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의 중심축에 있으면서도 특검의 수사망을 벗어났던 안봉근, 이재만 전 청와대 비서관들이 줄줄이 체포되었다. 국가정보원과 관련한 뇌물수수혐의가 적용됐다. 이미 구속되어 있는 정호성 전 비서관과 함께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던 문고리권력의 완전체가 전부 사법처리 될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그러나 사건의 내용이 단순히 문고리권력의 처벌로 후련해 할 일만은 아니었다. 두 사람의 전격체포와 함께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자택 등 10여 곳을 압수수색했다. 사건의 본질이 단순한 뇌물수수 이상의 규모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번 사건은 두 가지 의혹을 안고 있다. 첫째는 매달 국정원으로부터 받은 1억 원의 최종 사용처가 어디냐는 것과 둘째는 상납한 돈이 그것이 전부냐는 것이다. 물론 어느 경우든지 이제는 안보·치안 등의 이유로 전혀 감시받지 않는 특수활동비에 대한 근본적인 대수술이 필요함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국정원 의혹과 관련해 체포된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왼쪽)과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이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또한 공식적으로 국정원을 관리하는 청와대 정무수석에게도 매달 500만원씩 전달되었다. 일개 비서관에 불과한 안봉근, 이재만에게 전달된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라는 점에서 문고리 권력에게 전달된 매달 1억 원의 용처에 의심이 가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아니겠냐는 의혹을 갖는 것은 무리가 아닌 상황이다.

이 의혹에는 근거가 있다. JTBC의 단독보도에 따르면 국정원으로부터 매달 007가방으로 1억 원의 현금이 이들에게 전달되었지만 단 한 번도 중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3년부터 2년간은 안봉근 전 비서관이, 이후로는 이재만 전 비서관이 받았다는 것이다.

국정원이 이들에게 뇌물로 사용하려고 했다면 이렇게 철저하게 중첩을 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또한 두 사람의 직책이 명칭은 다르지만 실질적으로 제2부속실 업무를 해왔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다. 따라서 개인이 아닌 그들이 해온 역할에 따라 돈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인수’했다는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만약 이런 의혹을 입증할 수 있게 된다면 이 사건의 파장은 문고리 권력을 벗어나 정국을 뒤흔들 대형사건으로 비화하게 될 것이다. 이날 진행된 다수의 압수수색에 적용된 혐의는 뇌물공여와 함께 횡령 그리고 국고손실죄 등이었다. 공무원 범죄인 국고손실죄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며 재산도 몰수하는 중범죄이다. 일반인의 경우 횡령이나 배임이 5년 이하의 징역인 것과는 다른 차원인 것이다.

JTBC 뉴스룸 보도 영상 갈무리

결과적으로 국정원 뇌물사건은 그 자체로 국정원의 개혁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가 되지만 그 전에 최근 변호인들 전원 사임 등 재판에 비협조적인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대단히 불리한, 결정적 사건으로 발전될 수도 있는 엄청난 뇌관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과연 이런 식으로 낭비된 국고가 얼마나 더 있을 것이냐는 의혹이 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일반 뇌물도 아니고 국고를, 그것도 국가안보에 쓰라는 예산을 권력에 아부하기 위해 사용했다는 사실이 너무도 충격적이다. 그렇게 권력에 비정상적으로 충성한 것이 과연 국정원뿐이겠느냐는 의심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다.

더불어 이번 사건은 정부 특수활동비에 대한 강력한 조처를 요구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예산안에 이 특수활동비를 예전보다 18%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이 확인한 정부 특수활동비 집행 증비자료 구비 실태 확인 결과 절반이 미비한 상태였다. 줄여서 3289억원 수준이라지만 어마어마한 액수이며, 전부가 국민혈세인 것이다. 그 돈이 권력자의 주머니에서 녹아 사라지지 않도록 엄격한 관리·감독의 방안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또한 국가안보와 관련한 수사활동을 하는 것도 아닌 국회가 매년 80억 원이라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특수활동비를 쓰는 것도 반드시 개혁해야 할 것이다. 지난 5월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국회 특수활동비 개혁을 제안한 바 있었으나 국회를 움직이지는 못했다. 국회부터 눈 먼 돈에 길들여져 있으니 개혁에 미적거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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