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 지방선거 개표가 계속된 3일 새벽 서울광장에서 개표결과를 기다리던 한명숙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지지자들이 '투표는 권력을 이긴다' 등의 문구를 들어보이고 있다.ⓒ연합뉴스
2008년 5, 6, 7월 ‘촛불’이 있었다. 거기엔 국민 건강을 무시하는 듯한 정권의 오만한 태도, 이를 둘러대는 정권의 거짓말, 이미 팽배해 있는 학교 줄 세우기의 강화, ‘강부자-고소영’ 내각이란 조롱까지 불러온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정권의 도덕적 불감증 등에 대한 젊은층과 여성의 분노가 있었다.

이후 촛불은 침잠했다. 반성하겠다던 정권은 벌금으로, 형사고발로 수많은 시민들을 옥죄었다. 본격적인 방송 장악과 인터넷 통제에 나섰고, 전교조와 공무원노조에 대한 비난은 물론 세종 행정도시 건설 방안까지 좌파 정책으로 낙인찍을 정도로 무차별하고 몰상식한 색깔 공세를 노골화시켰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이라는 엽기적인 발상을 4대강 사업이라고 말만 바꿔 강행하는 데서 보이듯, 뻔뻔스러움의 강도는 시간이 갈수록 높아졌다.

저항이 따랐다. 방송 장악을 겨냥한 한나라당의 언론악법에 대한 1년6개월이 넘는 언론 노동자의 저항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고, 천주교와 조계종을 포함한 범종교계의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가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을 동원해 재갈을 물리는 한편으로, 모르쇠로 일관했다. 해외 원전건설 사업을 수주한 성과에 대한 대대적인 홍보로 실정을 덮는가 하면, 각종 국제스포츠 경기에서 보인 선수들의 선전을 정권의 국정운영 성과로 돌리는 ‘견강부회’를 일삼았다.

▲ 낙동강 구담습지의 4대강 사업 진행된 이후 모습ⓒ남준기 내일신문 기자

그리고 선거를 앞둔 지난 3월29일 ‘천안함 침몰 사건’이 있었다. 대통령까지 나서 북한의 도발보다는 ‘사고’일 가능성이 높음을 내비쳤던 이 사건을 어느 순간부터 조직적으로 ‘북풍’으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납득이 가지 않은 온갖 의문으로 범벅을 이루고 있는 천안함 침몰 사건은 장악된 방송의 도움을 받아 4대강 사업, 세종 행정도시, 정권의 MBC 장악 기도 등 모든 선거 쟁점을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기능하는 것처럼 보였다. 대통령은 전시사령관처럼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막말까지 해댔다. 자신이 이라크전을 일으킨 마치 조지 W. 부시라도 되는 것처럼 굴었다.

비관적이었다. 강도의 차이는 있었으나, 6·2 지방선거에서 수도권과 충청에서도 야당을 비롯한 상식 세력이 질 것이란 예상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정권의 참패였고, 한나라당의 완패였다. 현 정권 출범 직후 2008년 5, 6, 7월 촛불의 광범위한 저항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과 비슷하다. 현 정권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거의 들을 수 없을 만큼 방송 장악이 사실상 완료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한층 더 놀라움으로 다가오기까지 하다. 그래서 나의 감성 코드로는 ‘거짓과 조작으로 얼룩진 정권의 통치에 침을 뱉고, 장악된 관제 방송들의 천박함에 욕을 쏟아낸’ 것으로 이번 선거의 의미를 읽고 싶다.

이미 선거 결과를 풀이하는 여러 이유가 꼽히고 있다. 54.5%라는 높은 투표율, 이를 주도한 젊은 층의 선거 참여, 천안함이 상징하는 ‘북풍’이 지닌 ‘양날의 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년에 즈음한 ‘노풍’의 힘, 거의 안하무인에 가까운 국정 운영 방식에 대한 전통적인 견제 심리의 부활 등이 그것이다.

개인적으론 두 가지에 주목한다. 하나는 ‘북풍’이 지닌 ‘양날의 칼’ 효과이다. 정권 차원에서 천안함 침물이 북한의 어뢰에 의한 것이라고 몰아가는 과정에서 내세운 근거와 증거가 워낙 허점과 의문으로 얼룩져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당연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런 어수룩한 내용을 국민의 60% 이상이 신뢰한다고 할 정도로 관제방송들의 협조가 컸음에 비춰볼 때, 천안함 침몰의 진실 논란이 선거에 큰 영향을 줬을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오히려 천안함 침몰 사건을 전면적인 북풍으로 몰아가면서 발생한, 환율이 폭등하고 증시가 폭락하는 ‘한반도 리스크’ 현상에 대한 불안감이 야당에 대한 지지로 이어졌다고 보는 게 타당할 듯싶다. 이는 결국, 김대중·노무현 두 자유주의 정권에서 꾸준하게 추구해온 남북 화해·협력 정책과 그 결과인 평화가 대결과 전쟁보다는 훨씬 낫다는 분명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일반 시민에게만이 아니라, 대기업 등의 자본 그리고 대기업의 구성원들에게도, ‘사발’ 전체를 깰지도 모를 대결과 전쟁은 매우 부담스럽게 다가왔다는 것이다.

주목하는 다른 하나는 20~30대 젊은층이 주도했을 것으로 보이는 투표율의 증가다. 아직 젊은 층의 투표 참여 증가를 뒷받침하는 통계가 나오지는 않았으나, 20~30대가 접전 지역의 투표율 증가를 이끌었으며, 이들의 투표가 야당에 대한 지지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강한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높은 청년 실업률 등이 큰 배경을 이룬다면, 좀 더 세부적으로는 이 정권이 남북 대결을 부추기면서 계획해온 군대 복무 연장, 이른바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인이나 연예인 퇴출 사건 등 이들의 자유주의적인 문화적인 감성과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현 정권의 ‘구리고 쩌는’ 반문화적 행태들에 대한 반감을 꼽을 수 있을 듯하다.

▲ '폐족'으로 몰렸던 '친노'가 화려하게 부활했다. 왼쪽부터 이번 6.2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안희정 충남지사 후보, 이광재 강원지사 후보, 김두관 경남지사 후보. ⓒ 유성호 오마이뉴스

6·2 지방선거 결과와 ‘노풍’의 관계도 관심거리다. 특히 야권 내에서 향후 정국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경쟁이 본격화할 때 이 문제는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게 분명해 보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들 중 이광재·안희정은 강원과 충청에서 광역자치단체장이 됐고, 유시민은 진보신당 공동대표 심상정의 사퇴 지지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 떨어졌다. 노 정권 당시 국무총리였던 한명숙은 간발의 차이로 서울시장이 되지 못했다.

분명한 것은, ‘노풍’ 역시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거대한 반감의 주요한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 하는 게 정치적으로 성숙한 태도라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 출마한 노무현 정권의 측근 그 누구도 ‘자신들이 정치를 잘 하지 못해 결과도 안 좋아서 정권을 빼앗겼으며, 그 결과 MB 정권이란 괴물이 등장했다. 원통한 심정으로 이 괴물을 반드시 바로 잡겠다’는 식의 사과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 비춰보면, ‘노풍’에 대한 지나친 의미 부여는 자칫 역풍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자, 이제 최대의 관심거리가 남아 있다. 6·2 지방선거 결과 앞에서 이 정권은 과연 국정운영의 기조를 바꿀 것인가? 난 아니라고 본다. 국정기조를 바꾸면 이 정권은 급속히 와해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 정권이 버텨온 역사를 보면, 언론을 장악하고 검찰을 통제하고 경찰을 수족처럼 부리면서 행정부 안의 이견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은 채 시민들의 입과 말과 귀를 틀어막아온 과정이었다. 국정운영 기조를 바꿀 만큼의 역량이나 여유가 들어설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를 차지한 것은 이를 위한 좋은 구실에 해당할 것이다. ‘서울과 경기도에 이기면 이번 선거에서 이긴 것이다’는 게 한나라당이 공공연히 떠벌여온 얘기인 터다. ‘고민하는 척하다 쌩 까고 그대로 밀어붙이기’, 이게 지금으로선 예상할 수 있는 전부다.

2008년 5, 6, 7월 촛불은 상식 세력에게 소중한 시간을 벌어줬고, 2008년 12월 언론노동자의 총파업 역시 마찬가지다. 2010년 6·2 지방선거는 여기에 교두보를 마련해 줬다. 소중히 가꿔가야 할 막중한 책임이 야당의 맏형인 민주당에 있다.

▲ 6.2선거연합을 선언한 야 5당이 12개 분야 공동정책 1차 합의 사항을 발표했다. 3월 8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2010연대 김원열 운영위원, 창조한국당 유원일 정책위의장, 민주당 변재일 정책위수석부의장, 민주노동당 이정희 정책위의장, 국민참여당 노항래 정책위원장, 민주통합시민행동 허상수 운영위원장 등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연합뉴스

부족하나마, 6·2 지방선거에서는 야당들의 선거연합이 이뤄졌다. 선거연합은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이 정권이 바뀔 때까지 제2, 3의 연합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성질의 문제에 해당한다. 그래서 내용이 중요하다. 야당들 사이의 공통의 내용 기반을 좀 더 충실히 마련해 가야 한다.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당선자가 내놓은 ‘고등학교 무상교육’은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상식 있는 야당들 사이에서 일상적인 정책 테이블을 가동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민주당의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자신들이 잘해서 선전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알맹이 없는 패권주의는 스스로 위기를 부를 위험성이 높다. 민주당 내부 당권을 둘러싼 경쟁 과정에서 6·2 지방선거의 전리품 분배를 둘러싼 다툼(전리품 분배 그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디에서든 있을 수밖에 없다)이 있을 것이다. 그 다툼 과정에서 선거연합의 일상화, 이를 위한 정책 논의 테이블의 일상화를 강조하는 흐름이 맨 앞자리를 차지하는 모습이 있기를 바란다. 어떻게 마련한 교두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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