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다이스 [paradise] : [명사] 걱정이나 근심 없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곳.

과연 '라이브의 황제'였다. 40대의 나이가 정말 맞나 싶었다. 16일 밤 EBS <스페이스 공감> '이승환의 말랑한 콘서트'에서 주인공 이승환은 한 순간도 가만히 서 있질 않았고 열정적으로 무대를 누비며 온 몸으로 소리를 토해냈다.

공연 중 땀을 많이 흘리기 때문에 HD 방송 화면에 못나게 잡힐까 걱정했다는 그였지만, 오히려 땀범벅이 된 모습으로 모든 것을 뿜어내는 모습이야말로 감동이었다. 멋진 안무, 화려한 의상, 깜찍한 표정과 립싱크로 음악프로그램을 점령한 아이돌 스타에게선 보기 힘든 모습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공연(프로그램)은 끝났지만 거장의 거친 숨소리는 아직도 귓가를 맴돌고 있다.

제목처럼 부드럽고 말랑한 콘서트가 될 것이란 예상을 깨고 이승환의 무대는 마치 드넓고 푸른 바다 속에서 넘실대는 파도를 헤쳐나가듯 활기가 넘쳤다. 대표적인 발라드 곡은 공연 초반에 한두곡 불렀을 뿐 대부분 마니아들이 좋아하고 공연 때 자주 불렀던 힘있는 곡들로 채워졌다. 1시간 내내 공연장의 열기는 조명처럼 붉고 뜨겁게 물들었다.

<스페이스 공감>은 이승환을 이렇게 소개했다.

"1989년 데뷔해 9장의 정규앨범을 내고 1000만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와 1000회가 넘는 공연 기록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뮤지션이다."

음향과 무대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TV 프로그램의 한계 때문에 방송 출연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사람. 이렇게 음악에 대해 욕심도 많고 고집도 있는 바로 그 이승환이 얼마 전 처음으로 '말랑'이라는 미니앨범을 냈다. 3~5곡이 수록된 싱글이나 미니음반이 대세가 된지 오래지만, 죽어가는 음반시장을 누구보다도 안타까워했던 뮤지션 중 하나였기에 그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정규 앨범을 발표하는 일조차 버거운 현실. 우리나라 대표적 뮤지션이며 20여년을 쉴 새 없이 달려온 그에게도 현실은 녹록치가 않다.

그래도 우리 모두는 파라다이스를 꿈꾼다. 고단한 현실도 오늘이 지나면 더 나은 내일이 있다는 믿음으로 견딜 수 있다. 미칠 듯이 열광하고 빠져들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면 이 누추한 삶의 고단한 시름 따위는 바다 속에 던져버리고 나만의 낙원으로 달려갈 수 있다.

20여년의 음악 생활 동안 남들처럼 그 흔한 은퇴 한번 하지 않고, 쉽게 타협하거나 퇴보하지 않으려 늘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며 한 곳을 향해 내달리고 있는 사람. 무대에서 자신의 표현대로 '즐쳐달리는' 40대 뮤지션과 어느덧 직장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된 20~30대 팬들. 모든 연주와 노래와 함성과 뜨거운 열기를 가슴으로 느끼며 팔을 올리고 발을 구른 채 하나되는 그 순간, 그 곳이 바로 그들에게 최고의 파라다이스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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