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로 구설수에 가장 많이 오른 장관은 단연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일 겁니다.

가장 먼저 국민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 건 바로 그 “찍지마. XX. 성질 뻗쳐서” 발언이지요. 2008년 10월 국정감사장에 출석한 유 장관이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려는데 사진 기자들이 달려들어 촬영을 하자 내뱉은 말입니다. 당시 많은 국민들이 ‘장관이 공식 석상에서 저런 말도 할 수 있구나.’ 문화적 충격을 받았던 그 말입니다.

그래도 이때까지만 해도 이 발언이 유 장관에게서 어쩌다 드러난 돌출 발언이라는 이해심이 남아 있었습니다. ‘기자들이 좀 무리하게 취재하다보니 화가 날 수도 있겠구나’ 했습니다. 한데, 유 장관의 막말 실수는 얼마 안가 또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지요.

유 장관은 2009년 6월 문광부 앞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사태에 항의하던 학부모에게 “학부모를 왜 이렇게 세뇌시켰지”라며 막말을 했습니다. 역시 반말이었습니다. 나이 지긋한 학부모에게 유 장관이 마치 학생 충고하듯 반말을 내뱉는 ‘건방진 인촌씨’의 모습은 역시 많은 국민들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여기서 궁금해집니다. 그는 원래 그렇게 건방진 것일까. 아니면 ‘성질 뻗칠 때’만 욱하고 튀어나오는 실수일까. 그와 실제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으니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문광부 출입하며 유 장관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기자들이 제일 잘 알겠지요. 저는 다른 사람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만 듣고 그에 대해 판단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 김윤수 전 현대미술관장 ⓒ한겨레

지난 달 김윤수 전 현대 미술관장을 만나 유인촌 장관의 평소 성품이 어떤 지 유추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4월 14일 <한겨레> 보도에서 보신 것처럼(“유인촌 장관, 반말로 지시하며 공개적으로 모욕줬다”) 김 전 관장은 저희 <한겨레>를 만나 유 장관에게 어떤 모욕을 당했는 지 털어놓았습니다. 김 전 관장의 해임이 부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온 뒤였습니다.

김 전 관장은 “유 장관이 부임하자마자 나를 쫓아내려고 문광부 예술국 관계자들을 총동원하고 퇴임을 조건으로 프로젝트를 제안하는 등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고 폭로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말이, 어쩌면 사소한 것일 수도 있는데, 누리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던 바로 아래의 내용입니다.

“각 기관장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공개적인 모욕을 많이 당했어요. 함께 참여했던 기관장들도 뒤에서 수군거릴 정도였습니다. 그는 내게 반말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문광부가 현대미술관과 관련한 사업을 논의할 때 나를 뺀 채 미술관 직원들을 따로 불러 회의하는 등 날 모욕하기도 했습니다.”

김 전 관장이 올해 일흔 넷. 유 장관이 쉬흔 아홉. 그러니까 유 장관이 정확히 열다섯 살이나 많은 문화계 원로에게 반말 ‘찍찍’ 내뱉으며 모욕을 줬다는 이 폭로에 누리꾼들은 분노했었습니다. (지난 달 이 보도는 인터넷 한겨레에서 다섯 번째로 누리꾼들이 많이 본 기사였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김 전 관장이 기사화를 꺼려하며 매우 조심스럽게 들러준 얘기였습니다. 고민이 들더군요. 이걸 기사로 써야 하는 지 말아야 하는 지. 이미 지나간 일을 갖고 언론에서 괜히 긁어부스럼 만드는 것은 아닌 지 염려스러웠습니다. 김 전 관장도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었지만 굳이 기사화를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매우 점잖은 분이었거든요.

하지만 유 장관의 이런 모습을 저는 공개했습니다. 유 장관이 장관으로서 갖춰야 할 품성에 너무나 심각한 결함이 있는 것 아닌가 판단했고 이 부분은 좀 사회적으로 논의가 필요한 것 아닌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유 장관이 이전에도 비슷한 실수를 했기 때문에 더욱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유 장관이 김 전 관장에게 내뱉은 반말과 모욕을 한 두 사람이 들은 게 아니라는 점에서 제 결심은 더 굳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사가 나간 뒤 제게 ‘대체 유 장관이 반말로 김 전 관장에게 한 말이 뭐냐’고 물어왔습니다. 오늘 취재 후기를 통해 알려드립니다. 사실은 이런 말이었다고 합니다.

▲ 김윤수 전 현대미술관장(왼쪽)과 유인촌 문화부 장관(오른쪽) ⓒ한겨레

“어이. (손가락질) 김 관장. 거. OO 뉴스랑 인터뷰 좀 하지마.”

김 전 관장이 2008년 한 인터넷 매체와 인터뷰를 했는데 유 장관이 문화기관장들이 모두 모인 회의 석상에서 그를 질책하며 한 말이라고 합니다.

김 전 관장은 당시를 떠올리며, ‘정말 이 사람 막 되먹은 사람이구나’ 생각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유 장관이 이 말을 공식 석상에서 내뱉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도 회의장을 나서며 수군거렸다고 했습니다. 열다섯살이나 많은 분에게 저렇게 반말로 모욕을 한 것은 분명 ‘김 전 관장이 분을 못이겨 스스로 관장직에서 물러나게 하려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았다고 합니다.

물론, 이건 김 전 관장의 일방적 주장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유 장관이 이 보도에 대해 명예훼손 소송을 걸지 않는 걸 보니, 김 전 관장이 꼭 근거없는 허위 사실을 유포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쯤에서 생각해 봅니다. 대체 양촌리 김회장의 참하고 예의바른 둘째 아들이 어쩌다 저런 ‘예의를 망각한 분’이 되셨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무 오만합니다. 권력이란 게 원래 속성이 그런 건가. 별의 별 생각이 듭니다.

유 장관이 원래 저렇게 막말을 일삼고, 아래 위 구분 없이 반말을 일상적으로 하는 분이라면, 이 분은 우리와 정치적으로 좀 다른 분일 뿐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많이 다른 분이란 생각이 듭니다. 한국 사회 평균적인 지성인 수준의 관점에서 봤을 때, 기자들에게, 학부모에게, 문화계 원로에게 반말을 일상적으로 하는 것은 흔한 인격이 아닙니다.

유 장관의 모습을 보면, 이러다가 우리 국회가 장관 임명 청문회 때 병역기피, 부정재산 축적 뿐 아니라 ‘인격 검증’까지 필요하다고 주장하지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반말 장관’은 국격 훼손이니까요.

물론, 저는 유 장관을 인간적으로 매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를 직접적으로 관찰한 바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나무에서 떨어진 원숭이를 두고 원숭이가 원래 팔 힘이 없다고 볼 순 없겠지요. 한 개인의 인격은 비정상적으로 돌출된 일부 모습만 보며 함부로 얘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것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 장관이 실수를 대처하는 방식은 낙제점입니다. 그는 실수를 한 뒤에도 깨끗하게 ‘미안하다. 앞으로 잘 하겠다’ 하며 용서를 비는 모습이 없습니다.

법원이 김윤수 전 현대 미술관장과 김정헌 전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의 해임이 부당하다고 판결했는데도 사과 한 마디 없습니다. 국민들이 ‘막말 장관’이라고 비판해도 그냥 모르쇠입니다.

이 때문에 유 장관의 인간적 됨됨이까지 곱씹어 보게 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아. 이 사람은 원래 저렇게 뻔뻔한가.’
‘원래 사과라는 걸 잘 모르는가.’
‘그에게 반말은 그냥 일상인가.’

정말 반할만한 인품을 가진 겸손한 지도자는 나와 정치관이 다르더라도 미워할 수 없습니다. 사람 마음이란 게 그래요. 겸손하고 예의바른 사람을 무조건 싫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사람들이 그렇게 미워했으면서도 또 그리워하는 건 바로 그의 겸손한 인품 때문일 겁니다. 노무현은 많은 사람들에게 애증의 대상이었을 겁니다. 유인촌 장관을 보면서 그런 ‘밉지만 미워할 수만도 없는’ 지도자가 이 내각에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 김윤수 전 현대미술관장의 인품은 어땠냐고요? 일흔이 훌쩍 넘은 분이시지만 삼십대 초반인 저 같은 햇병아리 기자에게도 구십도로 인사하며 예의를 갖추는 분이셨습니다.

현재 한겨레 방송부문 뉴스팀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다.
영상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함께 들고 현장을 누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앞선 멀티형 기자가 돼려고 노력중이다. 우리 사회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사명을 놓는 그 순간, 기자가 아닌 단순 직장인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 그저 그런 기자가 되느니 문제적 기자가 되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하고 살기도 한다. 한겨레와 한겨레 독자들을 무지무지 사랑한다.
개인 블로그 http://blog.hani.co.kr/catalu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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