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금지법(속칭 김영란법)의 일부 개정이 불발됐다. 27일 열린 국민권인위원회 전원위원회에서 격론 끝에 부결됐다는 소식이다. 15명 가운데 박은정 위원장 등의 불참으로 12명이 참석한 전원위원회에서 투표결과 1표 차이로 부결됐다고 한다. 따라서 29일 열리기로 예정되었던 국민보고대회 또한 개최가 불투명해졌다.

이번 국민권익위가 개정을 논의하기로 했던 청탁금지법의 내용은 소위 ‘3·5·10규정’이었다. 식사비 3만원, 선물비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규정 가운데 선물비를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상향조정하고 대신 경조사비를 5만원으로 낮추고자 했던 것이다. 애초에는 식사비도 5만원으로 올리자는 안건이 상정됐다가 후퇴하기도 했었다.

청탁금지법 '3ㆍ5ㆍ10' 규정 개정안 (PG) Ⓒ연합뉴스

환호까지는 아니더라도 청탁금지법 개정안 부결 소식에 문재인 지지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하고자 했던 일들 중에서 유일하게 반대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다고 강력하게 표출할 수도 없어 지지자들로서는 나름 이중고를 겪었기 때문이다. 청탁금지법 개정 반대가 자칫 문 정부 반대자들에게 빌미를 제공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래서 조심스럽지만 그렇다고 반대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종의 딜레마 상황을 겪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권익위 차원에서 부결이 되어 법개정 발표까지도 가지 않게 된 것은 호미로 막을 것을 호미로 막은 셈이라며 안도하는 것이다.

취임 이후 칭찬일색의 이낙연 총리마저 자주 청탁금지법의 ‘3·5·10규정’ 개정을 언급하기도 했었지만 적어도 문재인 정부는 청탁금지법의 개정을 논의조차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여론이다. 최악의 부패 정부로 기록될 박근혜 정부시절 통과된 청탁금지법이 문재인 정부에서 개정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할 부조리다. 청탁금지법의 강화가 아닌 후퇴는 문재인 정부에게 주어진 적폐청산의 임무와도 모순된다.

실제로 이번에 권익위에서 청탁금지법 개정이 통과했다면 문재인 정부로서는 예상치 못할 국민적 저항을 받을 수도 있었다. 2016년 자료지만 한국은 국가청렴도 52위의 부끄러운 모습으로 국제사회에 자리매김 되어 있다.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에 정권의 전력을 다해야 하는 것은 민주주의 체제의 확립을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부패국가의 이미지를 벗어 국격을 높여야 하는 이유도 분명하다.

비록 청탁금지법의 시행으로 농축산가와 화훼농가에 피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대책은 별도로 마련되어야 하지 애써 만든 부패방지법을 손볼 일은 아니다. 부패방지와 농가경제 살리기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할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청탁금지법은 더욱 강화되어 공직사회와 언론계에 뿌리박힌 부정한 관례들을 모두 없애는 시금석이 되어야 한다.

13일 JTBC 뉴스룸 [팩트체크] 적폐 수사가 경제에 악영향 준다? (보도영상 갈무리)

지난 13일자 JTBC <뉴스룸> 팩트체크는 (국가제도) 투명성 10% 증가시 1인당 GDP가 1.75%~2.41% 증가한다는 사실과, 한국의 청렴도가 OECD 평균만 유지해도 한 해 4% 경제성장률 달성한다는 연구결과를 국책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소와 민간기관인 현대경제연구원 분석자료를 통해 보도한 바 있다. 청탁금지법 하나로 국가청렴도를 모두 커버할 것은 아니지만 이를 시작으로 공수처 등 반부패 제도와 법들이 자리 잡게 해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문재인 정부는 청탁금지법을 강화할 것이 아니라면 논의조차 하지 않기를 바란다. 적폐청산은 문재인 정부의 존재 이유 중 하나이다. 적폐 중 가장 보편적인 것이 뇌물이다. 이것은 비단 지난 이명박근혜 정부의 탓만도 아니다. 더 오랜 역사를 가졌기 때문에 뿌리 뽑기는 더욱 힘든 것이다. 그래도 문재인 정부에서 흔들리지 않고 이 법을 지켜가야만 클린 대한민국의 미래라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공직사회를 깨끗이 하면 경제가 좋아진다는데 무엇을 더 고민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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