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없으면 살아나갈 수 없다."

'무신불립(無信不立)'. 지난 3일 KBS <시사기획 쌈> 보도로 유명해진 이 말은 대통령 후보자에게뿐만 아니라 선거방송심의위원회에도 적용될 것 같다.

12일 오후 3시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제9차 회의를 앞두고 MBC와 KBS 방송 현업인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선거방송심의위에 대한 노골적인 불신을 드러냈다. 이들은 이날 2시 선거방송심의위 회의가 열리는 서울 목동 방송회관 1층 로비에서 '정파적 심의'와 한나라당의 '방송탄압'을 규탄했다.

'시선집중' PD "심의위원들, 녹취록 한 번이라도 읽어보셨나"

▲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 임재윤 PD. ⓒ정은경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 임재윤 PD는 "선거방송심의위에서 '주의'를 결정한 것은 뭔가 타당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제작진도 그날 녹취록을 찬찬히 뜯어봤다. 그날 손석희씨는 이만큼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인 사례가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공정성과 객관성을 지켜 인터뷰를 했다"며 "선거방송심의위원들이 심의를 할 때 녹취록을 꼼꼼히 뜯어보셨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간적 이유로, 혹은 다른 어떤 이유로 방송을 들어보지 않으셨는지 모르겠지만 녹취록을 한 번이라도 읽어봤다면 이런 결정이 나올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임 PD는 "선거방송심의규정의 어떤 조항을 위반했다는 부분은 있지만 방송 중 어떤 부분이 문제가 됐는지는 제시되지 않았다"며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제시해달라"고 말했다.

임 PD는 "정치권 눈치보기라든가 하는 이야기는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며 "그 전에 왼쪽에 방송 녹취록을, 오른쪽에 선거방송심의규정을 놓고 꼼꼼히 대조해보실 것을 권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MBC 라디오본부와 시사교양국 등 소속 PD 30여명이 참석했다. 지난 5일 선거방송심의위로부터 주의 조치를 받은 <시선집중>은 현재 집행정지를 신청하고 재심을 청구해놓은 상태다.

'시사기획 쌈' 기자 "'무신불립' 은 오히려 허술한 방송이었다"

한나라당이 공정성 문제를 제기해 12일 논의될 것으로 알려진 KBS <시사기획 쌈> '무신불립'편을 제작한 KBS 최경영 기자는 "지금 한참 취재하고 있어야 하는데 내가 왜 여기에 서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운을 뗐다.

▲ KBS 탐사보도팀 최경영 기자. ⓒ정은경
최 기자는 "300억 원의 재산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온갖 탈법, 불법을 행한 사람을 검증하는 데 20분은 짧은 시간이었다"며 "오히려 제기된 의혹을 나열하는 수준의 허술한 프로그램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후보의 위장전입에 대해서는 언급도 하지 않았고 서초동 땅과 빌딩 3채 문제만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BBK 의혹은 1분40초밖에 방송되지 않았고 나머지는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원회 인물들을 보여준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언론노조 최상재 위원장 "심의위, 정파적 이해관계 대변에 앞장서"

언론 현업인 단체와 시민사회단체들도 총출동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PD연합회, 한국기자협회를 비롯해 언론개혁시민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한국인터넷기자협회 등이 참석해 한나라당의 시대착오적인 언론관을 비판했다.

▲ 전국언론노조 최상재 위원장(맨 오른쪽)이 방송위원회 관계자에게 기자회견문을 전달하고 있다. ⓒ정은경
전국언론노조 최상재 위원장은 "백번을 양보해 한나라당은 정치집단이니 볼멘소리를 할 수 있다고 치더라도 공정보도를 요구하고 감시해야 할 선거방송심의위가 오히려 정파적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 위원장은 "87년 이후 방송 현업인들의 구원은 방송독립과 언론자유였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구원은 여전히 방송독립과 언론자유"라며 "선거가 끝난 뒤에라도 대통령과 권력에 대한 감시의 끈을 놓치 않고 싸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민언련 김언경 처장 "심의위·한나라당·보수신문 황금콤비"

민주언론시민연합 김언경 협동사무처장은 "17대 대선에서 지상파 방송3사는 선거 관련 아이템을 제대로 보도하고 있지 않다. SBS는 시사보도 프로그램에서 단 한건도 선거를 다루지 않았고 KBS와 MBC의 몇몇 프로그램도 짧은 호흡으로 다루고 있을 뿐"이라며 "이런 논란 자체가 우스꽝스럽다"고 꼬집었다.

김 처장은 "선거방송심의위와 한나라당, 보수신문이 황금의 콤비를 이루고 있다"며 "더 이상 선거방송심의위가 잘못된 결정을 내리지 않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그는 "선거 이후로 논의를 미룬다면 줄서기와 편파성 시비는 더 심해질 것"이라며 "<시사기획 쌈>에 대한 심의는 오늘 기각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이준희 회장도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정치집단과 선거방송심의위원회가 오히려 경고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 직후 각 단체 대표들은 선거방송심의위원회에 기자회견문을 전달하려 했으나 실랑이 끝에 방송위원회 실무자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방송위원회 관계자는 회의가 이미 시작돼 항의서한을 전달할 수 없다고 했으나 실랑이 도중 성유보 심의위원이 도착해 단체장들의 항의가 이어지기도 했다. 12일 오후 6시 현재 선거방송심의위원회 9차 회의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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