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를 비롯한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공원을 ‘자연 사회주의’라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공공 공원에 보조금을 주자는 정책을 만든 정부 관료와 정치인에게 ‘좌파’ 딱지를 안 붙인 걸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기억하실지 모르겠다. 미국의 명문 야구구단 뉴욕양키즈가 새 양키 스타디움을 열었을 때 수다한 유력 정치인이 포함된 광적인 양키즈 팬들이 보인 열렬한 환호를 말이다. 하지만, 그 화려하고 떠들썩한 잔치의 이면에는 믿기 힘든 미국의 기만적인 친기업 정책이 도사리고 있었다. 2005년 뉴욕시는 공공 공원인 맥콤댐 파크 일부와 멀랠리 공원을 시민들에게 제대로 공지도 하지 않고 고작 8일 만에 압류했다. 이 땅은 호화 개인관람석 60개가 딸린 새 양키스타디움을 짓겠다는 뉴욕양키즈의 구단주 조지 스타인브레너에게 뉴욕시가 주는 선물이었다. 구장 건립비로 공적자금 수억 달러가 투입됐다. 모두 국민이 낸 세금으로 충당될 비용이었다. 양키즈라는 기업을 위해 정부가 친절하게도 ‘토지수용권’과 ‘보조금 정책’까지 동원해 공공 공원을 없애고 양키즈 구단에게 노른자위 땅을 거저 갖다 바친 이런 현상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프리런치(데이비드 케이 존스턴, 2009)
불행하게도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언젠가 한 번 소개한 적이 있지만, 국내법에도 토지수용권을 보장하는 조항이 있다. 대규모 택지 개발과 같은 공공사업과 마찬가지로 골프장을 지을 때도 전체 부지의 80%만 확보하면 나머지 20%는 ‘강제수용’할 수 있다. 지난 2003년에 개정된 국토계획법 2조 6항은 도로, 철도, 항만, 공원, 수도·전기·방화설비, 화장장, 하수도 등을 ‘기반시설’로 묶어, 부지 확보 등 일정한 요건만 갖추면 국가나 지자체가 ‘도시계획시설’로 개발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문제는 이 명백한 공공시설 목록에 체육시설, 즉 골프장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관련법을 잘 뒤져 보면, 공익사업법이라는 것도 있다. 이 법의 4조 8항은 ‘다른 법률에 의하여 토지 등을 수용 또는 사용할 수 있는 사업’을 ‘공익사업’으로 정의한다. 그러니 국토계획법에 의해 토지 등을 수용 또는 사용할 수 있는 골프장 사업은 법적으로 아무 하자가 없는 ‘공익사업’인 것이다. 골프장 회원권은 개인이 수억 원, 법인의 경우 10억 원을 훌쩍 넘는다. 대체 무엇을 위한 강제수용이고, 누구를 위한 공익사업이란 말인가?

이 책에 기술된, 기업중심주의가 빚어낸 미국 사회의 퇴락상은 가히 충격적이다. 미국의 철도민영화는 효율적인 관리라는 미명 아래 안전관리 비용을 절감하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미국의 주요 교통수단 가운데 가장 심각한 사고율이란 오명을 써야 했지만,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징벌적 손해배상은커녕 솜방망이나 다름없는 과태료 처분을 받는 데 그쳤다. 그리고 그 비용마저 국가로부터 전액 보전 받았다. 기업 보조금을 추적하는 단체 굿잡퍼스트(Good Jobs First)가 악명 높은 유통 공룡 월마트의 증권기록물과 뉴스기사를 파헤쳐, 월마트 유통센터 91곳 중 84곳이 10억 달러가 넘는 보조금을 받은 사실을 밝혀냈다. 하지만, 월마트가 받은 보조금은 밝혀진 것보다 무려 14배가 넘을 것으로 추정됐다. 마트가 장사를 하려면 좋은 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집집마다 설치된 도난경보기는 엄청난 오작동 비율로 유명한데, 막상 경보기가 울려도 보안업체 직원이 나타나는 게 아니라 경찰이 출동한다. 그것도 아주 뒤늦게 말이다. 업체들은 이 엉터리 서비스에 값 비싼 요금을 물리면서 정부 보조금마저 덤으로 챙기지만, 안전을 담보로 한 이 사업은 경찰은 물론 시민들의 안전까지 더 취약하게 만들었다.

미국인들은 부동산 거래를 할 때 서류위조나 사기, 숨은 하자 등의 피해에 대비해 권원보험(title insurance)에 가입할 것을 사실상 강요받는데, 과점을 이루는 업계의 역경쟁(reverse competition) 관행이 보험료를 최고가로 끌어올려도 피보험자가 받는 혜택은 거의 없다. 더욱이 보험료의 80%는 보험사에 고객을 끌어다주는 이들에게 리베이트 명목으로 건네진다. 대학생들에게 학자금 대출을 해주는 업체에도 막대한 국가의 보조금이 지급된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등록금과 고비용의 학자금 대출로 젊은이들은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갈수록 잃어가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상당수가 신용불량자 신세가 되어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할 첫 단계에서부터 좌절을 경험한다. 전력산업 민영화가 캘리포니아에 가져온 재앙은 익히 알려져 있다. 1년 만에 전기 요금이 20배나 오르고 반복적인 대규모 정전사태와 전압 저하 현상이 반복됐지만,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가격상한제 도입은 정치권의 반대로 무산됐다. 전력 경매 시장을 지배하는 원리 역시 경쟁(competition)이 아닌 역경쟁이었다.

이런 다양한 사례들로부터 우리는 가난한 국민의 세금을 가져다 가진 자의 배를 불리는 미국식 경제제도의 끔찍한 폐해를 목도하게 된다. 예컨대, 최상의 의료기술과 환경을 자랑하는 미국의 의료보장제도는 이미 완전한 실패로 결론 났다. 오는 2015년이 되면 미국 경제의 5분의 1이 의료보장에 지출될 것이란 예측을 미국 정부 스스로 하고 있지만, 평균 미만의 소득을 가진 미국인의 57%가 의료보험 없이 살아가고 있다. 미국의 유아사망률은 출생아 10만 명당 622명인 쿠바보다 못한 643명에 이른다. 영화 <식코>에서 마이클 무어가 미국 땅에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미국 국민들을 배에 태우고 쿠바 국립병원에 가서 무상 치료를 받는 장면은 그래서 더욱 상징적이다. 이런 불가해한 일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정치 자금을 매개로 똘똘 뭉친 기업과 정치인의 굳건한 결탁이다. 오죽했으면 이런 일도 있다.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은 세탁물을 제 손으로 빨 수가 없다. 이라크인들에게 돈을 주고 세탁을 맡기는 것도 금지돼 있다. 군수산업 민영화로 인해 세탁기를 공급하는 미국의 업체가 군대 내 세탁에 관한 모든 권리를 독점하기 때문이다. 제 손으로 빨래를 하고 싶어도 비싼 돈을 주고 업체 세탁기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데이비드 케이 존스턴
저자들은 묻는다. ‘시장의 지혜’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기나 하는 것일까? 기업을 살찌우는 데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로비 자금은 결국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8년에 이르는 부시 집권기에 미국 사회는 소득집중에 따른 심각한 양극화를 경험했다. 탈규제를 부르짖는 장본인은 바로 미국 최고의 부자들과 그들이 지배하는 기업들이다. 현재 미국 경제를 움직이는 수많은 규정과 규제를 만든 장본인 또한 바로 그들이다. 저자들은 “사회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의 행위는 노상강도보다도 더 악하다. 그들이 벌이는 행동은 노상강도들이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회 규칙의 합법성을 훼손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남들에게 비용 부담을 전가하면서 스스로는 막대한 경제적 혜택을 얻는 이른바 공짜점심(free lunch)을 즐기고 있다.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어쩌고 해도 그냥 무시해버리면 그만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사면에서 보듯, 국가가 나서서 최고 부자 기업인의 도덕적 해이에 면죄부를 쥐어주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경제오염(economic pollution)도 못지않게 심각하다. 그런데,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냐고? 어림없는 소리다. 장밋빛 경제성장 지표들이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때마다 우리는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그런 성공의 혜택은 더 가진 자와 그보다 더 가진 자의 배를 불려줄 뿐임을.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하고 있다.

자명한 사실 한 가지는 공짜점심은 항상 정직한 점심보다 비용이 더 든다는 점!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미국 사회에 일정한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엄청난 저항을 수반한 건강보험 개혁 정책이 바로 그것이다. 정책으로서의 탈규제와 민영화는 전 세계 각국의 사례에서 보듯 현실적인 재검토와 수정을 요구받고 있다. 불완전한 시장을 적절하게 통제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길은 정부의 효과적인 규제뿐이라는 데 많은 국가가 공감하고 있다. 그렇다면 부자 감세를 밀어붙이면서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는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이런 뉴스를 우리는 볼 수가 없다. 주식 투자의 대가로 추앙받는 워런 버핏은 사실 세금납부를 미루는 데 있어서는 대가 중의 대가이다. 그런 그는 늘 존경할 만한 인물로만 조명되어 온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어느 도서관 사서는 저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TV에서는 이 억만장자의 모습이 계속 보입니다. 그는 수십 억 달러를 자선사업에 기부해왔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존경해야 할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워런 버핏이 어떤 식으로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지에 대한 보도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뉴욕타임스>의 현직 기자가 쓴 이 책은 공짜점심을 그 누구보다 흡족하게 즐기고 있는 것이 실은 언론 자신이라는 씁쓸한 현실을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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