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여자는 자라면서 아빠를 통해서 남자를 배우게 된다고 한다. 낳아준 아빠에 대한 기억은 있을 턱이 없는 은조지만 형식상 혹은 그랬어야 할 존재는 많았다. 많아도 아주 많았다. 다만 그들은 은조의 아빠 자리에는 관심이 없는 엄마 강숙과 사는 남자, 뜯어먹고는 도망쳐야 할 남자였을 뿐이다. 털보 장씨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강숙의 남자들은 은조의 아빠가 되기는커녕 남자를 드러내기도 바쁜 처지들이었다.

은조가 처음 기훈의 접근에도 유난히 공격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그런 강숙의 남자들에 대한 조건반사였을 것이다. 누군가의 남자로서도 부족했을 그들이었기에 어린 은조에게는 아빠의 상실감을 더욱 크게 느끼게 해주었고, 아빠를 모르는 은조는 남자도 모르게 된 결과였다. 기훈이 "은조야"하고 부르는 아주 사소한 '호칭'에 그토록 소스라치는 반응을 하게 된 것은 여자를 부른 남자여서가 아니었다. 아주 오랜 상실의 심연에 잠재된 아빠에 대한 본능적 반응이었을 것이다.

물론 사춘기 여자아이가 훈남인 연상에게 호감을 갖게 되는 생리학적 반응이야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지만 은조의 우울한 내면세계가 사춘기에 충실한 여유를 주지 않는다. 하지만 아빠와 남자 반반이었을 지도 모르는 기훈의 느닷없는 사라짐은 은조에게 역시나 하는 상실을 얹어주었다. 처음부터 기훈은 은조의 남자가 될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너무 뻔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그림자사랑이라는 별명을 얻은 정우 역시도 은조의 남자는 아닐 것이다.

은조 주변의 남자들이 모두 은조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보이지만 정작 은조 자신은 그 사랑에 자신을 맡기지 못할 것이다. 만일 구대성이 쓰러지지 않고 건강하게 은조의 살짝 열린 마음으로 계속해서 아빠의 모습을 불어넣었다면 기훈과 정우 둘 중 하나와의 사랑도 기대할 수 있겠지만 대성의 위태로운 미래는 은조의 마음을 열린 채 닫히게 할 안타까운 사건이다.

문근영이 웃었다. 그러나 여자는 아니다

효선의 삼촌을 찾아 나선 은조와 정우는 마침내 과거의 기억을 확인한다. 저러다 안면근육에 마비 올 것만 같이 시종 굳어만 있던 은조의 얼굴에도 마침내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 정우가 그 정우였다는 사실 때문이다. 아빠가 없었던 은조의 어린 시절에 유일하게 긍정적인 가족은 정우였다. 뚱보에 모자란듯하지만 은조를 도와주는 유일한 아군이었고, 아픈 상처도 세월이 흐르면 추억이 되는 것처럼 정우는 아주 조금의 가족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은조에게 편지처럼 찾아온 추억이었다.

그러나 그 웃음조차도 대성이 아니었으면 없었을 것이다. 엄마 강숙의 거짓과 모순을 알면서도 속고 싶어 하는 은조는 가족애가 대단히 강한 아이다. 그렇기에 알면서도 속고 또 그것을 가슴 속으로 어루만지고 싶어 하는 대성의 진심을 통해서 은조는 어렴풋이 아빠를 느끼게 되었고, 자신도 모르게 주변에 대한 경계를 풀게 되었기에 정우의 존재에 반가움도 느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신데렐라 언니는 지독하게 어둡고 차가운 드라마다. 적어도 은조에게는 그렇다. 은조가 앞으로 정우에게 보였던 미소 이상의 웃음을 보이는 일은 없을 듯하다. 기훈은 효선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라고 하지만 예상되는 대성의 부재(죽음 혹은 그 비슷한)는 은조를 대성도가와 효선 등을 지키게 만들 것이다. 이제 신데렐라 언니는 본격적으로 동화를 비트는 지점에 도착했다. .

못된 계모야 변함이 없겠지만 이 드라마의 제목이 신데렐라 언니이듯이 효선의 언니 은조의 동화와 다른 헌신과 포기가 그려지게 될 것이다. 그런 은조를 만든 계기는 역시나 대성이다. 아버지라 불러달라는 대성의 말 한 마디는 대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은조가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렸던 것이다. 대성이 아버지가 되는 지점에서 효선은 또 다른 대성이 된다.

신데렐라 언니 은조는 여자가 될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될 것 같다. 대성이 은조에게 "나를 버리지 마라"는 것은 그 강력한 복선이다. 그것은 다른 말로 효선이를 버리지 말라는 것이고, 은조가 대성과 효선의 다정한 모습에 멈칫거린 장면과 오버랩 된다. 이미 거기서 은조는 대성에게 아빠를 느끼고 있었다. 8회에 자신을 아버지라고 불러달라는 대성의 그 한 마디는 은조에게 가장 치명적인 말이 될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모든 희생을 어쩔 수 없이 감내하게 할 동기가 될 것이다. 사랑마저도.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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