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NTV에서 11부작으로 방영되어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마더>가 tvN 수목드라마로 찾아왔다. 그러나 전작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마지막 회 시청률 11.195%가 무색하게 첫 선을 보인 <마더>는 2.952%의 아쉬운 성적을 거두었다(닐슨 코리아 케이블 플랫폼 시청률 기준). 그도 그럴 것이 첫 회부터 학대당하는 아이에, 한 술 더 떠서 그 아이를 납치(?)하는 선생님이라니. 제 아무리 일본의 화제 드라마였다 해도 여전히 '가정'의 신화가 공고한 대한민국에서 첫 회 <마더>가 보여준 설정들은 딱 불편하기 좋을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그 '불편함'이 우리에게 말을 건다. 어쩌면 <마더>의 주제의식은 바로 그 말걸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황금빛 내 인생>에서 가장 인기 없는 두 사람을 들자면 바로 서지안의 불행을 자초한 엄마 양미정(김혜옥 분)과, 최근 아이를 낙태하겠다고 해서 논란의 중심이 된 며느리 이수아(박주희 분)다. 두 사람은 역시나 우리 사회가 신봉하고 있는 '모성의 신화'라는 측면에서 너무 나갔거나, 튕겨져 나간 인물들이다. 양미정의 이기적인 선택이야 입을 모아 비난하지만, 이수아의 선택을 놓고 '낙태법' 통과와 관련하여 이수아의 선택을 지지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분노한다. 이 또한 소현경 작가의 노련한 말걸기의 방식으로 보인다.

이 두 편의 작품들이 여전히 '모성'이 당연시 되는, 그리고 그런 당연시 되는 모성에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하는 시대에 던진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혜나, 애초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아이?

tvN 새 수목드라마 <마더>

<마더>의 주인공 혜나. 5살이 될 때부터 혼자 거리를 헤매던 이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 교실의 같은 반 아이들에게 '쓰레기' 취급을 당한다. 하지만 '쓰레기' 취급은 비단 같은 반 급우들에게만 당하는 건 아니다. 그녀를 보호해줘야 할 엄마 자영(고성희 분)에게도 그녀는 '처치 곤란'이다. 어린 나이에 혜나를 어찌어찌해서 낳았지만 엄마로서 보호해주는 대신 여행 가방에, 쓰레기봉투에 아이를 넣어버리는 엄마. 자신이 낳은 딸보다, 설악(손석구 분)이라는 남자가 떠날까 더 애달는 엄마에게 딸 혜나는 '짐'이며 '혹'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사회면에 오르내린 세 아이 화재사건을 비롯한 아이들의 방치, 학대, 그로 인한 사망 사건들의 기저에는 드라마 <마더>가 그려내고 있는 모성의 딜레마가 있다. 엄마는 책임지지 못할 아이를 낳아서 방치하거나, 아니면 일찌감치 아이들의 곁에서 떠나버렸다. 그리고 남겨진 아이는 '모성'의 보호에서 방기된 채 무책임한 부성과 결탁한 의제 모성의 학대에 무기력하게 방치되어 희생자가 되곤 한다. <마더>를 비롯한 이런 일련의 사회적 사건들은 바로 우리가 신봉해 마지않는 '모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다. 과연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는 모성이란 존재하는가?

드라마 속 혜나는 묻는다. 왜 아이들은 엄마가 필요하냐고. 이는 한 아이의 성장을 왜 가족, 그중에서도 엄마가 책임져야 하냐고 묻는 것이다. 혜나는 어쩌면 애초에 '낙태'되어야 했을 아이일지도 모른다. 이런 워딩은 그 자체로 '논란'이 된다. ‘살아있는 생명을 어떻게?’란 울분에 찬 반문이 돌아올 것이다. 그렇다면 대상을 바꿔 <황금빛 내 인생>의 수아가 임신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어떨까? 태어나서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아이와, 아직 뱃속에 있는 아이는 다를까?

KBS2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

생명권의 영역을 어디까지 하느냐에 대한 논란의 제기가 아니다. <황금빛 내 인생>의 이수아는 일관되게 대한민국에서 자신은 겨우, 하지만 아이까지는 책임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 수아가 주장하는 책임의 극단적인 문제적 형태가 바로 <마더>의 혜나 엄마이다. 그리고 뉴스에 빈번하게 오르내리는 사회면의 사건들이다. 책임지지 못할 '모성'이라면 차라리 애초에 태어나지 않는 게 낫지 않았을까라고, '인지상정'으로 귀결되게 되는.

모성 신화의 현대사, 그러나

우리의 현대사는 '모성 신화'의 서사를 품는다. 6.25 이후 등장한 수많은 문학작품들 속에서 '어미'는 전란 속에서 내 자식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 모성은 강인했으며 끈질기게 혈연의 끈을 놓지 않고 우리의 현대사를 생존시켰다. 황석영, 박완서, 최일남, 박경리 등 우리가 기억하는 작가의 명작 속 주인공을 살려낸 건 대부분 상실된 아버지 대신 어머니였다. 드라마와 영화 등 콘텐츠라고 다를까. 일찍이 70년대 펄벅의 <대지> 속 여주인공이 농사일을 하다 아이를 낳고, 다시 아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 그 자리에서 탯줄을 입으로 끊고 일을 마저 하는 그 '불사신' 같은 모성의 신화는 버전만 달리했을 뿐, 우리가 마주친 대부분의 문학과 문화 콘텐츠에서 유효하게 전승되어 왔다.

KBS2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

하지만, <마더>와 <황금빛 내 인생>은 ‘과연 그럴까’라고 문제를 제기한다. 왜 '엄마'에게 본투비 모성을 짊어지워야 하냐고 묻는 것일지도 모른다. <황금빛 내 인생>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건 며느리 이수아만이 아니다. 아니 이수아는 아직 선택을 하지 않았다. 반면 시어머니인 양미정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는 딸 지안을 마치 뻐꾸기의 '탁란'처럼 해성가에 들여보내고자 한다. 엄마 양미정은 자기 아이의 행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것이다. 우리의 현대사 속 모성과 똑같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지만, 작가 소현경은 거기에 발을 건다.

하지만 그 이전에 드라마 속 양미정의 모성, 그 근거를 살펴보아야 한다. 지금 <황금빛 내 인생>에서는 양미정의 남편인 서태수의 상상암으로 인한 해프닝이 한참 화제가 되고 있다. 왜 한 집안의 가장인 서태수는 죽고 싶은 마음이 넘쳐 상상으로 암이 다 걸렸을까? 물론 드라마는 주로 자식들과의 갈등을 초점으로 잡고 있지만, 그 기저에는 바로 남편을 '돈 버는 기계'로만 대접했던 아내 양미정이 있다. 돈 못 벌어오는 남편을 지난 10년간 가장으로 존중해 주지 않았던 아내. 바로, 이 지점에서 양미정 모성의 근거가 드러난다. 돈으로 지탱 가능했던 모성, 그런데 그 '돈'이 사라지자 모성은 극단적 선택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렇게 드라마는 '돈'만 있으면 가능했던 ‘물신주의적 모성’의 이면을 그린다. 그리고 반문한다. 여전히 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성에 기대어야 하는 사회냐고.

이는 양미정 개인의 도덕적 문제이지만, 동시에 한 사회에서 한 가정이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키우기 위한 전제조건에 대한 문제제기이기도 하다. 돈을 버는 가장이 무너지면 '가정' 자체도 무너지는 사회. 하물며 남편도 없이 혼자 딸을 키우는 젊은 엄마에게 모성은 어떤 것일까? 그에 대해 이수아의 선택이 '낙태'이며, 혜나 엄마 자영은 ‘출산’을 선택했으나 버거운 모성의 결과가 학대와 방치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물론 <황금빛 내 인생> 속 수아에게는 정직원인 남편이 있기에 그녀의 선택이 극단적으로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에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낳지 않으려 애쓰는 현실은 바로 이런 양육의 딜레마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으며, 작가는 그런 현실을 담아내고자 했다.

tvN 수목드라마 <마더>

결국, 우리 사회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낙태' 논란은 역설적으로 '모성 보호'로 귀결된다. 한 엄마가 마음 놓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인가의 문제제기이다. 여전히 6.25 동란 와중에도 내 아이를 지켜낸 모성 신화가 전통으로 자리 잡은 사회, 그러나 현실은 '돈'이 자식을 키우는 사회이다. 한 엄마가 스스로 설 수 있는 사회, 그리고 너끈히 아이마저도 품을 수 있도록 만드는 사회, 그게 아니라면 낳아서 학대하고 방치하느니 차라리 책임질 수 없는 생명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하는 절명의 요구이다.

이제 더는 아이를 낳아 놓으면 아이는 제 먹을 것을 지고 나와 스스로 자라나는 사회가 아니다. 아이 한 명을 키우는데 몇 억이 드는가가 통계로 나오는 사회, 있는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차이가 어릴 적 교육부터 학력과 신분으로 고착된 사회에서 과연 이 시대 엄마들에게 여전히 '모성'이라는, 진화학에서조차 고개를 갸우뚱하는 불투명한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건 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이 '무리수'가 된 모성의 현실을 <마더>와 <황금빛 내 인생>이 역설적으로 풀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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