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8일 이른 아침,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망월동으로 가는 길이 현실만큼 암담하고 힘든 과정이 됐다. 기념식으로 가는 길, 경찰들이 나와 비표를 갖지 않은 차량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묘역이 가까워질 수록 경찰의 숫자는 더욱 많아졌다. 묘역을 따라 전투경찰들의 버스들이 줄을 섰다. 끝이 보이지 않은 차량의 행렬은 행사 참여자의 숫자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묘지의 주인은 30년 전 국가폭력에 저항해 산화한 이들도 아니었고, 이들을 추모하는 이들도 아니었다.
두쪽난 5·18 30주년 기념식
5·18광주민중항쟁 30주년 기념식이 사상 처음으로 두 쪽으로 나뉜 채 치러졌다.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정부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식행사에서 배제한 것이 시초였다. 거기다 공무원노조의 참배까지 막았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대통령의 기념식 불참 소식이 기름을 부었다.
지역의 오월 단체들은 공식행사 불참을 선언했다. 18일 치러진 기념식은 그들의 기념식이 됐다. 음악도 구미에 맞게 선곡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식전행사로 밀려났다. 해마다 오월단체들이 해왔던 경과보고 순서도 빠졌다. 오월단체의 불참으로 기념식장의 절반 이상이 텅 비었다.
이날 참석한 정운찬 총리는 텅빈 기념식장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기념사를 대독했다.
“5·18 민주화운동 정신은 오늘날 우리에게 화해와 관용에 기초한 성숙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민주주의의 출발점인 생산적 대화와 토론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법을 무시한 거리의 정치와 무책임한 포퓰리즘에 기대는 일이 적지 않다”고도 말했다.
시민들의 정서를 배반하면서 그들의 식대로 강행하다 반쪽짜리 기념식을 만들어 버린 이들이 말하는 대화와 토론이 공허했다. 억울한 일 있어도 참고, 용서하라고 하는 메시지에 다름 아니었다.
정총리는 결국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못했다. 기념식장 입장을 미룬 채 민주의문 앞에 모여 있던 오월 5월단체 회원 200여명은 정 총리의 기념사 대독에 맞춰 경찰의 저지를 뚫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행사장에 밀고 들어왔다.
"군사독재정권도 노래를 못 부르게 하진 않았다"는 분노가 행사장안에 울렸다. 정 총리는 기념식이 끝난 뒤 경찰의 보호 아래 묘역을 우회해 겨우 행사장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화려한 30주년 기념행사들의 이면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간 화려한 행사들은 더욱 많아졌다. 7억 예산을 들인 광주항쟁30주년 기념전시회가 열리고 있고, 5억짜리 관련 뮤지컬이 만들어졌다. 참여작가들의 면면은 더욱 화려해졌다. 담론과 형식 모두 세련돼 졌다.
그러나 시름이 깊어지는 곳도 있다. 매년 오월이면 옛도청에서 전시를 가져, 과거의 역사와 오늘의 역사를 중첩시켜왔던 민중미술 진영의 전시는 멀티플랙스와 대형 쇼핑몰 등이 밀집한 가장 상업적인 욕망이 실현되는 공간으로 밀려났다. 옛 도청은 문광부의 아시아문화전당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전시를 주관하는 민미협 관계자는 “전시장소 찾기가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없는 살림이라 비싼 대관료는 엄두도 못내고, 그나마 싼 곳을 찾아 대관한 것이 현재의 장소”라고 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오월 정신을 이어가고자 했던 지역 내 극단과 놀이패는 여전히 힘겹게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오월을 기념하는 예술 역시 투입되는 자본의 규모대로 위계화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결국 자본을 투입하는 곳은 아직까지 국가이거나 기업들이니, 여전히 5월항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이어갈 것인가 하는 것 역시 결국 '그들의 뜻'대로 돼가는 것은 아닌지...
30주년을 맞은 광주의 5월, 안과 밖으로 매우 위태로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