는 문수. 그렇게 그들은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서글퍼져야만 했다.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이 죄가 되어버린 그들은 서글프다. 지옥과 같은 곳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만, 그 고통을 끊어내지 못한 생존자들은 지독한 고통과 마주 싸워야만 했다. 외면하거나 부정하지 않으면 절대 버틸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살아남은 자는 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JTBC 월화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

자신이 성재와 강두를 힘들게 만들었다고 생각한 문수는 그렇게 외면하고 싶었다. 애써 외면하고 멀어지려 노력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사랑하지만 과거의 고통 속에서 자책하는 마음은 그렇게 서로만 아프게 할 뿐이다.

강두는 문수가 했던 대로 하기 시작했다. 너무 사랑해서 멀어지고 싶었던 강두. 그런 강두에게 매일 찾아왔던 문수처럼 강두는 그렇게 문수에게 다시 다가가려 노력했다. 자책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강두로서는 문수를 그렇게 방치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유골이 발견된 후 건설 현장은 더욱 복잡해졌다. 과거 현장에서 유골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건설사와 이에 동조하는 주원. 에스몰 붕괴 사고의 책임을 지고 숨져야 했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억울함을 토로하기 위해 과거와 동일한 방식으로 설계한 주원. 그렇게라도 밝히고 싶었다.

주원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억울함과 함께 불안도 함께하고 있었다. 자신 역시 아버지처럼 건물 붕괴를 그대로 방치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 말이다. 그런 그를 일깨우는 것은 강두였고, 유진이었다. 더는 주원이 힘겨워하기 원하지 않는 유진은 그가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서주원으로 살아가기를 바랐다.

JTBC 월화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

재영은 불안하다. 오빠가 이상하다. 지독한 붕괴 현장에서 겨우 살아난 오빠는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던졌다. 그렇게 자신은 챙기지 않은 채 오직 동생을 위해 살아간 오빠가 죽어가고 있다. 간에 큰 상처를 입었던 강두는 이후 지독한 환청과 환영을 이겨내기 위해 강력한 진정제를 먹어왔다.

간에 최악인 그 독한 진정제는 서서히 강두를 죽음으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자신이 망가지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았던 강두가 살고 싶어졌다. 문수와 함께 평생 행복해지고 싶은 강두는 정말 살고 싶다. 하지만 강두의 증세는 심각하다. 간 이식을 서둘러야 할 정도로 심각하다.

평생 오빠 앞에서 무뚝뚝하고 강했던 재영. 그런 재영이 강두 앞에서 서럽게 운다. 의사가 되었지만 오빠가 그렇게 망가져 가는 것도 몰랐다는 자책. 사는 게 지옥이라 유일한 혈육인 오빠 건강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는 자책이 그렇게 지독한 설움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간을 이식하려 하지만 조직이 맞지 않아 그것도 힘들다. 의사이지만 자신이 오빠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 입원하기 전 재영은 강두에게 문수에게 사실을 밝히라고 한다. 마마가 돌아가시기 전 문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강두를 생각하는 문수. 그녀가 받을 충격이 얼마나 클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재영은 강두가 직접 문수에게 말하기를 바랐다. 강두 역시 스스로 느끼기 시작했다. 자신이 얼마 버틸 수 없음을 말이다. 그렇게 문수의 집을 찾아 그녀를 부르던 강두는 쓰러지고 말았다.

JTBC 월화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

마지막 사력을 다해 문수를 찾은 강두. 그는 살아날 수 있을까? 수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죽어간 현장에서도 살아났던 강두는 다시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고 홀로 거리에서 왜 자신에게 이러냐며 분노하는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낼 수밖에 없었다.

마리는 유택과 가장 쿨한 이별을 선택했다. 어차피 함께할 수 없는 사랑이라면 그쯤에서 끝내는 것이 서로를 위해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손톱 손질을 하며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그것도 이별이라고 슬프다며 스스로 위로하는 마리는 그렇게 슬픔을 감내하고 있었다.

10년이나 지나 이제는 모든 곳들이 망가지기 시작한 문수네 목욕탕. 보일러에 문제가 생겨 온수가 터지고 말았다. 임시방편으로 물을 막아 놓기는 했지만, 제대로 수리하지 않으면 반복적으로 터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수리하자며 목욕탕으로서는 1년 중 가장 호황인 겨울에 문을 닫아야 했던 문수네 목욕탕.

고장 난 보일러는 강두와 같다. 그 긴 시간 동안 환청을 이겨내기 위해 먹은 약이 오히려 독이 되어 강두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 임시방편으로 극복할 수 없는 현실. 제대로 된 치료만이 강두를 살릴 수 있다.

JTBC 월화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

자신의 간을 내주겠다는 문수. 과연 그들은 행복할 수 있을까? 공사 현장에서 발견된 유골. 그 유골이 가족의 품에 돌아가면 강두도 살아날 수 있다. 그 지독한 고통을 온 몸으로 품었던 강두는 그리움이 만들어낸 병이었다. 그렇게 그들이 가족을 찾게 된다면 강두는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는 곧 강두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희망이기도 하다.

<비밀의 숲>은 대한민국 장르 드라마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지금까지도 회자될 정도로 이 드라마의 완성도는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르는 다르지만 <그냥 사랑하는 사이> 역시 한국 드라마의 품격을 한껏 올린 뛰어난 작품이다. 시청률로는 도저히 풀어낼 수 없는 이 드라마의 가치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에 있다.

드라마의 토대가 되기도 했던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와 세월호 참사, 제천 화재 사고에 이은 밀양 세종병원 참사까지 우리는 수많은 재앙과 같은 참사를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그 참사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를 꺼린다. 그렇게 감춘다고 그 상처가 아물 수 없음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그냥 사랑하는 사이>는 대형 참사로 인해 사망한 이들과 살아남은 이들에 대한 밀도 높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가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드라마다. 그리고 작가가 보여준 그 따뜻한 시선을 통해 다시 한 번 그들을 바라보게 된다. 결코 잊어서도 안 되는 그들을 우리가 어떻게 대해야 할지 이 드라마는 조심스럽지만 따뜻하게 이야기해주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