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지방자치단체, 광역의회, 기초의회 등을 구성하기 위한 지방선거가 5개월 여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6월 지방선거는 촛불시민의 염원을 담아 보다 민주적인 선거제도 하에서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 지방선거제도 개혁안에 반대로 일관하면서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여기에 더불어민주당이 서울시 선거구획정위원회가 내놓은 4인 선거구 확대 방안에 반대하고 나서면서 논란을 더하고 있다. 미디어스는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를 만나 더 민주적이고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선거제도 개혁과 선거구 획정안 등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16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헌법 개정-선거제도 개혁 촉구, 전국시민사회·노동·지방자치 단체 공동기자회견'에서 하승수 정치개혁 공동행동 운영위원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Q.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의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걸로 안다. 그러나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활동기한이 종료되고, 최근에는 헌법 및 정치개혁 특위까지 구성했지만 논의는 진전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법 개정이 자유한국당의 반대에 막힌 상태다. 민주당, 정의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찬성하고 있는데, 자유한국당 하나의 반대에 막혔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선거제도 개혁을 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국민의당 천정배, 정의당 심상정 의원 등이 지방선거제도 개혁안을 내놨는데, 헌법 및 정치개혁 특별위원회에서 제대로 다뤄지고 있지 못하다. 이처럼 선거법 개정이 어려운 상황이라 지금은 선거구 획정안이라도 바꿔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Q. 선거구 획정과 관련해서는 기초의원 선거구에 대해 4인 선거구를 대폭 확대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2인 선거구를 줄여 중선거구 취지를 살리고 거대양당이 독식하는 지방의회를 방지하고자 하는 의미인 것으로 아는데,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반대한다는 소식이다

그렇다. 서울시 선거구획정위원회의 경우 서울시 구의원 선거 2인 선거구 111곳을 36곳으로, 3인 선거구는 48곳에서 46곳으로 줄이고, 4인 선거구를 38곳으로 늘리는 안을 내놨다. 국민의당, 정의당은 찬성 입장이다. 그런데 자유한국당뿐만 아니라 민주당도 반대하고 있다. MBC 보도에서 안규백 민주당 서울시당위원장이 완강하게 안 된다고 했다. 지금까지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정치개혁 이슈를 두고 각을 세워왔는데, 서울시 선거구 획정과 관련해 서로 연대하는 이상한 모습이 됐다.

Q.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4인 선거구제 확대에 반대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결국 자기 밥그릇 챙기기다. 2인 선거구에서는 거대양당이 공천하는 후보가 곧 당선자다. 그런데 4인 선거구가 되면 후보를 두 명씩 내는 경우도 생길 텐데, 자기들끼리 경쟁하기 싫다는 거다. 이는 자칫 자유한국당의 지분을 유지하게 해주는 결과만 낳을 수도 있다. 자유한국당은 거대정당이고, 현역도 많아 프리미엄도 있다. 그쪽 공천을 받으면 어떻게든 2등은 할 가능성이 높다. 이대로라면 결국 민주당 1명, 자유한국당 1명이 당선되는 구도가 될 거다.

오히려 4인으로 하는 것이 지지율이 높은 민주당 입장에서도 좋을 수 있다. 민주당의 경우 후보를 두 명 내면 둘다 될 가능성이 높다. 거대양당에서 두 명의 후보를 낸다고 해서 절대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이나 다른 군소정당에 유리하지 않다.

Q. 지방의회 비례대표도 사실상 거대양당의 나눠 먹기식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있다

지방의회 비례대표는 10%다. 그런데 그게 특별히 10%로 정하는 근거가 없다. 2002년 광역의회에서 비례대표가 생겼고, 기초의회에는 2006년에 도입됐다. 당시 국회의원 선거가 1인 2표제로 바뀌면서 지방의회에도 도입 요구가 있었고, 10%만 비례를 뒀다.

광역의회의 경우 그나마 비례대표가 수가 어느정도 돼서 문제가 적은데, 기초의회의 경우 고작 1~2석이다. 3석인 곳도 드물다. 1석이면 무조건 그 지역의 1당이 들어가는 거고, 2석이면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하나씩 나눠먹는다. 이런 상황이니까 양당을 제외하고는 비례대표 후보를 내려고 하지 않는다. 그 결과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65곳에서 기초의회 비례대표가 무투표로 당선됐다. 자유한국당, 민주당의 지역기반인 경북, 전남이 가장 많았고, 서울에서는 용산구, 은평구에서 무투표 당선자가 나왔다.

2010년에는 당시 거대양당이 2석 비례대표인 곳에 2명씩 후보를 냈다. 1번 비례후보가 2년, 2번 비례후보가 2년씩 나눠먹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앞 사람이 약속한 2년을 채웠는데 나가지 않아서 갈등이 벌어지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기초비례는 비례라는 말을 쓰지만, 사실상 비례대표가 아닌 거대양당의 보너스 의석이라고 보는 게 맞다.

▲지난해 2월 2일 정치개혁 공동행동이 선거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합뉴스)

Q. 해결 방법이 있나?

시민사회에서 주장하는 건 최악의 경우에 10% 비례 비율을 올리지 못하더라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개념만이라도 도입하자는 거다. 경북 안동을 예로 들어보면 안동의 경우 민주당 지지율이 20% 정도 나온다. 지역구에서 자유한국당이 이미 많이 당선된 상태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개념을 적용하면 비례 2석은 민주당이 가져갈 수 있게 된다. 배분 방식만 바꿔도 많은 게 바뀐다. 이게 사실 당의 입장에서도 좋다. 민주당도 대구·경북에서 비례대표가 들어가고, 자유한국당도 호남에서 비례대표를 배출할 수 있다.

양당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정당정치의 관점에서 정말 중요한 문제다. 지역에서 1당 지배구조가 너무 오래가고 있기 때문에 그 지역 주민의 입장에서는 기초의원을 보면 '활동 잘하는 것'이 아니라 '줄 잘 서서 됐다'는 불만도 있다. 이게 바로 '지방의회 무용론'의 근본 원인이다. 공천이 곧 당선인데 왜 저런 선거를 해야 하나라는 의구심에서 시작되는 거다. 시민들이 구청장, 시장, 군수 잘 뽑는데는 관심있어도 시군구의회에 대한 기대가 없는 이유다.

Q. 기초의회가 지역사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조례를 정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갖고 있지 않나

그런 거에 대해서 실제로 지방의회가 역할을 해야 한다. 좋은 조례를 만들고 행정부에 대해 비판도 하고 하면 시민들이 효능감을 느낄 텐데, 그런 걸 시민들이 느끼지를 못하는 거다. 그 근본 원인은 바로 거대정당의 공천이 곧 당선으로 이어지는 구조에 있다.

Q. 지방의회를 살펴보면 유독 지역 사업가 등의 지역유지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경우가 많다

공천권자가 국회의원이나 당협위원장 아닌가. 그들 입장에서 보면 지역 당원이라는 것도 선거 때만 움직이는 조직들이라서 지역유지가 지방의회에 입성하는 게 도움이 된다. 인적 네트워크 등을 이용해 선거에 도움을 받고, 지역 유지들은 정치 욕심도 있겠지만 지방의원이라는 지위를 사업에 이용할 수도 있고, 지역에서의 입지를 강화할 수도 있다. 지방의원은 일반인이 접할 수 없는 꽤 많은 고급정보를 접할 수 있는데, 이를 이용해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다. 그래서 그런 문제가 생기는 거다.

예전에는 월급도 안줬었는데 요새는 지방의원도 월급도 준다. 서울의 구의원의 경우 연봉 5000만 원 정도 되고, 군 단위는 3000만 원대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의정공통경비도 있고, 의장의 경우 업무추진비도 있다. 결과적으로 지방의원은 꽤 좋은 자리가 됐다. 이럴수록 지방의회가 역할을 해야 하는데, 자신의 공천권자인 국회의원이나 당협위원장에게 잘 보이려고만 하고 본연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

Q. 2016년 서울시의원들이 보좌진을 1명씩 배치해달라는 요구도 있었다

그건 선택의 문제인데 서울시의 경우 국회의원 선거구를 쪼개서 시의원 선거구를 2개씩 나눈다. 그래서 비례 포함해 106명이다. 지방의회 치고는 매우 큰 의회다. 숫자를 줄이고 보좌진을 둬 전문화된 의정활동을 하는 구조로 가는 방법도 있다.

사실 서울시의원 106명도 근거가 없다. 유일한 근거는 국회의원 선거구를 2개로 쪼갠다는 거 하나다. 선거법 자체가 국회의원 선거구를 쪼개서 만들 수 있다고 돼있다. 굳이 쪼개는 이유는 시의원 선거구와 국회의원 선거구가 같으면, 다음 총선에서 시의원이 국회의원의 경쟁자가 될 수 있다는 거다.

영국 런던 시의회의 경우 국회의원보다 숫자가 적은 25명이다. 런던에서 뽑는 국회의원은 60명이 넘는다. 런던의 경우 의원수를 늘리는 대신 전문성 있는 보좌진을 택했다. 원래 지방자치의 개념도 한국처럼 국회의원 밑에 지방의원을 두는 그런 하부개념이 아니다.

Q. 설명대로라면 한국 선거제도가 굉장한 비효율적이고 국회의원 등 공천권자에게 특권이 주어져있다는 느낌을 준다

지금 한국 선거법은 오로지 국회의원이 공천권을 행사하기 좋게 만들어 놨다. 원래 국회의원은 국가의 일을 하고, 시의원은 시의 일을 하고, 동네의 일은 구의원이 하는 게 맞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역할이 다 중첩된다. 너도 나도 지역구 관리에만 매달린다. 같은 지역 민원 가지고 국회의원, 시의원, 구의원이 다 관여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서울의 국회의원이 됐다면 서울시의회 시의원 2개의 공천권을 갖게 되는 거고, 시의원 2명을 '부하'의 개념으로 거느리게 된다. 한국 국회의원이 누리는 법에 명시되지 않은 특권 중 하나가 바로 이거다. 실제로 국회의원이 지역구 돌아다니면 구의원, 시의원이 수행하고 그런다. 지방의원이 수행비서처럼 따라다니고, 국회의원 뿐만 아니라 당협위원장 주변도 그렇다.

Q. 이러한 폐단을 제도적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나

그게 바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4인 선거구제 확대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되면 정당의 지지율이 중요하기 때문에, 정당들도 공천개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구조가 된다. 4인 선거구의 경우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공식을 약간은 허물어뜨릴 수 있는 방법이다. 지방선거 자체가 공천은 곧 당선이라는 기득권 구조에서 벗어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가 지방분권을 한다고 하니, 이와 맞물려서 지역 모범사례를 만들어내면 지역정치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좀 더 근본적인 선거제도 개혁과 분권도 가능해질 거라고 본다. 첫 단추를 꿰는 게 중요하다. 우리도 선진국처럼 지역정치가 생활의 문제로 간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하나씩 바꿔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제도 개혁과 함께 정당 민주화가 중요하다. 우리도 독일처럼 제도적으로 강제할 필요가 있다. 지구당을 부활시키고, 지구당 자체를 민주적으로 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어쨌든 지구당이 있어야 기초의회에 공천을 하더라도 법적 실체가 생긴다. 지금은 공천권을 시·도당이 갖고 있어서 민주적 공천이 쉽지 않은 구조다. 이게 재작년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안한 거다. 우리는 지구당을 법적으로 없앴는데, 오히려 그게 중앙의 낙하산 공천 구조를 고착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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