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주중 미니시리즈 최고의 히트작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최고 시청률 38.8%를 달성한 <태양의 후예>였다. 그리고 2017년 한 해의 이른바 지상파 미니시리즈의 수치상 성적은 초라하다. 그나마 '면피'를 한 작품이 자신의 죄를 벗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검사의 이야기를 다룬 <피고인>의 28.3% 정도이다. 그 뒤를 이어 KBS2 <김과장>의 18.4%가 있다. 하지만, 이 두 드라마를 제외하고는 지상파 미니시리즈의 대부분이 10% 내외 혹은 10%에 못 미치는 시청률 성적표를 받았다. 심지어 지상파라는 말이 무색하게, <김과장>의 후속작으로 등장한 <맨홀: 이상한 나라의 필>은 1%대의 기록을 세웠고, 그 뒤를 MBC의 <로봇이 아니야>와 <20세기 소년소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역추격하는 이변을 기록했다(닐슨 코리아 기준).

지상파 미니시리즈가 이렇게 초라한 성적표를 받게 된 데에는 종편과 케이블 등으로 다각화된 채널 경쟁이 그 첫 번째 원인으로 등장한다. <아르곤>, <부암동 복수자들>, <이번 생은 처음이라>, <슬기로운 감빵생활> 등은 다른 플랫폼으로 수치상으로 비교할 바가 못 되지만, 화제성 면에서는 지상파 미니시리즈를 제쳤다. 거기에 <나는 자연인이다>, <냉장고를 부탁해>, <뭉쳐야 뜬다> 등의 종편 예능프로그램 역시 밤 10시는 미니시리즈라는 '전통의 아성'을 깨뜨리는 데 일조했다.

JTBC <힘쎈여자 도봉순>, JTBC <품위있는 그녀>, JTBC <청춘시대2>

그렇게 지상파 미니시리즈가 위축되고 있는 사이, JTBC의 금토 드라마는 <힘쎈여자 도봉순>에 이어 <품위있는 그녀>, <청춘시대2>를 성공시키며 금토 밤 11시대 드라마를 안착시켰고, tvN 역시 지상파보다 빠른 시간대인 9시 30분, 심지어 9시 10분에 주중 드라마를 편성함으로써 공격적인 태세를 구축했다. 거기에 <비밀의 숲> 등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토일 드라마를 가족 드라마로 개편하며 지상파 드라마에 대한 경쟁의 각을 가다듬었다. 그 가운데 OCN은 <구해줘>, <보이스>, <터널> 등의 장르드라마로 자신만의 입지를 다졌다.

정의의 시대, 정의의 주역

그렇다면 이제 더 이상 지상파라는 '고지'가 존재하는 않는, 춘추전국 시대 2017년 드라마의 내용적 특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아직 새로운 시대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던 2016년의 드라마들은 '기억'과 '국가의 존재'를 논했다. 가장 인기 있는 사랑 이야기였던 <태양의 후예>조차 재난현장 속에서 피어난 인간애와 국가의 가치를 읊조렸다. 국가의 부재로 상처 입은 사람들에 대한 인본주의적 도리와 원칙이 등장했으며, 잊지 말아야 기억과 상흔을 드러내고자 저마다 애썼다. 그리고 촛불이 광장을 메우고 시민들의 힘으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자, 드라마도 그런 시대에 부응하고자 했다. 2017년의 드라마 중 다수가 '정의'를 이루어내기 위한 사람들의 고군분투를 다루었고, 그 주인공으로 '정의'와 관련된 법조계나 언론계의 전문직들이 대두되었다.

SBS 드라마 <피고인> 포스터

2017년의 법조계 인물들을 내세운 작품의 첫 테이프를 끊은 건, 바로 죄인이 된 채 새해를 연 SBS의 <피고인>이다. 아내와 딸을 죽였다는 혐의로 감옥에 간 검사 박정우(지성 분), 심지어 그는 그날의 기억조차 불분명하다. 그런 그가 자신의 상실된 기억을 추적하며 감옥에까지 이어진 악의 손길을 떨쳐내고, 재벌가의 차민호(엄기준 분)와 그를 둘러싼 정관계 커넥션에 대항하여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한국판 프리즌 브레이크’라 불리며 인기를 모았다. 그 뒤를 이어, <귓속말>에선 이보영이 형사에서 변호사 사무실 비서로 신출귀몰, 판사에서 변호사가 된 이동준 역의 이상윤과 함께, 법조계의 권력인 태백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자신을 던진다. 그리고 <파수꾼>에서 아이를 잃은 엄마 조수지 형사(이시영 분)는 자신의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검사가 된 장도한(김영광 분)과 손잡는다.

<피고인>의 박정우, <귓속말>의 이동준 그리고 <파수꾼>의 장도한 검사(김영광 분)나 조수지 형사(이시영 분)는 모두 법조계로부터 뻗어나간 구시대의 적폐를 들춰내기 위해 자신들을 던진다.

로맨스 드라마를 내걸었던 <수상한 파트너> 역시 결국 아버지의 죄라는 구원과, 거기에 얽힌 검찰청장으로 대변되는 법조계의 커넥션 파헤치기로 귀결되었다. 신선한 여성 캐릭터로 화제를 모았던 <마녀의 법정> 역시 실종된 어머니를 둔 여성 검사 마이듬(정려원 분)의 종횡무진 활약은 결국 조갑수(전광렬 분)로 상징되는 구시대 권력의 척결로 모아진다. 그 마지막 바통을 이어받은 건, SBS의 <이판사판>으로 이번에는 오빠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법조인이 된 로스쿨 출신의 판사 이정주(박은빈 분)가 나선다.

이렇게 지상파 드라마의 법조계 인물들은 검사 혹은 판사 등 한 자리를 차지했지만, 그 '특권'을 마다하고 직분의 본래적 의미에서의 활동을 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개인적 해원을 풀어가는 식이다. 즉, 그들의 개인적 원한의 근원은 대부분 유신시대로 상징되는 고문 기술자, 시국사건 조작 등을 통해 성공의 발판을 마련한 적폐의 인물과, 이제는 권력의 중심이 된 그를 중심으로 한 검경, 정관계의 카르텔이다. 이렇게 드라마는 우리 사회 권력의 실체를 정의내리고, 그 숱한 사람들을 짓밟고 탄생한 구시대 권력의 아성을 '희생자'의 가족들을 통해 통렬하게 고발하고 무너뜨리고자 한다.

tvN 드라마 <비밀의 숲>

피해자에 의한 ‘적폐 청산’이란 공식은 바로 우리 사회에 지배적인 법조계 엘리트에 대한 선입견을 드라마가 내재화시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럼에도 결국은 '법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정의 구현의 적임자가 바로 '법조계'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들 주인공들이 2017년을 채워간다. 하지만 이런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의 구원의 해결은 '즉자적'인 태세이다. 이런 방식의 서사, 적폐 청산을 넘어 새로운 시대의 '인간형'에 대한 화두를 다룬 드라마가 있다. 바로, 2017년 정의의 시대를 대표할 tvN <비밀의 숲>이 그 주인공이다.

지상파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던 ‘피해자’의 직계 비속 역시 <비밀의 숲>에서 나온다. 바로 장관이었던 아버지가 하루아침에 몰락한 영은수(신혜선 분)가 그 주인공이다. 하지만, <비밀의 숲>은 아버지의 죄를 밝히기 위해 검사가 되어 물불 안 가리고 뛰어다니던 이 인물을 13회에 가차 없이 희생시켜 버린다. 그리고 그런 '원혼'의 피해자 대신 드라마를 채워가는 건, '직업적 사명감'을 가진 인물들이다.

뇌의 이상으로 수술을 해서 오로지 ‘이성’을 통해서만 세상을 보는 주인공 황시목(조승우 분), '경찰 존심이 있지, 난 타협 안 해요'하는 무데뽀 형사 한여진(배두나 분)에 처세술의 달인으로 재벌가의 사위까지 되었지만 끝내 자신의 한 몸을 던져 법조계의 정의를 실현하려고 했던 이창준(유재명 분)까지 그들의 실천의 동인이 되었던 건 오로지 직업적 사명감, 그 원칙 하나였다. 내 주변의 누가 당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사회가 그리고 나의 일이 이러해야 한다는 원칙을 통해 일신의 안락과 나눠먹기, 우리가 남이가로 대변되는 구시대 이데올로기의 청산을 설파하며 촛불의 시대 '정의'의 화두를 설득해냈다.

법조인만 있냐? 기자도 있고 보험 조사원도 있다

SBS 월화드라마 <조작>

하지만 검사, 판사 등 법조계 인사들만 활약한 건 아니다. 어벤져스 팀을 이뤄, 구악의 카르텔에 도전한 기자들도 있다. SBS 드라마 <조작>의 대한일보 특종 보도팀 스플래시 팀의 이석민(유준상 분)과 한국판 타블로이드지 애국신문의 기레기 한무영(남궁민 분)이 그 주인공이다. 그들은 권소라 검사와 함께, 구태원(문성근 분)으로 상징되는 구태 언론과 그들에 의해 조작된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뭉친다.

지상파의 이 언론팀에 대응하는 케이블 드라마는 고 김주혁의 마지막 작품으로 기억될 tvN의 <아르곤>이다. 손석희가 연상되는 이 시대의 목소리 김백진(김주혁 분)과 아르곤 팀이 '미드타운 붕괴 사고'라는 거대한 몸집을 드러내기까지의 고군분투를 자기고백적으로 그려내며, 이 시대 언론의 사명을 말한다. 8부작 아르곤 팀의 활약은 김백진의 추천으로 정규직이 된 이연화와 김백진, 그리고 아르곤 팀의 다음 탐사보도를 기대했지만 안타깝게도 더 이상 김백진 앵커의 활약을 볼 기회를 잃었다.

tvN 월화 드라마 <아르곤>

독특하게도 <매드독>에서는 보험회사 조사팀장이었던 최강우(유지태 분)와, 형이 대형비행기 참사의 범인이 된 김민준(우도환 분)이 뭉친다. 그들의 상대는 돈을 위해 사람들이 탄 비행기를 참사로 이끈 보험회사와 비행사,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조력한 권력자들이다.

이렇게 2017년 드라마는 검사와 판사, 변호사 등 법조인과 기자들, 형사 그리고 보험조사원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재난 사고로 상징되는 세월호 참사와 구시대의 권력을 상징하는 정관계 카르텔에 대항해 싸우며 한 해를 채워갔다. 2016년 잊지 말자며, 국가란 무엇이냐며 묻던 그 회의적 질문은 보다 열정적이고 저돌적인 전투로 ‘승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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