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타이거즈가 V11을 완성했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결국 해냈다. 우승이란 값진 결과는 팀 전체가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 팬들과 선수들, 그리고 구단 모두 항상 우승을 꿈꾼다. 하지만 우승은 매년 단 한 팀에게만 주어진다. 기아 타이거즈의 이번 우승 트로피는 새로운 왕조 건설의 시작이기도 하다.

이범호 짜릿한 만루 홈런과 깜짝 등판한 마무리 양현종, 타이거즈 V11 완성했다

헥터와 니퍼트의 재대결은 초반 헥터의 승리였다. 1차전에서 니퍼트가 승리했지만, 5차전에서는 헥터가 웃었다. 물론 깔끔한 완성은 아니었지만 6회까지는 무실점으로 두산 타선을 완벽하게 제압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찬사를 받을 만하다.

몸살 기운으로 고생을 했던 헥터라는 점에서 이번 경기 호투는 정신력의 승리라 할 수도 있다. 남미 출신 선수에게 한국의 가을 야구는 힘든 경험이 될 수 있다. 낮 경기도 아니고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에 밤 경기를 치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니 말이다.

3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한국시리즈 5차전 KIA 타이거즈 대 두산 베어스 경기. KIA 선발 헥터, 두산 선발 니퍼트 Ⓒ연합뉴스

기아 타선은 1회부터 니퍼트를 공략해갔다. 비록 득점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괴롭혔기 때문에 3회 빅이닝이 가능했다. 두산은 2회에 선취점을 올릴 수도 있었다. 가을 야구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보인 오재일의 2루타에 에반스의 볼넷까지 이어졌지만 후속 타선이 터지지 못하고 득점을 올리지 못한 것은 아쉬웠다.

무사 상황에서 좋은 득점 기회를 놓친 두산은 3회 기아에게 빅이닝을 내주고 무너졌다. 3회는 이명기의 내야 안타로 시작되었다. 김주찬의 희생 번트에 이어 버나디나의 적시타가 이어지며 가볍게 선취점을 뽑았다. 가을 야구 기아 타선의 핵은 버나디나였다.

최형우의 안타에 이어 나지완이 사구로 나가며 1사 만루가 되었다. 이 상황에서 안치홍은 몸쪽으로 흐르는 유인구에 속아 삼진으로 물러나며 2사 만루로 상황이 바뀌었다. 이 상황 니퍼트는 조금은 안심했을 것이다. 그렇게 한국시리즈에서 빈타에 허덕인 이범호를 향해 초구로 스트라이크를 잡으러 들어갔으니 말이다.

4차전에서 겨우 안타 신고를 한 이범호는 만루의 사나이다. 한국프로야구 만루 신기록을 쓰고 있는 인물이 바로 이범호다. 누구보다 만루에서 강한 이범호는 상황을 읽었고, 초구를 노렸다. 실투에 가까운 니퍼트의 초구를 완벽하게 받아쳐 만루 홈런을 만들었으니 말이다.

맞는 순간 모두가 홈런임을 직감할 정도로 높게 날아간 공은 좌측 펜스 중간까지 날아가는 큰 홈런이었다. 만루 홈런을 치고 환호하는 이범호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결정짓는 5차전에서 비로소 꽃범호가 될 수 있었다. 3승 1패 상황에서 단 1승만 더 하면 기아는 우승이다. 그런 경기에서 만루 홈런이 나왔고, 점수 차가 5-0으로 벌어졌다는 것은 결정적이었다.

3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한국시리즈 5차전 KIA 타이거즈 대 두산 베어스 경기 3회초 2사 만루에서 이범호가 홈런을 날린 뒤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아는 6회에도 연속 3안타를 몰아치며 2점을 더해 7-0까지 앞서 나갔다. 선발 니퍼트를 끌어내리며 승기를 잡은 기아였지만, 한순간에 역전의 위기에 몰렸다. 한국시리즈에서 빠른 교체 타이밍으로 승리를 이끌었던 기아 벤치는 이번 경기에서는 이상했다.

헥터는 위기는 있었지만 무실점으로 6회까지 잘 막았다. 더욱 몸살 기운이 남아있던 헥터라는 점에서 불펜을 준비하고 있었어야 한다. 양의지에게 안타를 맞는 것은 이상할 것은 없다. 하지만 정진호에게도 안타를 내주며 위기에 몰렸을 때 벤치는 과감했어야 했다.

교체 타이밍을 놓친 채 헥터에게 믿음을 주었지만 민병헌, 오재원에게 연속 적시타를 맞고 박건우에게 사구까지 내주며 무사 만루가 되어서야 투수 교체를 했다. 이 상황은 절대적으로 두산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던 타선이 간만에 연속 안타를 치며 분위기를 몰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급하게 심동섭을 올려 김재환을 삼진으로 돌려 세우기는 했지만, 오재일에게 2타점 적시타를 내주고 내려갔다. 기아는 마무리 역할을 해왔던 김세현을 조기 등판시켰지만 상황을 완벽하게 틀어막지는 못했다. 물론 동점을 내주지 않았다는 점은 칭찬할 만했다.

7점 차로 앞서가던 기아는 갑작스럽게 1점 차로 추격을 당하게 되었다. 여기에 한국시리즈 기아 타선을 이끈 절대적인 존재인 버나디나가 수비 과정에서 안치홍과 부딪치며 교체를 당한 후 무려 7회에만 6실점을 하고 말았다. 달아나는 점수를 만들어야 하는데 핵심인 버나디나가 빠진 상황에서는 추가점을 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3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한국시리즈 5차전 KIA 타이거즈 대 두산 베어스 경기. KIA 김윤동 투수가 8회말 역투하고 있다. Ⓒ연합뉴스

8회 마운드에 오른 김윤동은 거침이 없었다. 김세현이 마무리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강력한 느낌을 주지 못한 것과 달리, 김윤동은 선두타자 국해성에게 안타를 내주기는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민병헌과 오재원을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박건우를 우익수 파울 플라이로 잡으며 1점차 승부를 이어갔다.

그리고 9회 말 기아는 초강수를 뒀다. 만약 5차전을 패한다면 6차전 선발로 나서야 하는 양현종이 마운드에 오른 것이다. 비록 다음 날 휴식을 한다고는 하지만 만약 패할 경우 1패 그 이상의 데미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 자칫 양현종이 무너지며 패하면 한국시리즈 전체를 날릴 수도 있었다.

양현종이 마운드에 오르며 수비진도 대폭 교체했다. 서동욱, 김주형, 고장혁을 내야수로 바꿨다. 이 포메이션을 정상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범호의 수비는 일품이다. 9회 김주형으로 교체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우익수 이명기를 좌익수로 옮기고 김주찬을 우익수로 변경할 이유도 딱히 없어 보였다. 물론 최형우보다 수비가 월등히 좋은 선수를 내세우는 것은 당연하지만 말이다.

서동욱과 김주형, 고장혁은 한국시리즈에서 선발 라인업으로 등장하지 못했다. 그런 점도 충분히 고려한 교체였다고 보인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김주형이 결정적인 실책을 하며 5차전 자체를 망칠 위기에 빠졌었다는 점이다. 9회 마무리를 하기 위해 마운드에 오른 양현종은 선두 타자인 김재환에게 볼넷을 내주었다.

3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한국시리즈 5차전 KIA 타이거즈 대 두산 베어스 경기가 7대6 KIA의 승리로 끝났다. 우승을 차지한 KIA 양현종이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두 타자 상대가 중요했지만 볼넷을 내주며 자칫 위기에 빠지는 듯했다. 이번 경기에서도 2개의 안타에 2타점을 올린 오재일과 승부는 중요했다. 강력한 파워를 갖춘 오재일을 어떻게 잡아내느냐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오재일이 좌익수 플라이로 물러난 후 대타 조수행의 번트는 두산에게 역전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충분히 번트가 예고된 상황에서 수비 형태 역시 이를 대비하고 있었다. 예정된 것처럼 조수행은 3루 방향으로 번트를 댔고, 3루 수비로 나선 김주형은 잡아 곧바로 1루 송구를 했다. 간단하게 투아웃이 되는 듯했지만, 김주형의 송구는 옆으로 흘렀고, 1사에 2, 3루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 상황에서 기아는 만루 작전을 선택했다. 허경민을 고의 4사구로 보내고 박세혁과 상대했다. 양의지가 한국시리즈에서 엉뚱한 판단을 하는 바람에 교체된 박세혁이었지만 극적인 영웅이 되기는 타격에서 역부족이었다. 양현종의 강력한 투구를 압도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박세혁을 유격수 뜬 공으로 잡은 양현종은 대타로 나선 김재호를 포수 파울 플라이로 잡아내며 2017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인공이 되었다. 양현종이 신인이던 시절 조연이었던 8년 전 우승과 달리, 이번 한국시리즈 주인공은 양현종이었다.

3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한국시리즈 5차전 KIA 타이거즈 대 두산 베어스 경기. KIA가 두산을 한국시리즈 4승 1패로 우승한 후 김기태 감독을 헹가래 치고 있다. Ⓒ연합뉴스

1차전을 내준 상황에서 한국시리즈 흐름 자체를 바꾼 것은 바로 양현종이었다. 2차전 완봉은 두산 선수들 모두를 멘붕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마지막 경기가 된 5차전에서 마무리까지 한 양현종은 당연하게도 MVP 수상자가 되었다. 이범호의 만루 홈런에 상상하지 못했던 맹추격전까지 허용하면서 극적인 우승을 완성한 기아는 이제 새로운 왕조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기존 선수들만이 아니라 김기태 감독 3년 동안 신인 선수 발굴에 최선을 다했고, 성과도 냈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통해 어린 선수들이 보다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기아는 해태 왕조에 이어 진정한 기아 왕조의 시작을 알리게 되었다.

양현종은 MVP 수상 소감을 이야기하며 내년 시즌에도 기아가 우승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해외 진출을 노리는 그가 잔류를 선언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현재 전력만으로도 기아는 내년 시즌 가장 강력한 우승 팀이다. V11을 이룬 기아 타이거즈는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팀임을 다시 한 번 증명해냈다.

꼴찌 그룹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기아를 3년 만에 우승으로 이끈 김기태 감독과 선수들은 왕조를 구축하기 위한 새로운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조바심이 나기도 했지만 기아의 2017 시즌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11번의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11번 모두 우승을 차지한 호랑이들의 힘은 그렇게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모두가 박수를 받아 마땅한 기아 타이거즈 11번째 우승을 다시 한 번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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