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이었지만 우리 사회는 뜨거운 인권논란을 지나왔다. 그러나 평소와 달랐던 것은 현실을 바꾼 논란이었다는 사실이다. 뜨겁게 타오른 논란은 정의당 비례대표 김종대 의원의 아주대병원 이국종 교수 저격사건이었고, 그보다 훨씬 심각하지만 서서히 꺼져가는 간호사 인권 문제가 있다. 전자의 경우는 국회의원의 객기로 결론이 맺어지고 있지만, 간호사 인권문제는 이대로 다른 이슈들에 떠밀려 봉합도 하지 못한 채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된다.

이국종 교수 대 김종대 의원의 인권논란은 김종대 의원의 KO패로 결론이 났으며 더 나아가 중증외상센터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왔다는 점에서 논란의 최상급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권역외상센터 예산을 대폭 줄이려던 야당의 의도가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게 됐다는 것도 망외의 성과라고 할 것이다.

그런 반면 간호사들에게 선정적 걸그룹 춤을 강요했던 성심병원 사태로 촉발된 간호사 인권과 처우 문제는 진전 없이 그대로 묻히는 분위기다. 중증외상센터의 후진성은 정말 심각한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외상센터를 비롯해서 병원에서 실질적으로 환자와 늘 대하며 치료를 담당하는 간호사들의 심각한 인권침해와 그로 인한 직업 이탈 또한 그에 못지않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강원지역 여성단체들이 20일 오후 강원 춘천성심병원 앞에서 한림대 성심병원이 간호사 장기자랑 강요 논란과 관련해 학교법인 일송학원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람이 태어나서 굳이 할 필요 없는 드문 경험들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중환자실이다. 그러나 해봤다면, 그것도 의식이 또렷한 상태에서 경험했다면 의료 서비스에 대한 시각이 완전히 달라지게 되는 것도 또한 겪게 된다. 중환자실에 있어본 사람은, 환자는 의사가 아니라 간호사가 살린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물론 이런 진술은 의학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비명과 절규가 끊이지 않는 아비규환 속에서 그나마 환자의 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은 유일하게 간호사들뿐인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대단히 주관적인 판단이일 수도 있겠지만 환자는 의사가 아니라 간호사에 의해서 죽고 살고가 결정된다는 결론을 갖고 병원을 퇴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실제로 간호인력의 수준에 따라 환자사망률이 최대 40%까지 차이를 보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한다.

한 드라마에서 간호사 역할을 리얼하게 했다고 해서 칭찬을 받은 배우가 있다. 실제로 병원의 규모를 떠나 간호사들이 주사를 놓을 때 “따끔”이라는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드라마 작가는 일반병동은 물론이고 특히 중환자실의 간호사 교대를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간호사들의 인수인계 시간은 대단히 치열해 보인다.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 환자들의 상태에 대해서, 자신이 한 처치에 대해서 꼼꼼하게 설명하고 확인하는 모습에서 마치 전쟁을 치르는 군인들의 날 선 모습이 보일 정도다. 그러나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에 간호사들의 무급 초과근무라는 이면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을 뿐이다.

On Style <뜨거운 사이다>

현재 한국의 병원들이 갖고 있는 두 가지의 큰 고민거리라면 외과외사와 간호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앞서 말한 간호인력의 수준에 따라 환자사망률의 차이를 보인다는데 외과의 부족과 함께 간호인력의 이직은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여성문제를 주로 다루는 케이블채널 예능 <뜨거운 사이다>에 출연한 서울대병원 노조간부 최원영 간호사의 진단에 따르면 간호사 이직의 원인은 1. 힘든 업무 2. 낮은 보수 3. 잦은 야간근무였다. 그렇지만 간호사 1인당 담당하는 환자수가 이미 벅차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이 세 가지 이유만으로도 간호사들의 높은 이직률이 이해가 될 수준이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최근 성심병원 간호사들의 선정적 장기자랑으로 드러난 갑질과 성상품화 문제와 더불어 간호사들 내부에서 벌어지는 ‘태움’ 등 인권의 위기가 간호사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똑같이 근무하고도 초임이라는 이유로 간호사들에게 36만원밖에 지급하지 않은 서울대병원의 횡포에는 할 말을 잊게 된다.

간호사는 외사와 더불어 우리들의 생명을 책임지는 의료의 한 축이다. 그 의료의 한 축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또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간호사는 친절한 미소를 짓기 위해 존재하는 병원의 꽃이 아니다. 간호사 역시 의사와 마찬가지로 의료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