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의 한 장면이다. 경시청의 한 형사가 한 관료를 찾아갔고, 관료는 마침 누군가 두고 간 과자를 열어 형사에게 권했다. 형사는 아무렇지 않게 과자 하나를 꺼내들었고, 곧바로 탁자 위에 100엔 동전 두 개를 꺼내 놓았다. 공직자의 청렴의무 준수를 드러내는 장면으로 한국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다. 우리에게도 공직자의 청렴의무를 규정한 법이 있지만 겨우 2천 원 정도라면 부담 없이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법은 다름 아닌 김영란법이라 불리는 '부정청탁금지법'이다.

우선 이 법을 부르는 호칭부터 바꾸는 운동이라도 생겨나야 할 것이다. '부정청탁금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은 김영란법이라고 불리면서 본래의 취지가 감춰지는 효과를 내고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법을 정확히 '부정청탁금지법' 혹은 '청탁금지법' 등으로 목적을 분명하게 밝히는 호칭 되찾기 운동이 절실한 상황이다.

농축산물 수급동향 청취하는 이낙연 총리 [연합뉴스 자료사진]

26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상 공직자 등에게 제공 가능한 선물의 상한액이 농축수산품에 한해 기존 5만 원에서 10만 원으로 상향 조정된다”고 한다. 또한 “국민권익위원회는 27일 전원위원회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의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안을 심의하고, 당정협의를 거쳐 오는 29일 '대국민보고대회'에서 관련 내용을 발표할 것으로 26일 확인됐다”고도 부연했다.

만약 이와 같은 사실이 오보가 아니라면 국민 대다수가 환영한 김영란법은 입법취지가 크게 후퇴하게 된다. 아무리 농가경제를 위한 것이라지만 과연 김영란법의 후퇴가 가져올 부작용을 상쇄할 정도가 될 것인지는 의문이다. 아니 농가 살림에 도움이 될지도 사실 의심이 된다. 무너진 농가경제를 위해 뭐든 다 좋지만 뇌물을 늘려서 살림에 보태겠다는 것은 납득할 수가 없다.

우선 ‘3·5·10’ 규정은 그것이 선물과 뇌물을 가늠하는 잣대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김영란법 아니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줄여서 부정청탁금지법)’이 그나마 ‘3·5·10’규정을 둔 것은 그 정도는 뇌물이 아니라는 면죄부가 아니다. 하도 언론과 공직자들의 반발이 심하니 일단의 예외를 두는 의미에 불과하다. 결국엔 공직자들에게는 ‘3·5·10’이 아니라 단 1원도 뇌물이라는 의식이 자리 잡혀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의 취지이자 곧 민심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부정청탁금지법’ 완화에 대한 언론과 정치인들의 집요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어쨌든 사수할 수 있었다. 그것을 실질적으로나 상징적으로 더 청렴하다고 믿는 문재인 정부 들어 완화하고, 후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뇌물은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린 아킬레스였다. 또한 현재도 전직 대통령과 공직자들의 뇌물 수수에 관한 법정 다툼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적폐청산의 의무를 안고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어렵게 마련된 ‘부정청탁금지법’ 시행 일 년 만에 뇌물의 그물코를 늘리겠다는 것이 사실인지조차 의심스럽다.

김영란 서강대 석좌교수 [연합뉴스 자료사진]

여전히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는 3만 원짜리 식사를 함께 한다는 것은 정말 특별한 일이 아니고선 생각지도 못할 일이다. 5만 원짜리 선물도 사실 벅차고 부담스러운 것은 주고받는 입장이 다르지 않다. 그런 것이 왜 기자와 공직자들은 예외여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농축산물에 한정한다지만 한번 물러서게 되면 결국엔 모두 무너지기 마련이다. 타 부분에서도 형평성의 문제를 제기할 것은 안 봐도 비디오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청탁금지법 1주년 토론회’를 위해 조사한 여론조사에서 ‘선물 한도 5만 원의 적정성’에 대한 설문 결과, 일반 국민, 공직자, 교원 등에서는 적정하다는 의견이 다수였던 반면 언론계와 농수축산화훼업계에서는 너무 낮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역시나 눈에 거슬리는 것은 언론계가 ‘부정청탁 금지법’에 여전히 반대하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부정청탁 금지법’의 후퇴를 원하지 않는다. 불편하지도 않다는 것이 핵심이다.

다만 농축산가와 화훼업계가 겪는 어려움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농가경제를 살리겠다는 의지라면 다른 방법, 더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고작 뇌물을 늘려 농가를 돕겠다는 발상은 효과적이지도 않고, 진실하지도 않다. 거대한 댐이 작은 구멍 하나에 붕괴되는 것처럼 ‘부정청탁금지법’도 이렇게, 그것도 문재인 정부에 의해서 후퇴한다면 이 법 자체가 용도폐기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부패와의 싸움은 한발도 물러서서는 안 되는 것이 문재인 정부여야 한다. '부정청탁금지법'을 절대 손대지 않겠다는 약속이면 몰라도 후퇴는 문재인 정부의 자기정체성에 역행하는 일이다. 부정청탁법 완화 조치에 대한 철회를 간곡히 바란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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