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의 블랙하우스>는 시사 프로그램으로는 기대 이상의 화제성과 시청률을 기록하며 파일럿을 넘어 정규편성을 앞두고 있다. 공영방송사들의 장기 파업에도 뉴스 시청률의 반사이익을 얻지 못할 정도로 신뢰도가 추락한 SBS로서는 어쩌면 시청률 따위는 상관없이 처음부터 정규편성을 못 박고 시작했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SBS의 사정도 그렇지만 김어준으로서도 반응 봐서 정규편성을 기다리는 식의 계약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양쪽 모두는 김어준 카드가 과연 기대만큼 먹힐지 내심 초조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시사요정’ 또 누군가는 ‘시사요괴’로 부르는 팟캐스트의 왕자 김어준의 위력이 마이너리티를 극복하고 지상파에도 얼마든지 먹힌다는 사실을 간단하게 증명해보이고 말았다.

SBS 시사교양프로그램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이렇듯 김어준의 지상파 연착륙에 요즘 침체기의 조짐을 숨기지 못하는 JTBC <썰전>은 “나, 떨고 있니?”하는 심정일 거라 짐작이 된다. 당대 최고의 말빨과 지식을 갖고 있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유시민 작가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썰전>은 이제 시사의 예능화라는 화려했던 과거의 훈장에 만족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아직 <썰전>에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김어준의 블랙하우스>가 정규편성되기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거의 유일하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던 산만함은 사실상 의욕의 산물이기에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2부로 편성할 정도로 많은 분량은 반드시 교통정리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다보면 봄개편이 올 것이고, 그때까지의 몇 달의 시간이 <썰전>에게 있는 것이다.

가뜩이나 <썰전>에 대한 시청자 불만이 전에 없이 눈에 띄고, 시청률도 흔들리는 시점에 느닷없이 나타나 시사와 정치에 관심이 불붙은 요즘 시청자들을 신세계로 인도한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덕분에 <썰전>은 부득불 자기 혁신을 요구받게 된 셈이다. 오랫동안 유지해왔던 2인 패널의 공방 형식부터 이슈 선정까지 새로운 것들을 선보여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썰전>은 형편없는 수준의 종편 시사 토크쇼들밖에는 비교상대가 없었던 과거와는 다른 환경을 처음 맞고 있다.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이 너무 당황스럽다면 <썰전>의 위기는 사실이 될 것이고, 예상하고 변화를 준비하던 중이었다면 <썰전>은 여전한 인기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당장은 정규편성도 안 된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때문에 <썰전>이 위기라는 말이 결례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 자격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썰전>의 변화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JTBC 시사교양 프로그램 <썰전>

세상이 바뀌었다는 말을 심심찮게 하지만 사실은 바뀐 것도 없다. 겨우 대통령 하나 바뀐 것에 불과하다는 말들을 쉽게 나누는 모습들이다. 당연하다. 적폐청산의 상위에 놓인 정치권력, 언론권력 등은 여전한 위세를 부리고 있으며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에 대해서 ‘정치보복’이라는 프레임을 끊임없이 던져대고 있다. 저항하고, 반격하겠다는 의미다. 촛불이 계속되어야 한다면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한겨울을 관통한 6개월의 촛불집회와 곧바로 이어진 대통령 보궐선거,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6개월이 힘겹게 지나는 것을 보는 요즘 시민들은 과거와 달리 정치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언론에 대한 여전한 경계심과 적개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그 많은 언론들은 시민들의 변화에 발맞추려고 하지 않았다. 종편들에서 <썰전>을 흉내 낸 프로그램 몇 개가 생겨나긴 했지만 채널의 한계를 넘나들지 못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의 등장에 자극받고 더 빠른 변신을 보일지도 모를 경쟁자(?)는 <썰전>이 아닐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시민들의 공정언론에 대한 갈증이 줄지 않는 상황에서 등장한 <김어준의 블랙하우스>가 부분적으로나마 언론의 변화를 자극하게 된다면 그 또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가짜의 코스프레를 진짜의 진화에 비교할 바는 못 되는 까닭에 <썰전>의 변화를 기대하는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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