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도 예산이 가까스로 합의점을 찾고 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전망이다. 끝까지 여야가 줄다리기를 했던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들이었고, 더 중요한 것은 복지였다. 결국엔 여야가 조금씩 후퇴하는 선에서 합의점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어느 한쪽의 완벽한 만족은 욕심이기에 여야의 합의가 이뤄졌다는 사실에 무게를 두게 된다.

그렇더라도 이번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야권을 용서할 수 없는 사실이 한 가지는 있다는 게 여론이다. 노인·아동 복지 예산이 야당들의 단지 정략적 이유에 의해서 몇 달씩 미뤄졌다는 사실이다. 아동수당 지급과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 인상을 내년 지자체 선거 이후로 미룬 것이다.

자유한국당 정우택(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와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일 오후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 처리 합의문을 발표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차라리 시행이 안 됐다면 모를까 하긴 하되 선거용 정책이라며 선거 이후에 시행하라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 결과 4월부터 인상할 예정이었던 노인 기초연금 5만원 인상과 만 0~5세 아동에게 지급하려던 아동수당도 7월에서 9월로 두 달 연기된 것이다.

이것은 정치가 아니다. 전략도 아니다. 노인과 아동에게 지급될 복지수당에 선거 유불리를 따져 거래하는 행위를 감히 정치라고 할 수는 없다. 워낙 수십억의 재산가들이라 노인들에게 인상예정인 5만원이, 아동에게 지급하려던 10만원이 우습게 보일지는 몰라도 저소득 가정에서 5만원과 10만원은 매우 절실한 지원이다. 식사비 3만원이 품위 없다는 국회의원들에게는 몰라도 서민가정 누구에게도 큰돈이다.

동네 어디서나 폐지를 줍는 노인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노인 빈곤율 49.6%로 OECD 국가 평균인 12.4%의 4배 수준인 한국이라면 당연한 현상이다. 그렇게 하루 종일 동네를 돌아다녀도 손에 쥐는 것은 몇 천원에 불과하고, 그조차 힘에 부쳐 일을 하지 못하는 날이 더 많은 노인들. 그런 노인들에게 한 달 5만원의 의미는 생존의 아슬아슬한 동아줄일 수도 있다. 그런 노인들을 위한 기초연금 지급을 미룬다는 것은 간접살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고령화와 인구절벽의 위기 속에서 노인·아동 복지는 결코 정략적 거래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게다가 기초연금과 아동수당의 연기와 심지어 아동수당의 경우 보편적 복지의 원칙마저 깨져 상위 10%를 제외한다는 사실까지 겹쳐 야당은 사실상 가장 강력한 유권자층인 노인과 육아가구의 표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아동수당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지역골목상권 전용화폐로 지급될 계획도 갖고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소상공인들도 2차 피해 대상이 되는 것이다. 정작 선거를 의식해 반대했다지만 실제로는 선거를 더 불리하게 만든 자충수를 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노인층들의 반응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지만 육아가구의 분노는 빠르고 강하게 퍼져나가고 있다. 야권이 선거를 의식해 반대하고 또 미뤘다는 사실은 거꾸로 야당들의 선거를 불리하게 만들 것이다. 노인들과 유아들의 밥그릇을 빼앗아간 것에 대한 응분의 대가는 선거를 통해 드러날 것이다.

이는 또한 지난 대선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공약과도 배치되는 결과이다. 당시 홍준표 후보는 소득 하위 50% 가구의 초·중·고생까지 월 15만원의 ‘미래양성 바우처’ 지급을, 안철수 후보는 소득 하위 80%를 기준으로 0~11살까지 월 10만원의 수당지급을 각각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남의 것 5억보다 내 돈 5만원이 더 큰 법이다. 5만원, 10만원의 충격은 야당들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갈 것이다. 그렇다고 여당이 웃을 일도 아니다. 여당으로서 정국을 이끌 책임이 있다지만 절대 타협불가의 부분에서 야당들에게 끌려다닌 결과다. 예산안 타결했다고 우쭐할 생각 말고 먼저 국민들 앞에 머리 숙여 사죄부터 해야 할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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