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월 2500원으로 묶여있던 TV수신료 인상안이 27년만에 국회에 상정되면서 공영방송 재원구조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그러나 제대로 된 사회적 토론과 합의로 이어졌는가를 평가한다면 아직은 '절반의 성과' '미완의 과제'에 불과하다.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다.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는 KBS와 정책적 역할을 담당해야 할 방송위원회가 공영방송 개혁을 위한 '실천'과 '사회적 설득' 노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부정적인 여론이 높다. 여기에 "수신료 인상을 빌미로 KBS를 길들이려 한다"는 비판을 사고 있는 한나라당 등 일부 정치권과 보수단체, 그리고 일부 신문들의 발목잡기도 계속됐다. 그나마 진전된 내용이라면, 저마다 입맛에 맞게 수신료 인상의 '전제 조건'을 내걸고 있지만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목소리는 많지 않다는 점이다.

KBS 이사회와 방송위원회를 거쳐 지난달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 상정된 수신료 인상안은 이번 대선이 끝난 후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수신료 문제야말로 이번 대선 결과에 따른 집권 정당과 당선자의 '의지'에 따라 그 향배가 저울질되는 첫 시험대에 오를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수신료 현실화' 필요성엔 동의…사회적 합의가 문제

현재 대선 후보들은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에는 대부분 동의하고 있고,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에서도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보수 성향의 후보들은 KBS의 공정성과 경영 합리화를 전제 조건으로 제시하며 KBS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고, 진보 내지 개혁 성향의 후보들은 공영방송의 안정적인 재원구조 확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 <표> 17대 대선 후보의 TV수신료 인상에 대한 입장
우선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이회창 무소속 후보는 KBS의 공정성과 경영 합리화가 먼저 이뤄져야 수신료 인상을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KBS의 편파 보도와 방만 경영이 여전히 문제라는 시각이 깔려있다.

이명박 후보는 그동안 언론과의 인터뷰 등에서 "KBS 프로그램의 공정성 담보, 방만한 경영의 혁신이 선행돼야 수신료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다.

이명박·이회창 후보 "KBS 공정성, 경영합리화가 우선"

스카이라이프와 한국언론학회가 지난달 30일 주최한 '2007 대선 미디어 정책 토론회'에서 한나라당 이재웅 의원은 "수신료 인상은 KBS의 요구인데 국민이 받아들이기 어렵다. KBS가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며 현재 KBS가 추진하는 수신료 인상에 동의하지 않는 한나라당의 입장을 '국민의 뜻'으로 연결시켰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또한 큰 틀에서 본다면 KBS의 경영혁신을 요구하는 맥락과 다르지 않다. "공영방송의 공적 재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공영방송 경영의 효율성 여부를 살펴 수신료 인상 시기와 폭을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신문방송 겸영과 공영방송 민영화에 대해서도 '시기상조'라며 구체적인 입장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정 후보는 수신료 문제 역시 "신중하게 살펴야 할 문제"라던가, "(수신료 인상안을 최종 승인할) 국회의 의견에 따를 것" 등의 표현으로 민감한 쟁점을 피해나가는 모습이다.

정동영 후보 "공영방송 효율성 따져 인상·시기 폭 결정해야"

그러나 수신료 인상의 전제조건으로 거론되는 KBS의 공정성과 경영의 효율성이 구체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요구되기보다 추상적인 구호로서 작동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명박, 이회창, 정동영 후보가 공영방송의 경영 효율성을 이유로 인상 내용과 시기를 문제삼으려면 보다 분명하고 구체적인 지적과 요구 사항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수신료 인상의 '전제 조건'은 합리적인 '정책적 판단'이 아니라 수신료를 빌미로 방송을 길들이려는 '정치적 의도' 내지 '감정적 대응'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다르게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와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는 수신료 인상의 사회적 합의와 국민 공감대를 강조하면서도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수행하려면 무엇보다 안정적인 재원구조가 필요하다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권영길 후보는 지난 11월 <미디어스>에 보낸 서면질의 답변서에서 "수신료 문제는 한국 공영방송의 역할과 안정적인 공적재원구조 정립을 놓고 오랜 기간 고민되어 온 내용으로 인상이 필요하다고 본다"면서도 "다만, 수신료 인상 추진의 과정에서 왜 지금 인상이 필요한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거쳐 국민의 공감대 형성 등 시민사회와의 소통이 우선되었어야 하는데 이를 소홀히 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권영길 후보 "공영방송 재원구조 안정화 시급, 그러나 국민 공감대 없는 추진은 유감"

"TV수신료는 KBS만의 재원이 아니라 EBS 등 한국사회의 핵심 공공영역인 공영방송 전체의 재원이라는 점에서 국민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유관기관과 함께 최대한 설득 과정을 거쳤어야 함에도 서둘러 추진된 것은 유감"이라는 것이다.

권 후보는 수신료 인상을 KBS 정연주 사장 문제와 연계해 바라보는 일부 정치권의 반응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논의 구조를 원천 봉쇄하는 접근"이라며 "수신료 인상 문제는 정파를 넘어서는 공영방송의 역할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이 필요한 사안"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권 후보는 아울러 "수신료를 포함한 공영방송의 재원구조 문제와 함께 공영방송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사회 전반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문국현 후보 캠프의 김동민 홍보미디어위원도 스카이라이프와 한국언론학회가 지난달 30일 주최한 '2007 대선 미디어 정책 토론회'에서 "공영방송의 재원 확보를 위해 수신료 현실화는 중요하다"고 밝혔다. 문 후보쪽은 몇몇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당장 수신료 인상이 어렵다면 국고 지원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한편 방송의 디지털 전환 정책과 전환 비용 마련에 대해 권 후보는 "디지털 전환으로 인해 돈을 버는 가전사 및 업체 쪽이 일정 부분 사회적인 부담금을 충당해야 한다고 본다"며 "디지털 전환은 국책사업인 만큼 다른 나라처럼 정부 차원의 재원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디지털 전환'에 대한 정부차원의 통합적 정책·지원 방안 나와야

정동영 후보는 디지털 전환에 따라 소외계층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하고, 디지털 전환 비용도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스카이라이프와 한국언론학회가 지난달 30일 주최한 '2007 대선 미디어 정책 토론회'에서 대통합민주신당 정청래 의원은 "2012년에 아날로그 방송이 중단되기 때문에 이를 알리기 위한 홍보 예산이 필요하고 이는 정부가 지출해야 한다"며 "디지털 전환 비용은 방송사, 정부, 가전사가 함께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 비용추계를 먼저 하고 적정배분에 대해선 토론을 통해 결정해야 한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이명박 후보는 지난 8월 'PD저널'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2012년 아날로그 종료시점에 디지털TV 수신기를 갖추지 못하는 소외계층 전부에게 디지털 TV를 볼 수 있는 셋톱박스를 무상으로 지원할 경우 현재 셋톱박스 1개당 10만원씩 계산하면 소외계층 약 200만 가구에 2000억 원 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디지털 전환비용을 위한 방송사 지원은 공적재원을 직접 지원하는 것보다는 수신료 인상과 광고료 인상 방식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나라당 이재웅 의원은 스카이라이프와 한국언론학회가 지난달 30일 주최한 '2007 대선 미디어 정책 토론회'에서 "디지털 전환에 2조242억 원 정도의 투자가 필요한데 일시적인 사업 때문에 수신료 인상이나 중간광고 도입 등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은 국민 부담이 된다"고 밝혀 견해 차이를 보였다. 이 의원은 "디지털 전환에 필요한 비용을 특정 정책부처가 전담해선 안되며 방송·통신을 통합하는 정부 조직이 정책을 마련해 부담을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문국현 후보 캠프의 김동민 홍보미디어위원도 같은 토론회에서 "지상파방송은 무료보편서비스이기 때문에 국고 지원이 필요하고 수상기 생산업체도 분담을 하는 것이 맞다"며 "향후 방송통신위원회에서 구체적인 지원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수신료 인상안 국회 승인 이뤄져야…중장기적 수신료 제도 개선 논의 필요"

대선미디어연대가 발표한 '17대 대선 13대 미디어 개혁과제'에서는 지상파 방송의 공공성과 독립성 강화를 위한 주요 과제로 TV수신료 인상을 제시하고 있다.

대선미디어연대는 "공영방송 체제를 보장하고 양질의 공적 방송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공영방송의 재원은 TV수신료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현재 수신료는 KBS 전체 재원의 40%에도 못미치고 물가인상과 비용증가를 반영하지 못한 채 27년째 2500원으로 동결돼 상업광고 중심의 재원구조를 형성하고 있다"며 "KBS 이사회가 요청한 수신료 인상안을 국회에서 승인하고, 중장기적으로 공영방송의 안정적 운영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수신료 제도 개선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선미디어연대는 또한 "지상파방송의 디지털 전환이 이뤄지고 있으나 방송사업자는 전환 비용 부족에 어려워하고 있고, 시청자들은 고가의 디지털TV 수상기에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며 "수신기 보급지원과 수신환경 개선 등 실질적인 디지털전환 지원이 이뤄져야 하고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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