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1주년을 기념하는 10월 28일 토요일 저녁, 촛불은 두 곳에서 켜졌다. 퇴진행동이 주최하는 광화문과 커뮤니티 오유(오늘의유머) 유저들이 십시일반으로 준비한 여의도에서 각각 다른 색깔의 촛불들이 모인 것이다. 이를 두고 분열이라며 한쪽을 비난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어떤 종편에서는 '쪼개진 촛불'이라는 자극적 타이틀로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촛불은 쪼개진 것이 아니다. 분열도 아니다. 광화문과 여의도로 나뉜 것이다. 그리고 언제 촛불이 단 한 곳에서만 켜진 적이 있었던가. 각자의 여건에 따라 광화문이나 다른 어떤 곳에서라도 우리는 모였고, 함께 염원했었다. 그것을 알 리가 없다면 이번 두 곳에 열린 촛불집회와 촛불파티의 다양성을 분열로 볼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광화문과 여의도에서 촛불이 켜졌다고 분열된 것이라면 촛불은 처음부터 분열된 것이다. 전국 어디든 촛불이 켜지지 않은 곳이 없었으니 말이다. 이제 와서 두 곳에서 촛불이 켜졌다고 분열이라고 하는 것은 논리도, 주장도 아니다. 그냥 헛소리일 뿐이다. 민주주의의 기초는 다양성의 인정에서 출발한다. 설혹 광화문과 여의도의 촛불이 다른 색깔이라고 하더라도 모두 빛났으면 된 것 아니겠는가.

28일 저녁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기록기념위원회 주최로 열린 촛불 1주년 기념대회 '촛불은 계속된다'에서 참석자들이 '국정원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도 28일 페이스북에 "촛불은 이념과 지역과 계층과 세대로 편 가르지 않았습니다. 나라다운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요구하는 통합된 힘이었습니다. 촛불은 끝나지 않은 우리의 미래입니다. 끈질기고 지치지 않아야 도달할 수 있는 미래입니다"라며 다양성과 연대의 지속을 강조했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양쪽 모두 칭찬해주고 싶다. 특히 불과 일주일 만에 결코 작지 않고, 쉽지 않은 파티를 만들어 함께 즐긴 여의도 촛불파티를 마련한 시민들의 추진력에 조금 더 큰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광화문과 달리 여의도 촛불파티는 이름 그대로 즐기고자 했고, 그 의미를 잘 표현했다. 그런가하면 촛불 1주년이라는 기본 취지에 맞게 촛불집회에서 빠질 수 없었던 자유발언과 공연 등도 훌륭하게 준비한 모습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유인물과 피켓은 물론이고 물과 간식 심지어 의료진까지 준비한 것은 확실히 23차례의 촛불집회의 학습효과를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여의도 촛불파티를 딱히 촛불집회와 다르다고 할 이유도 없어 보이기도 했다.

반면 광화문 촛불집회는 많은 시민단체들의 연합답게 큰 규모와 짜임새 있는 진행으로 촛불집회 1주년을 기념에 충실했다. 문재인 정부가 대통령 지지율이 70%를 넘는 시점이라 할지라도 상처 받은 사람들도 없지는 않을 터 다소 격한 발언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 역시 촛불 정신의 테두리 안에서의 의미 있는 울림으로 받아들일 문제이다.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지난해 10월 29일 시작된 촛불집회 1주년을 기념해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KDB산업은행 앞에서 열린 '촛불파티 2017'행사에서 참가자들이 '다스는 누구겁니까' 등이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양쪽의 논란을 전혀 모르고 지난 촛불집회를 회상하기 위해 광화문을 찾은 이들에게는 이 또한 낯설고 당황스러운 일 없는, 평범(?)한 촛불집회의 모습을 재연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어디가 더 좋았다고 평가할 일은 없다. 또 어디 인파가 더 많았다고 키재기를 할 이유도 없다. 각자 나름의 목적대로 잘해낸 근사한 촛불 1주년의 풍경으로 기억하면 좋을 것이다.

또한 광화문과 여의도가 아주 딴판이었던 것도 아니다. 쉼 없는 적폐청산을 요구하고 다스의 주인을 묻는 외침은 모두 같았다. 논란의 단초를 제공했던 청와대 행진의 경우도 주최 측이 공식적으로 취소하면서 실제로 행진에 참여한 인원은 소수에 불과했다. 이런 정도면 애초에 계획한 쪽도, 반대한 사람들도 크게 불만이 없는 수준이었다. 어차피 시민단체 대 시민의 구도에서 누가 누구를 이기는 대결이 아니었지 않는가.

결론적으로 광화문과 여의도의 두 촛불은 모두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논란으로 인해 과정은 다소 고통도 따랐겠지만 민주주의라는 것이 본래 그렇게 시끄럽기도 하고, 괜히 돌아가기도 하는 법 아닌가. 양쪽 소식 실시간으로 듣느라 고생한 호사가들까지도 모두 포함해서 촛불 1주년은 그래도 어쨌든 행복했다. 그러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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