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에서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나라당 후보가 아닌 김두관 무소속 후보가 경남도지사 여론조사에서 줄곧 선두를 달리고 있어요. 여러분, 이 기적을 꼭 완성시켜주실 거죠?”

31일 저녁 9시 김해시 중앙사거리 인근. 하얀 도포 차림의 청학동 훈장 김봉곤(43)씨가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습니다. 김두관 후보의 유세 차량 근처로 수십여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인도가 비좁아 김 후보 챠량 근처에 오지 못한 수백여명의 시민들은 사거리 건너편 먼 발치에서 유세차량을 바라보았습니다.

여기저기서 “김두관, 김두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선거운동원의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지나가던 시민이 반가운 마음에 제 스스로 지르는 소리였습니다. ‘여기가 한나라당 텃발인 경남이 맞나’ 싶었습니다. 정말 경남에서 기적은 일어날까요.

‘기적’이란 말은 김두관 후보 진영이 쓰고 있는 단어입니다. 승리를 자신하고 있으면서도 한 켠에선 이런 분위기를 믿지 못하는 마음이 반영된 것이겠죠. 경남에서 비한나라당 후보가 도지사에 당선된다면 선거의 새 역사를 쓰는 것이니까요.

▲ 김두관 후보 ⓒ김두관 후보 제공
저는 김두관 후보가 일으키고 있는 ‘기적의 현장’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현장에서는 ‘기적’이란 말이 선거용 구호만은 아니라고 느껴집니다. 경남도민들의 마음에 변화의 흐름이 읽힙니다.

김 후보의 선거 유세를 바라보는 경남 도민들은 이런 이야기를 제게 해주었습니다.

“경남은 지금 과도기입니다. 솔직히 ‘할매’들이 한나라당에 투표 안하면 큰일난다고 생각해왔던 건 사실이지요. 하지만 이제는 인물만 좋다면 굳이 한나라당이 아니어도 괜찮다고들 합니다.” (평생 김해시에서 살았다는 40대 남성)

“노무현 전 대통령 때문에 경상도 사람들의 마음이 많이 변한 것 같아요. 옛날엔 한나라당 아닌 후보를 지지하면 욕을 먹었는데 지금은 ‘그러려니’하면서 이해를 해주더라고요.” (양산시에서 3년간 살고 있는 30대 여성)

김 후보 선거 유세장에서 느낀 또 하나의 특징은 수 많은 자원봉사자들입니다. 전국 각지에서 김 후보를 당선시키려고 모여든 사람들이 선거운동을 자처하고 있더군요. 김 후보가 무소속 후보이다보니 특정 당의 지원을 받지는 못했지만 순수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그의 주변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율동을 하는 선거운동원들에게서 어딘가 아마추어적인 느낌이 나는 이유는 그래서였습니다.

▲ 김두관 후보 ⓒ김두관 후보 제공
경남에서 김두관 바람이 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현장에서 느끼기에는 ‘김두관의 뚝심’이 유권자들에게 상당한 인상을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 후보는 2002년 경남도지사 선거에 나왔다 떨어지고, 2006년 또 경남도지사 선거에 나왔지만 떨어졌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렇게 ‘떨어져도 또 나오고’, ‘떨어져도 또 나오는’ 김두관 후보를 이번만은 밀어주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한나라당 공천만 받으면 쉽게 당선될 수 있는 경남에서 비 한나라당 후보로 계속 나오는 김 후보의 이런 모습은 사람들에게 ‘바보 노무현’을 생각나게 하는 것도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김 후보를 두고 ‘리틀 노무현’이라고 부르는 이유인 듯 합니다.

하지만 역시 경남은 경남입니다. ‘김두관의 기적’은 팔부능선을 다 넘은 상태에서 마지막 고비를 맞고 있습니다. 10퍼센트 이상 지지율이 뒤지던 한나라당 이달곤 후보가 선거 막판 무섭게 치고 올라오며 김 후보와 도 지사 자리를 놓고 접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오차 범위 내에서 엎치락 뒤치락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경남 도민들은 결국 어떤 선택을 할까요. 김 후보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조직력 vs 민심’

31일 양산의 한 시장에서 저를 만난 김 후보는 “당선될 것 같냐”는 제 질문에 “민심의 바람을 탔으니 꼭 당선된 것이다”고 대답했습니다. 조직적인 표에서는 이 후보에 뒤지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보다 더 광범위한 민심을 얻고 있으니 자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투표 일까지 하루가 남았습니다.

경남도민들은 조심스럽게 역사의 한 페이지를 넘기고 있습니다.

현재 한겨레 방송부문 뉴스팀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다.
영상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함께 들고 현장을 누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앞선 멀티형 기자가 돼려고 노력중이다. 우리 사회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사명을 놓는 그 순간, 기자가 아닌 단순 직장인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 그저 그런 기자가 되느니 문제적 기자가 되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하고 살기도 한다. 한겨레와 한겨레 독자들을 무지지 사랑한다. 개인 블로그 http://blog.hani.co.kr/catalu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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