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들어서도 <황금빛 내 인생>은 매주 시청률 신기록을 세워가며 고공행진 중이다. 35회 토요일 자체 최고 시청률 37.6%를 갱신하더니, 일요일 역시 42.8%. 과연 이 주말드라마 상승세는 어디까지 이어질까. 연말 시상식에서 남자 주인공 최도경 역의 박시후가 '고소원'하듯 50%가 가능할까가 관건이 될 정도로 <황금빛 내 인생>은 파죽지세다.

그런데 <황금빛 내 인생>이 흥미로운 건 그저 시청률이 '따논 당상'인 KBS2 주말드라마 중에서 '제법 더' 재미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KBS2 주말드라마라고 하면 '전통적 가족관'에 충실한 드라마들이 연이어 바통 터치를 하는 자리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소현경 작가가 선보이는 <황금빛 내 인생>은 우리 사회의 '가족주의'이라는 패러다임에 도발적 문제제기를 하면서도, 시청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주목할 만하다.

서지안, 좋아는 하지만 사귀지는 않겠다!

그런 소현경 작가의 도발적 문제제기의 중심에는 여주인공 서지안(신혜선 분)이 있다. 지난 연말 특집극으로 대체했던 한 주 결방 동안 시청자들을 애달프게 했던 건, 바로 낮밤 알바를 한 돈으로 미역국 상을 차리고 목걸이를 준비한 최도경의 생일 이벤트의 결과이다. 남자 주인공이 저 정도로 물심양면 헌신적 모습을 보이면 십중팔구 여주인공은 감동을 하고, 두 사람의 사랑 확인은 포옹과 키스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게 여느 드라마의 관행이다. 그런데 어쩐지 감동적인 스킨십 대신 주먹에 꼭 쥔 목걸이를 보이자 '그래 내가 너를 좋아한다'며 끝을 맺은 34회, 이어진 새해 첫 방송 35회에서 서지안은 예상외의 반응을 보인다.

KBS2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

최도경을 좋아하지만 사귀지는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어머니의 거짓으로 인해 재벌그룹 해성가의 딸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서지안. 그녀는 짧았던 그 시간 동안, 그리고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 자살 기도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로 혹독한 경험을 치렀다. 그 경험은 대기업 직원이 되어 남보란 듯이 살고 싶었던 서지안의 인생 목표에 참혹한 반추의 시간이 되었다. 처음엔 돈을 보고 친부모를 외면했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던, 자신에 대한 회한의 시간. 이후 고등학교 동창 혁을 따라 셰어하우스에 들어와 고물을 모으고 선생 대신 목수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혁의 목공방에서 일하며 자신이 이상으로 여겼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이어진다.

그런 고민의 결과는 여전히 최도경을 좋아하지만, 삶의 처지가 다른 최도경과의 연인 관계에 대한 거부로 나타난다. 그리고 36회 엔딩에서 보여지듯, 감히 자신의 아들을 만난다며 기세등등하게 등장하여 다그치는 최도경의 모친이자 해성가의 안주인 노명희(나영희 분) 앞에서 당당하게 '제가 싫어서요'라고 밝히는 태도로 귀결된다.

물론 50부작의 긴 여정에서 앞으로 서지안과 최도경의 사랑이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저 재벌가의 아들과 서민 출신의 여성의 사랑과는 궤를 달리한다. 이미 서지안을 통해 각성한 최도경이 배경을 버리고 홀로 밑바닥에서부터 자신을 찾는 도전에 도전하듯, 그들의 사랑에는 배경과 계급, 그리고 스펙으로 젊은이들의 꿈을 예단하는 우리 사회 고정관념에 대한 작가의 도전이 있다. 그 도전은 사랑하지만 자신과 다른 삶을 살아갈 최도경을 거부하는, 이제 더는 세상이 원하는 그럴 듯한 성공의 삶에서 스스로를 기꺼이 방출시킨 서지안의 선택으로 드러난다.

이수아, 결혼을 했지만 아이는 거부한다

KBS2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

젊은이들다운 도전과 사랑으로 열렬한 지지를 얻고 있는 주인공 커플과 달리, 드라마의 처음부터 내내 쉬이 지지를 얻지 못하는 커플도 있다. 바로 서태수의 큰아들 서지태(이태성 분)와 그의 아내 이수아(박주희 분)가 그 주인공들이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의 빚에 아직 독립하지 못한 동생들의 학자금까지 떠맡았던 맏아들 지태는 결혼을 거부한다. 심지어 오래도록 연인 관계였던 수아와 헤어지려고까지 결심할 정도다.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 서태수의 설득으로 결혼을 한 태수-수아 커플. 결혼계약서 1항에 아이는 낳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만 아이가 생겼다. 함께 병원에 가 초음파로 아이를 확인하고,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들은 지태는 마음이 달라진다. 기왕에 생긴 아이니 낳자고 한다. 그런데 그런 지태의 변화에 아내 수아는 반발한다. 심지어 그런 충동적인 결정을 하는 지태와 함께 살 수 없다며 이혼을 선언하고 집을 나가 버린다.

전통적 가족 드라마에서 결혼과 아이는 지상과제였다. 그러나 <황금빛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사랑을 하고 가까스로 결혼까지 한 이 커플에게 생긴 아이는 이제 커플 지옥문을 연다. 그리고 여기에는 결혼도 아이도 미루거나 포기하는, 이 시대 젊은 세대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KBS2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

최근 우리 사회에서 '낙태죄' 폐지가 담론이 되고 있다. 이 '낙태죄' 폐지에 앞장서는 사람들은 '출산할 권리보다는 낙태할 권리'를 주장한다. 바로 이런 일련의 주장, 그 흐름에 수아의 생각이 있다. 수아는 말한다. 캐나다에 이민을 갔다지만 어렵게 가게를 하는 오빠네에 겨우 빌붙어 사는 부모님, 그리고 출판사 무기계약직으로 앞날을 보장받을 수 없는 자신의 처지, 비록 정직원이라지만 맏아들이라는 부담이 큰 남편. 수아가 살아온 삶은 그녀에게 그저 이 세상에서 자기 한 몸 책임지며 사는 것만도 버거운 것이라 가르친다.

이런 수아의 사고는 '저출산 고령사회’라는 디폴트 안에서 선택한 이 시대 젊은이들의 선택적 행복론과 맞닿아 있다. 아버지의 설득으로 결혼하고, 기왕에 생긴 아이니 낳으면 어찌 되지 않겠느냐라든가, 차라리 아이를 키우기 위해 생활수준을 낮춰 지방으로 내려가자는 지태의 방식은 아이를 부부의 중심 혹은 가족의 중심으로 사고하는 전통적인 방식이다. 하지만 그런 지태의 생각에 수아는 반발한다.

수아의 사고에는 비록 자신을 책임지려 살아가려 하지만 늘 생활고에 시달렸던 자신의 지난 시간과, 자기 자식에게 그런 삶을 또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N포 세대'의 현실적 고민이 담겨 있다. 생명존중 사상과 어쩌면 태어날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 대한 실존적 고민이 대치되는 지점이다. 소현경 작가는 이 드라마에서 가장 현실적인 지태 부부가 결혼과 출산 과정에서 겪는 문제를 통해 이 시대의 화두를 담아내고 있다. 그저 세간의 오지랖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시대적 고민이다.

그렇게 <황금빛 내 인생>은 서태수의 가족을 중심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고민을 현실적으로 담아내고자 애쓴다. 또한 젊은 세대의 새로운 담론을 여주인공들의 생각과 행동을 통해 전 세대에게 화두로 제시한다. 시청률을 넘어선 이 드라마의 가치는 여기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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