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치를 모른다. 내가 직접 경험해본 정치 행위라는 것은 기껏해야 선거 때 지지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진 일뿐이다. 특정 정당의 당원이 돼본 적도, 다만 몇 푼이 됐든 정치 기부금을 내본 일조차 없다. 힘 센 정치인들이 텔레비전에 나와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민주주의니 국격이니 국가안보니 주워섬기면서 자기들이 마치 이 나라의 운명을 두 어깨에 죄다 짊어진 양 떠벌이는 걸 보면 정치라는 것도 실은 그들만의 잔치이거나 힘겨루기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지 10년이 다 되도록 정치부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으니 주류언론이 정치뉴스를 어떻게 만들어내는지도 실은 잘 모른다. 얼마 전까지 기자였던 사람들이 정치인으로 변신해 청와대에서, 국회에서 언론 자유에 반하는 정책을 밀어붙이는 정당을 위해 언성을 높이고 핏대를 올리는 모습에도 그저 잠깐 분노가 치밀다 말 뿐이었다. 너도 나도 죄다 정치를 한답시고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스스로를 변명하고 위로도 하면서 되도록 정치와 정치인, ‘정치적’이라는 말뜻이 지닌 모든 불온하고 음험한 것들로부터 거리를 둔 채 살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도대체 우리의 삶은 정치라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기나 한 것인가. 모른 척, 관심 없는 척 눈감고 있다 해서 정치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초연할 수 있는 것일까.

▲ 대통령 길들이기(마이클 무어, 2009)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천명하고 있다. 하지만, 신성한 헌법은 쉽사리 무시된다. 당연한 상식이 좀체 통하지 않는 것이다. 마이클 무어 식으로 말하면, 진실은 선동적인 것처럼 보이고, 상식은 급진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하여 마이클 무어는 ‘투표가 우리의 무기’라고 말한다. 지난 지방선거의 한 유력 후보도 “투표가 권력을 이깁니다.”라는 구호로 유권자들에게 호소했다. 비록 표 대결에서는 간발의 차로 졌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오히려 이겼다고 보는 게 맞다. 선거가 끝나자 사람들은 상대 후보에게 ‘강남 3구청장’이라는 웃지 못 할 별명을 붙여줬다. 그 표심에서 교훈을 찾는 것은 이제 당사자의 몫이리라. 마이클 무어에게서 나는 공화당보다 공화당처럼 구는 민주당이 더 나쁘다는 것을 배웠다. 다시 말해 공화당이 정말 나쁘다는 것을 ‘제대로’ 배웠다. 반면교사로 삼을만한 대목이다.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아빠(=미국)가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게 아니듯, 정당과 정치인의 임무는 모름지기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다. 마이클 무어가 지적한 것처럼, 정치인들은 자기 아빠가 청와대에 사는 게 아니라, 국민이라는 것을 한동안 까먹고 있었던 거다. 다행히 선거라는 제도가 그런 정치인들의 망각을 시시때때로 깨우쳐주는 걸 보면 투표가 무기라는 말은 맞는 것 같다.

늘 유쾌한 웃음을 주는 마이클 무어의 책은 우리가 어느새 잊고 있었던 상식을 되돌아보고 다시금 곰곰이 생각해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하다. 우리가 참여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끝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한 세상은 바뀌게 되어 있다. 나라가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바란다면 우리보다 똑똑하고 영리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 새로운 생각으로 새 세상을 열 수 있는 사람을 대통령에 앉혀야 한다. 미국 대선이 한창일 때 민주당 후보 오바마를 향한 원색적인 음해와 유언비어가 난무했는데, 그 가운데 오바마가 성조기 핀을 가슴에 달기를 거부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당시 오바마는 이렇게 대응했다. “나는 9․11 테러 이후 성조기 핀을 달았습니다. 하지만 이 핀을 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애국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핀을 떼어버리기로 했습니다. 가슴에 성조기를 다느냐 안 다느냐 하는 문제보다는 내 가슴에 무엇이 들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신념으로 미국은 더 위대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때 나의 애국심도 증명될 것이라 믿습니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애국심은 국기나 다른 어떤 상징물에서 거저 나오는 것이 아니거늘, 입에 발린 거창한 수사로 애국심을 포장하는 정치인들은 도대체 이 나라를 얼마나 사랑하는 것일까.

책을 읽다보면 특히나 언론인들이 뜨끔해할 대목이 여럿 나온다. 미국의 저명한 저널리스트 이지 스톤(Izzy Stone)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모든 정부는 거짓말쟁이들에 의해 움직이므로 정부의 말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다. 그런데도 정부에 부역하는 언론은 더는 언론이 아닐 터. “게으르고, 쓸모없고, 매번 속기만 하는 언론은 정부가 늘 진실을 말한다는 가정 하에 일하고 있지요. 주류에서 벗어나 있는 누군가가 거짓말에 대한 증거를 대면 그제야 취재에 나섭니다.” 참으로 정확한 지적이다. 단언컨대 미국이고 한국이고 주류언론은 의제(agenda)를 잃어버렸다. 특히 민감한 사안일수록 뭉그적거리면서 누군가 대신 총대를 메고 나서주길 기다리다가, 일이 터지면 그때야 면피를 위한 구색 맞추기식 보도에 마지못해 나선다. 아예 한 발 더 나아가 자체 탐사보도 기능까지 거세하고 마비시켜 버린다. 주류언론의 보도책임자들은 시청자 국민이 아닌 아빠(청와대)의 뜻을 행여 거스를까 전전긍긍하면서 날선 뉴스의 모를 하염없이 둥글게 깎아대느라 아무 것도 제 맘대로 할 수가 없다. 언론에게서 의심할 권리, 즉 비판과 감시와 견제의 기능을 빼앗아버리면 그 언론은 물을 떠난 고기처럼 곧 죽고 만다. 우리는 저널리즘의 상식과 원칙이 깡그리 무시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 루퍼트 머독
책에 이런 대목도 있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공중파는 맛이 갔다. 정말 볼만한 프로그램이 없다. 공중파에서 하는 방송을 보고 있으면 어떻게 된 게 철학책을 읽을 때보다 더 빨리 잠이 든다. 초등학생이 만들어도 그것보다는 잘 만들 것이다.” 우리 공중파도 이런 조롱에 시달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정부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서 언론환경을 미국식 체제로 바꿔놓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은 갈수록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데, 얼마 남지 않은 그 먹을거리가 얼마나 탐이 났으면 텔레비전보다 더 빨리 죽어가고 있는 신문에 떼어주겠다고 하지 않는가. 루퍼트 머독이라는 괴물이 망쳐놓은 언론환경이 얼마나 크나큰 재앙인지를 알아보려면 오스트레일리아 공영방송 채널을 딱 몇 시간만 틀어놓고 보면 된다. 상업적 기반을 토대로 성장한 서구의 방송과 한국의 방송환경은 달라도 너무나 다르지만, 정부는 모든 검증을 생략한 채 오로지 미국적인 것이면 뭐든지 만능인 것처럼 베끼고 따라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런 텔레비전이 국민의 정치 관념을 오도하고 있다면, 도대체 텔레비전이 존재할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아빠를 위해서? 상식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미국은 세계에서 비만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이고, 전 국민의 4800만 명이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화씨 911>에서 마이클 무어가 의사당 앞에서 뻗치기하며 고매하신 의원님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밀고 “자식을 군대에 보내겠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대답한 상원의원은 사우스다코타의 팀 존슨 의원 한 명뿐이었다. 더욱이 그는 호전적인 전쟁광이 득시글거리는 공화당도 아닌 민주당 소속이었다. 미국의 사회보장세 세율은 6.2퍼센트인데 연간 소득 10만 2000달러까지는 세금을 부과하지만, 소득이 그 이상이면 세금을 단 한 푼도 물리지 않는다. 모든 미국인이 공평하게 소득의 6.2퍼센트를 세금으로 내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이런 불합리한 제도를 바꾸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선거다. 지금 미국 사회가 겪고 있는 변화는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면서 시작된 일들이다. 불합리한 제도는 바꿔나가면 된다. 다분히 미국적인 상황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모색하는 내용으로 채워진 이 책은 그럼에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이클 무어의 속 시원한 독설은 정치에 대한 환멸과 무관심을 좀 더 쓸 만한 고민으로 바꾸는 데 필요한 동기를 제공해준다. 이 책의 원제는 ‘마이클 무어의 선거 가이드’. 특히 책 말미에 수록된 부시 전 대통령에 대한 35가지 탄핵사유를 눈여겨보라. 기왕이면 무어가 앞서 펴낸 두 권의 책도 함께 읽어보길 권한다. 때로는 유쾌한 반항이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는 힘이 되어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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