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요즘 즐겨보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자랑의 물꼬를 튼다. 친구의 연식으로 보아 지상파에서 한참 인기가 있는 그 어머니들의 출연하는 예능? 아니면 케이블의 인문학 수다인가 했더니 뜻밖에도 유튜브의 항해에 빠졌단다. 지난겨울 촛불 광장으로부터 불붙은 그 친구의 관심은 다종다양한 정치 팟캐스트에 대한 욕구를 불붙였고. 직장 일로 바쁜 틈틈이 접근성이 좋은 팟캐스트를 한 편씩 청취하는 것이 요즘 일상의 낙이라며 적극 추천한다.

팟캐스트, 그 선두주자로서의 김어준

SBS 시사교양프로그램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이런 식이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유튜브을 비롯한 다양한 프로그램에 접근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지난 촛불 정국을 중심으로 다양한 정치적 사안을 펼쳐내는 팟캐스트가 인기를 끌었고, 그 선두에 '김어준'이 있다는 건 자타가 공인하는 바이다.

김어준이라 하면, 기억을 거슬러 딴지일보 총수라는 독특한 이력을 시작으로 아직 팟캐스트라는 채널이 불모지였던 2011년 '가카 헌정방송'을 표방하며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그 주변 인물들을 향한 저격수의 역할을 자처한 <나는 꼼수다>를 당시 주진우 시사인 기자, 김용민 시사평론가, 정봉주 17대 국회의원과 함께 시작했다. 18대 대선 하루 전인 33회차를 끝으로 종영한 <나는 꼼수다>는 이후 한겨레TV와 함께한 김어준의 <파파이스>, 김용민의 국민TV <맘마이스>, 정봉주의 <전국구> 등으로 확산되며 촛불 정국을 달군 팟캐스트 열풍에 힘을 실었다.

왜 팟캐스트였을까? <나는 꼼수다>의 등장에서 알 수 있듯 이 정치 팟캐스트의 존재는 파격적이었다. 때로는 욕설까지 등장하는 거침없는 언변으로, 그보다 더 직설적으로 '가카'의 존재를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이 정치풍자 방송은 당시 의식 있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다시금 요동치게 만들었다. 이후, <나꼼수>의 활동이 촉매가 되어 18대 대선 이후 정의당의 노회찬, 유시민, 진중권 등의 정치카페 등이 활성화되었다. 그리고 지난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과 종편의 파상적인 정치 공세에 좌절한 대중의 마음에 등대지기 역할을 하며 지난 촛불 정국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정치 팟캐스트의 역할은 그 어떤 공영방송의 뉴스보다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마침내 김어준은 지상파 SBS에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첫 선을 보이기에 이르렀다. 바로 지난 4일과 5일에 선보인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다.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란?

SBS 시사교양프로그램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하지만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이하 블랙하우스)>를 그저 개선장군의 행진으로만 보아서는 아쉽다. <블랙하우스>의 존재는 오히려 2011년 이래 줄기차게 이어져 온 김어준의 '가카 헌정방송'의 절정이며, 또한 <그것이 알고 싶다>가 타 방송사의 다큐 프로그램들이 정권과 야합하는 가운데에서도 끈질기게 시도해온 정치비판 다큐의 연장선상에 서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살펴보아야 한다.

4일 <블랙하우스> 첫 방송은 화제의 인터뷰로 시작한다. 첫 주자는 다름 아닌 유병언 세모 회장의 아들 유대균 씨. 외국의 모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그간 '음모론'으로 세간에 회자되던 아버지 유병언의 자살에서부터 국정원 연계설까지 모든 의문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거침없이 펼쳐낸다.

그렇게 세간의 의식에서 사라져 가던 세월호를 다시 부양시킨 인터뷰는, 이어 정청래 국회의원 등과 함께한 두바이의 비밀 인터뷰를 공개한 박근혜 5촌 살인사건에 대한 대담으로 이어진다. 이 내용은 이미 <그것이 알고 싶다>와 김어준의 팟캐스트 등을 통해 그 일부가 소개되었음에도 그 실체의 진실에 대해 충격을 주었던 것으로, 세월호와 함께 박근혜 정권의 도덕성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는 내용이다.

그렇게 박근혜 정권의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비도덕적 행각을 폭로하는 데 거침이 없는 한편, 2회 강유미를 등장시켜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는 질문을 하게 만들고야 만 '흑터뷰'에서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아니 이제야 드러나기 시작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다스로 이어지는 거대한 비리의 서막을 명쾌하게 설명해낸다.

SBS 시사교양프로그램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새 정권의 최대 임무가 '적폐청산'이듯, 아직도 크게 우리 사회에 드리워진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진 적폐 정권의 그림자를 김어준과 제작진은 드러내 보이기에 거침없었고 이를 통해 <블랙하우스>의 존재론을 설파했다.

하지만 과거에만 머물지는 않았다. 2회 강경화 장관과의 인터뷰, 그리고 1회 정신과 전문의 최명기와 정세현 전 외교부 장관을 등장시켜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앞둔 현 시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분석과 평가를 하며 '코리안 패싱'은 없다는 해명의 여지도 주는가 하면, 새 정부의 행보에 대한 훈수를 두는 데도 서슴지 않았다.

1~2회 파일럿을 마친 <블랙하우스>에 비견될 만한 프로그램은 아마도 JTBC의 <썰전>이라 할 것이다. 지난 정국에서 <썰전>의 존재감을 보며 종편에서 그와 비슷한 포맷의 정치 대담 혹은 방담 프로그램을 선보인 바 있다. 하지만 <블랙하우스>는 그런 종전의 방식과는 달리 '김어준'이라는, 가장 어려운 정치적 사안도 가장 명쾌하고 단순하게 설득해내는 그의 존재감에 기대어 새로운 정치 프로그램을 제시한다.

그와 초대손님의 직설 인터뷰에 이어 패널들의 정치 분석, 그리고 강유미와 같은 '정알못'(정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을 등장시킨 이명박 전 대통령과 다스에 대한 설파에 이르기까지 마치 종합 예능프로그램처럼 다양한 코너로 정치에 시청자들의 구미를 당긴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포맷의 이 정치시사 프로그램은 첫 방 6.5%에 이어 2회 7.8%로 정규 편성의 청신호를 밝혔다(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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