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흥하고 망한 여러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저는 경험에 의한 하나의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이돌이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은 재미가 없다, 혹은 아이돌은 예능과 어울리지 않다는 선입견이였죠. 프로그램의 적합성이나 각자의 능력보다는 그들 고정팬들의 유입, 화제를 만드는 재료로서만 활용하려는 얄팍한 속내는 늘 함량미달의 결과물만을 만들어내곤 했거든요. 아무리 유명한 그룹의 에이스들이 출연한다 해도 정작 텁텁하거나 밋밋한 재미만을 주곤 했기에 그냥 그들은 무대 위에서만 보는 것이 더 좋겠다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천안함 사태의 추도정국으로 소문만 무성하고 실체를 알 수 없었던 SBS의 새로운 야심작 하하몽쇼의 파일럿 방송분이 드디어 전파를 탔습니다. 스스로가 명확하게 선전했듯이 그야말로 노골적인 아이돌의, 아이돌에 의한, 아이돌을 위한 프로그램이었죠. 모든 게스트가 잘나가는 그룹의 일원들이었고, 그 내용 역시도 이들 어린 스타들에게 궁금한 얄팍한 관심사들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아이돌의 이성에 대한 관심, 각 멤버들간의 비밀이야기 폭로, 가벼운 억지 스캔들 만들기, 다른 분야 연예인들과의 친분, 숙소 공개, 막판의 작은 몰래카메라에 이르기까지 하하몽쇼는 아이돌 이야기로만 채워진 종합선물세트였어요.

그런데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재미가 너무 명확하고, 가끔 식상하고, 어떨 때는 부담스럽거나 유치하기도 했지만 전 재미있었어요. 단독MC 경험이 없는 하하와 MC몽의 호흡은 생각보다 훨씬 매끄러웠고, 진행의 미숙함을 그들 특유의 활력으로 대체시킨 떠들썩함은 젊은 친구들의 특징과 묘하게 어울리더군요. 청춘불패에서의 어색한 MC 김신영의 아쉬움은 혼자 웃음을 책임져야한다는 부담감을 다른 두 남자 MC들과 나누어가지면서 훨씬 더 편하게 보였고요. 아이돌 중에서도 예능감이 좋다는 이들을 불러 모은 게스트들의 역할도 적절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번잡스럽게 오가는 스튜디오였지만 그런 어수선함이 오히려 개성처럼 보이는 묘한 방송이었죠.

어쩌면 이런 괜찮은 첫인상은 첫 회 게스트로 나온 빅뱅의 대성과 승리의 활약 덕분이기도 할 겁니다. 대중들이, 그리고 프로그램의 제작진들이 빅뱅과 자신들에게 궁금한 것이 무엇이고 어떤 것을 원하는지를 영리하게 잡아내서 여유롭게 보여주는 여유는 빅뱅의 오랜 공백에서도 그들의 존재감이 여전하다는 것을 당당하게 보여주더군요. 사실 전 처음을 멋지게 장식했던 자기 패러디 가사의 멋들어진 노래에서 유쾌한 뒤통수를 맞았거든요. 강심장 때도 그랬지만 이들은 정말 불안 불안한 첫 방송을 위한 최고의 게스트입니다.

물론 이 프로그램이 정규편성이 된다고 해도 다양한 계층, 많은 이들에게 폭넓은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들이 구사하는 유머의 코드는 지나치게 젊고, 세 MC들을 비롯한 게스트들은 너무 소란스럽고, 팬이 아닌 이들의 눈에는 조금 민망한 아이돌 특유의 개그도 여전합니다. 비슷한 시청자 층을 노리는 우결이나 스타골든벨이 방송되는 토요일 이른 시간대에서는 확실한 경쟁력을 가지겠지만 그건 압도적인 승자로서가 아니라 서로의 살을 깎아먹는 치열한 다툼이 되겠죠. 그렇다고 다른 시간대를 노리기에는 프로그램의 성격이 너무 확실하구요.

그래도 전 반갑고 즐거운 프로그램이 하나 생겼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네요. 정말 아이돌의 인기와 그들에 대한 관심을 활용하려면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모범답안을 보는 느낌이었거든요. 할 수 있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어설픈 것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아이돌 가십 방송. 하하몽쇼는 그런 재미가 확실히 살아있는 출발이었습니다. 이렇게 개성이 가득한, 독특한 첫인상을 보여주는 방송은 정말 오랜만이네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