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17일 오후 SBS가 <[취재파일] 레진 코믹스의 블랙리스트 이메일 공개…'갑질 기자' 등극>이라는 취재파일을 게재했다. 지난 16일 미디어스가 보도한 <SBS의 중소매체 단독 가로채기 '갑질'>을 반박하는 내용이었다.

미디어스의 관련 기사 내용은 이렇다. 중소매체가 이미 지난해 12월 22일 보도한 내용을 SBS가 1월 11일 보도하면서 '단독'을 달아서 내보냈다는 것이다. 메이저 매체들이 중소매체 보도와 유사한 내용에 단독을 달아 특종인 것처럼 내보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취재하는 내용에 대해 모니터링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취지가 깔려 있었다.(▶관련기사 : SBS의 중소매체 단독 가로채기)

▲17일자 SBS 취재파일. (사진=SBS홈페이지 캡처)

SBS가 취재파일을 통해 미디어스 보도에 대해 문제 제기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A매체 기자를 취재하지 않았다

- 최진봉 교수 인터뷰는 유도질문이었다

- SBS 리포트는 단독이 맞다

- 갑질 프레임이 억울하다

- 반론의 기회가 없었다

① A매체 기자를 취재했다

먼저 SBS 취재수첩의 문제제기는 시작부터 사실관계가 다르다. 직접 레진 코믹스 보도를 한 중소매체의 기자를 상대로 취재를 했다는 점을 밝힌다. 앞서 미디어스는 중소매체가 보도했던 내용을 메이저 매체가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단독을 달아 보도하는 행태에 대해 몇 차례 지적한 바 있다. 레진 코믹스를 취재하는 A매체 기자의 동료가 미디어스에 제보를 해왔다. "아무리 메이저 매체라도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는 항변도 함께였다.

레진 코믹스 취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확인이 필요했다. 지난해 불거진 레진 코믹스 갑질 논란에 대한 기사를 확인하고 A매체 기자와 전화인터뷰를 했다. 1월 11일자 SBS 리포트는 오랫동안 레진 코믹스를 취재해온 A매체 기자 입장에서 억울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고, 기사를 작성했다. 다만 A매체 기자가 SBS라는 대형매체를 상대로 하는 취재원으로 특정되는 것을 두려워해 기사 내용에 일부 가정을 전제했으며 추측성 보도처럼 보일 여지는 있었다.

16일 기사가 나간 후 SBS 리포트를 작성했던 기자가 수차례 전화를 걸어와 취재원을 물어 "(A매체)동료 기자들에게 이런 일이 있다고 들었다"고 답했다. 이유는 취재원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A매체 기자에게도 이를 위해 "아무 얘기도 한 적 없다고 하라"고 말했다. 'A매체 기자는 중소매체 기자이고, SBS는 지상파 3사에 해당하는 대형매체이다 보니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판단에서다.

취재원을 특정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기사를 쓰기로 A매체 기자와 약속했다. 취재원을 지키는 게 최우선의 취재 윤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SBS의 취재파일로 인해 17일 A매체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취재원을 공개해도 되겠느냐"고 의향을 묻고 승낙을 얻었다. 다만 현재 상황에서 매체와 기자의 실명을 밝히지는 않는다.

② 미디어스는 인터뷰이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취재 특성상 취재원과의 전화통화는 녹취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기사를 작성한 시기는 1월 12일이다. 그날 오후 6시 15분 최진봉 교수와 정확히 19분 10초 전화통화를 진행했다. 해당 내용은 모두 녹취로 남아있다. 당시 질문은 이랬다.

"교수님, 레진 코믹스 사태 난 거 아십니까. 어제(11일) SBS가 단독 보도라고 해서 냈을 거예요. 그런데 그게 이미 지난 12월 A매체가 취재를 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12월에 이미 단독 보도로 나갔던 내용이었습니다. SBS가 공개한 이메일을 A매체 기자가 준 겁니다. 그걸 보도한 건데 단독이라고 썼습니다. 이거 심각한 문제 아닙니까?"

"결국 정확한 인터뷰의 취지나 전후 내용 설명 없이 인터뷰이의 비판 멘트만 유도해 낸 셈"이라는 SBS의 지적은 타당하지 않다. 지금 밝히지 않는 녹취의 내용도 이를 입증한다.

③ 전문가 멘트 담긴 보도는 모두 단독?

SBS는 "기자가 단독이라는 A매체가 보도한 사안을 보도하면서 단독이라는 표시를 한 것을 모든 비난의 출발점으로 삼았다"면서 단독 보도인 이유를 조목조목 댔다. SBS는 '취재파일'에서 "A매체 기사에는 설명으로 소개된 것을 직접 실물 화면으로 내보냈다"고 했다. 문제의 이메일을 화면으로 공개해 단독이라는 얘기로 들린다. SBS 기자는 미디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화면단독'이라는 말을 썼다.

어떤 위험한 화재 현장에서 카메라 기자가 용감하게 화재 진압 상황 등을 홀로 촬영했다고 치자. 이런 건 화면단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메일은 '텍스트'다. 글로 충분히 보도된 내용을 화면에 공개했다는 이유로 '단독'을 붙이는 게 합리적인지 모르겠다. 또한 SBS 기자는 자료를 제공한 A매체 기자에게 이메일을 화면에 공개하겠다는 동의를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A매체 기자는 자신의 취재원이 특정될 수 있는 이메일이 화면에 공개돼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

또한 SBS는 "계약조건 변화 전후로 두 종류의 웹툰 연재 계약서 각각 입수해 계약서 전문 변호사를 찾아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가 있는 일방적 계약 조건을 밝혀낸 것 역시 중요한 SBS만의 취재 내용"이라고 했다. 그러나 해당 리포트의 제목은 <[단독] "레진코믹스, 작가 항의하면 블랙리스트로 관리"…증거 입수>다. SBS가 단독으로 블랙리스트로 관리한 이메일을 입수했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소지가 다분하다. 해석의 차원인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것을 단독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워 보인다.

16일 저녁 SBS 기자는 미디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밝혔다.

"솔직하게 설명드리겠다. 저희 편집부에 있는 분이 '이거 단독이예요?'라고 물어봤다. 그럼 그림 단독이지. 약간 농담 반, 진담 반 해프닝성으로 된 거다. 저는 제 기사에 단독이라고 쓴 적이 없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와 A매체 기자와 웃으면서 '단독이라고 가도 되는 거냐', '단독이라고 말하면 A매체를 언급하기가 힘들겠다' 웃으면서 통화했다. 그리고 단독 나간 거 보고 (A매체기자에게)'단독 나가면서 문제 생기거나 하면 제가 책임지겠네요' 하고 농담하고 레진 사람들 반응을 보자고 마무리 지었다. 정말 뺏거나 갑질이거나 그런 마음도 없었고 (중략) 본부장한테 엄청 깨졌다. 별 것도 아닌 거 가지고 단독을 내보내서 편집부에서 그랬다고 얘기도 못하고 죄송하다고 하고 나왔다"

④ 모르는 게 갑질이다

앞서 SBS 기자의 말대로라면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단독 가로채기 사례다. SBS 기자는 단독으로 기사를 작성하지 않았는데, 편집부에서 영상단독이라는 취지로 말해 생긴 '해프닝'이라고 했다. SBS 입장에서는 이 상황이 갑질로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중소매체 기자 입장에서는 대형매체에 항의하지도 못하는 억울한 상황이다. SBS는 갑질이 아니라고 한다. 그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는 게 오히려 더 큰 문제로 보인다.

취재현장에서 많은 중소매체 기자들이 대형매체 기자들에게 갑질을 당한다. 기자단 문제부터 시작해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식까지 갑질의 종류는 다양하다. 기자단은 대형매체 위주로 꾸려져 있고, 알 수 없는 기준의 기자단 가입투표에 중소매체 기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고배를 마신다. 대형매체 기자들이 장·차관과 면담하고 식사할 때 중소매체 기자들은 직급이 다소 낮은 공무원과 티타임 한 번 잡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SBS 기자는 레진 코믹스 단독 보도와 관련해 미디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수차례 '별 것도 아닌 기사'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A매체 기자에게 소중한 기사이고, 제보자는 자신이 다칠 걸 각오하고 제보한 중요한 기사다.

⑤ 반론의 기회가 없었다? 유감이다

이 부분은 취재 과정에서 실수한 부분이다. 변명의 여지도 없고, 반론 기회를 받지 못한 SBS에 유감을 표한다. 16일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자의 보도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남겼다. 지적에 대해 충분히 동의한다는 점 분명히 밝힌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 페이스북. (사진=페이스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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